〔지금 행복하다고 안주하지 말고 늘 경계하라는 뜻〕
居 : 살 거,  安 : 편안할 안,  思 : 생각 사,  危 : 위태할 위

중국 춘추삼전(春秋三傳)에 나오는 ‘안거사위(居安思危)’는 ‘평안할 때도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성어의 유래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던 당시 상황에서 비롯된다.
당시 진나라 임금이었던 여공(勵公)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향락에만 눈이 멀어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임금이 이렇자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지금까지 진나라를 따르던 제후들도 차츰 딴 마음을 품고 이반하는 자가 많아 초나라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는 처지에 이르게 됐다.
대신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간 필경 나라가 망하고 말겠구나' 라며 태산같은 걱정을 하던 중 그 중에서 용기 있고 뜻있는 실력자 두 사람이 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은 임금인 여공을 죽이고 다른 나라에 있는 공자(公子)를 불러들여 임금으로 추대했다. 그가 곧 도공(悼公)이다.
진나라는 도공의 지도력과 대신들이 합심하여 다시 초나라와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회복하였다. 문제는 북방의 야인 부족 융적(戎狄, 오랑캐)인데 이들이 등 뒤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한, 마음 놓고 초나라와 맞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공은 먼저 융적을 토벌하여 후환을 없앤다는 생각을 피력하였다.
그러자 대신인 위강(魏綱)이 “그것은 안 될 말씀입니다. 우리 군사가 융적을 치러 나간 사이에 초나라가 갑자기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라리 융적을 잘 달래어 화친(和親)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 임무를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라며 간청을 했다.
도공도 위강의 말이 옳다고 판단하여 위강을 융적에 보내 유창한 언변과 믿음을 주어 그들을 구슬려 동맹을 맺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마음 놓고 초나라와 패권을 겨루게 된 진나라는 마침내 승리하여 정(鄭)나라까지 항복시켜 천하에 위세를 떨쳤고 도공의 인망도 하늘을 찔렀다. 매우 만족한 도공이 정나라로부터 받은 예물의 절반을 위강에게 주며 치하하자 위강은 “면구스럽습니다. 도공의 위덕과 여려 대신들의 공이 더 큽니다. 아무쪼록 도공께서 평안할 때도 위기를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시면, 태평성시를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화답했다.
‘정관정요(貞觀政要, 政事를 논한 책)’라는 저서에는 당 태종이 신하 위징에게 이렇게 묻는 일화가 실려있다. 당 태종은 “나라를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일까, 쉬운 일일까?” 라고 묻자 위징은 “매우 어려운 일일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태종이 다시 물었다. “뛰어난 인물을 등용하고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치를 하면 되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되묻자 위징은 “지금까지 황제들을 보면 나라가 흥하면 마음이 해이해져 임금이나 군주가 잘못해도 간청하려 들지 않고 사욕과 향락에 빠져들곤 하여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예로부터 성인은 안전함 가운데 위태로울 경우를 생각해 한층 대비하시라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태종은 크게 감탄하여 ‘거안사위’를 늘 마음에 새겨 황제로서 훗날 중국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인물로 기록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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