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눈을 떠 아침을 먹고, 출근해 일을 하고 퇴근 후 취미활동이나 지인과 이야기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드는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를 누구나 다 겪고 또 오늘도 그렇게 지나갈 지도 모른다.   
지난 2009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에 거주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그룹 홈의 첫 번째 집 ‘진영이네 집’도 그런 ‘보통 날’과 다를게 없었다.
단지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삶을 살고 있었고, 그저 남들(비장애인)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장 보고,밥 차리고, 집안일… 같은 일상생활
진영이네 집이 바라는 보통 날, ‘남들처럼 직장 갖고 사는 것’

#2014년 5월 13일 오전 8시~9시
여느 집의 아침모습과 다를 것 없었다. 남해읍 남양아파트 1305호에 위치한 ‘진영이네 집’도 4명이서 같이 사는 만큼 가사분담표에 따라 각자의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번주는  최고 맏언니인 박양숙 씨가 식사당번이지만 요리에 서툰 양숙 씨를 도와 둘째 언니 김진영 씨가 아침상을 차리며 말한다.
“숙정아 밥먹고 얼른 출근해~ 늦는다.”
주차단속요원으로 일하는 집의 막내 김숙정 씨는 다른 언니들보다 먼저 아침을 해치우고 집을 나선다. 막내를 보내고 나서야 양숙, 진영, 수인씨는 아침숟가락을 든다.
아침을 먹은 후에도 이제는 누구 할 것 없이 함께 상을 정리하고 다들 자리에 앉아 함께 쉰다. 각자 진영이네 집으로 들어온 날은 다르고 가진 장애도 다르지만 이제는 누가 뭐랄 것 없이 잘 지내는 한 가족이다.
오늘은 재활프로그램이 있는 수요일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 진영 씨와 양숙 씨는 직업재활사업인 쑥뜸작업을 틈틈이 한다.
현재 막내인 숙정 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언니들은 쑥뜸작업 외에 따로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많진 않지만 개인별 수입원 몫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아침마다 출근하는 숙정 씨를 언니들은 부럽게 바라보곤 한다.

#2014년 5월 13일 오전 10시~12시

오늘 계획에 맞춰 담당선생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개인의 일정에 따라 진영 씨와 수인 씨는 남해실내탁구장으로 혼자 가는 양숙 씨는 선생님과 함께 남해읍사거리에 있는 요가학원으로 간다. 탁구장으로 향하는 동안 진영 씨와 수인 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는 길에 매번 마주치는 백구와도 인사를 나눈다.
탁구장에는 두 사람 외에도 탁구를 치러온 사람도 많다. 계중에는 두 사람을 잘 아는 사람들도 있다. 교육에 앞서 연습경기를 하던 수인 씨에게 한 아주머니가 말한다.
“수인아 어버이 날이라고 문자 보냈던데 고마워~.”
“하하 아니에요.”       
함께 탁구를 치던 진영 씨도 놀랐는지 한마디 거든다. “너 언제 보냈데?”
연습경기를 마치고 교육시간에는 서로 돌아가며 전담코치에게 지도를 받는다. 주변의 일반사람들 보다는 실력이 좋지는 못하지만 교육에 둘의 열의는 뜨겁다.   
뜨거운 열의만큼 땀을 흘린 두 사람은 탁구장 한쪽 켠에 앉아 휴식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여느 사람들처럼 폰을 손에서 때어 놓지 못하는 것도 같다.
같은 시간 요가학원을 찾은 양숙 씨는 오늘도 여러 아주머니, 할머니들과 함께 요가를 배운다. 꼿꼿이 굳은 몸을 풀어주기 위해 시작했던 요가가 아직도 어색하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진 모습이다.
이렇게 서로가 다르지만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 나가고 있었다.

#2014년 5월 13일 12시~13시
탁구장에 갔던 진영 씨와 수인 씨가 집에 먼저 도착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했던 숙정 씨도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와 아침처럼 금방 먹고 다시 나간다.
집에서 유일하게 바깥일을 하는 숙정 씨는 하루 5시간 남해읍 일원을 돌아다니며 장애인주차구역에 불법주차차량을 단속하는 일을 올해 초 부터하고 있다. 처음 일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이제는 제법 적응됐다.
“다녀올게 나중에 봐.” 인사를 말하고 나가는 숙정 씨를 다른 언니들은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준다.
둘러 앉아 한상에 차려진 밥을 먹은 나머지 가족들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의 입맛에 맞춘 커피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2014년 5월 13일 14시~15시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사회적응을 돕는 그룹 홈의 목적에 맞춰 요리, 설거지, 빨래 등 모든 것이 가족구성원 스스로가 알아서 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상황 그리고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일반적으로 생활하는 우리와 다른게 없었다.
가족들은 찬거리와 식재료를 사고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서 집 근처 대형슈퍼마켓으로 갔다. 익숙하게 점포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필요한 물건을 가격을 대조해 가며 구매했다. 

#2014년 5월 13일 16시~18시
다른 날보다 유난히 햇볕이 뜨거웠다. 시장을 다녀온 뒤 저녁 오리고기와 함께 먹을 상추를 뜯으러 가꾸고 있는 텃밭에 가려했지만,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나가지 못했다. 햇볕이 약해질 때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숙정 씨와 나머지 세언니들은 함께 인근 텃밭으로 향했다.
원예치료 목적으로 진행했던 텃밭 가꾸기가 이제는 가족들에게 치료목적이 아닌 하나의 일상이 됐다. 필요한 만큼 수확하고 손질하는 방법은 이제는 익숙해져 식은 죽 먹기다.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와 열무는 집으로 가져와 먹을 만큼만 씻고 나머지는 보관하고, 일부는 지역민과 나눠먹기도 한다.
그렇게 가족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저녁상을 준비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 있었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여자 넷이 모인만큼 빠질 수 없는 수다가 이어졌고, 막내인 숙정 씨와 셋째 수인 씨는 연애이야기를 하며 서로 부끄러움의 웃음을 잇기도 했다.
여느 자매가 있는 가정집에서 흔히 나타나는 평범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의 보통날, 그리고 가족이 생각하는 일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으며 느낀 것은 정말 특별할 것 없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같은 ‘보통 날’이었다. 일상 곳곳에서 함께 있으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진영이네 집 가족들도 ‘보통 날’이란 말에는 공감한다.
시설에서 나와 가족들과 함께 삶을 살고, 자유롭게 생활 할 수 있는 그룹 홈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반면 대부분 비장애인의 보통 날에는 있지만, 진영이네 집 가족의 보통날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직업, 직장생활이다.
앞에서 하루일상을 소개하면서 알려졌지만, 진영이네 집에는 숙정 씨가 유일하게 주차단속도우미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가족들은 직업재활로 쑥뜸사업을 하고 있지만 재가 사업이라 집을 벗어나지 않고 진행되며 그 수익 또한 그렇게 높지 않다.
그룹 홈의 최종목적이 경제적 자립을 통한 일상사회 진출임을 볼 때 지금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이다.
전국적으로 장애인고용촉진법도 개정됐으나 대도시부터 고용 사업체수가 많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남해군을 포함한 농어촌에는 더욱 일할 기회가 많이 없다. 남해군에도 행정차원의 공공일자리와 가온누리를 제외하고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은 없다.
김진영 씨도 한때는 직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간질이 심해져 이제는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진영 씨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니 심심하고 지루하다”며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직장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교감하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다른 가족들도 “능력에 맞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제공되는 남해군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하며 비장애인의 보통날과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날이 같아지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그렇게 진영이네 집 가족은 잠자리에 들기 전 꿈꾸는 일들이 이뤄지길 바라지만, 아무 변함없이 또 그렇게 오늘도 그들의 보통날은 지나간다.
/김인규 기자 kig2486@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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