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인권도 지위도 ‘나라 없으면 무용지물(無用之物)’

내일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UN에서 지정한 세계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은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조결성권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시작했던 운동이 모체가 되어 오늘 날의 여성의 날이 있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외국사례와 더불어 한국사회에서도 ‘남존여비’란 말이나, ‘남아선호사상’이 있었던 것처럼 여성의 인권과 지위는 낮을 대로 낮았다. 특히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과 아동이 받는 피해는 이루 말하지 못한다. 최근 여성의 지위는 점차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이 과거에 겪었던 아픔은 그대로 남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문구는 마르크스의 저서<프랑스혁명사>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위안부 피해자로 남해군에 거주하고 있는 박숙이 할머니(92)의 무겁지만 진중한 메시지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더욱 강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지난 4일 남해여성회 김정화 회장과 함께 박숙이 할머니댁을 찾아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을 듣고 아흔이 넘도록 이 땅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삶의 궤적이 담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담아봤다.<편집자 주>

#고현 관당의 피지 못한 열여섯 꽃 한송이.

=1930년대 고현면 관당에 살던 열여섯 박숙이 할머니는 바지런한 성격에 “가만히 있으면 뭐하랴”는 생각에 사촌과 함께 바래(조개 캐러)가는 길이었다. 평소랑 다르지 않게 일하고 있었던 그날, 박숙이 할머니와 사촌은 갑자기 들려오는 차 소리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일본군용 검은색 지프차였다. 도망가려고 애쓰며, 울고 저항했지만 건강한 일본장정 둘을 막을 순 없었다. 창고 같은 컴컴한 곳에서 며칠을 보냈는지 도착한 곳은 일본의 나고야.
나고야에 도착해 또 다른 창고에 이동했을 때, 그곳에는 100여명의 여성이 함께 갇혀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며칠을 지내다 중국 상하이로 떠나게 됐다.

그 곳에서는 살면서 상상도 못했던 끔찍한 악몽이 시작됐고, 그 악몽은 7년이란 긴 시간동안 이어졌다.
사람하나 뉘일 곳도 안되는 작은 판자집 한 칸, 방음이라곤 되지 않아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망가져갔다.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 걸을 힘조차 없을 때, 대한민국 해방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되지만, 일본군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돌아가는 위안부들을 향해 총질을 해댔다. 그 일로 함께 있던 사촌을 여의고, 혼자서 도망쳤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한국으로 바로 들어오지 못했다. 중국에서 몇 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비밀을 숨기고 살며, 가슴으로 낳은 자식 셋을 키워 모두 출가 시켰다.
그렇게 열여섯에 피지 못한 한송이 꽃이 이제는 화분에 핀 꽃을 보며 삶의 위안을 삼는 할머니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무기도 많았더라면


=박숙이 할머니에게 들은 허심탄회한 이야기 중 가장 열분을 토하며 말하던 것이 “만약 그때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총도 많고, 무기도 많았다면 이런 일을 겪었겠는가?”다.
박 할머니의 요지는 그렇다. “국민이 국가를 잃으면 여성이고 남성이고 기본적인 인권대우 조차 받지 못한다”고 열분을 토하셨다.
그때 한국의 많은 여성이 위안부로 강제노역을 당할 때도, 평소에 그렇게 당당하던 남자들은 아무 힘도 낼 수 없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고.
그래서 박 할머니는 기회가 돼서 제일고등학교 학생에게 특강을 했을 때도 “꼭 훌륭한 사람이 돼 우리나라 강국으로 만들어 달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며 그렇게 부탁했었다.

#사람이 힘인세상을 꿈꾸다 

 =앞서 이야기에 이어 박 할머니는 “국력이 강하지 않으면, 여성을 포함한 국민의 인권과 지위는 보장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생의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던 경주리조트가 붕괴되는 사고를 티비를 통해서 봤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앞선 주장에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 친구들이 좀 더 커서 애를 낳았어도, 인구를 얼마나 늘렸을까…나라를 얼마나 더 살기 좋게 했을까.”
“나는 아이를 못 놓게되서 그렇지 놓을 수 있으면 자식을 많이 놓았을 거다”고 말하며, “국가가 힘을 가지는데 사람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설명했다.
예전에 6.25전쟁 이후에도 보릿고개를 넘기고, 현재 이만큼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사람이었고, 지금도 사회의 각 분야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잘지 낼 수 있었음을 말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각자의 할 일이 정해져 있는데도 요즘에는 점점 출산률이 점차 줄어들어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라 안타깝다고.
박 할머니는 “여성도, 남성도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으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힘 되는 한, 하고 싶은 것 하고 살고 싶어”
=예전보다 잘 들리지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박숙이 할머니는 “서울에서도 경남에서도 그리고 남해여성회에서도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이 있다”며 “나를 찾아와주는 사람과 함께 나누고 이야기 할 것들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싶다”고 말했다. 마을 이웃들과 종종 즐기는 화투놀이도 할머니의 삶이 활력을 더하는 중요한 놀이 중 하나라신다.
또 “꽃이 좋아 꽃을 보고, 꽃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인규 기자 kig2486@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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