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합격 후 국비 유학, 하와이대학원에서 3년 만에 정치학박사

김장실 국회의원(새누리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만민국 의정대상’을 수상했다. 2년 연속 수상이다. 시상식은 밝은사회클럽 국제본부, 한국시민네트워크연합회 등 9개 시민사회단체의 공동주최로 지난달 21일 국회 의원회관 제2 세미나 룸에서 열렸다. 문화융성의 제도적 토대로 평가받는 문화기본법을 대표발의(2013년 12월 국회 본회의 통과)한 김장실 의원은 “오랜 문화예술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문화강국을 건설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이번 의정대상 수상자는 김무성, 김장실, 이노근, 정갑윤, 강석훈, 권은희, 김성태, 김기선, 김우남, 신학용, 김재윤, 윤관석, 박수현, 김윤덕, 박혜자 의원 등이다.
김장실 의원은 1955년생으로 경남 남해군 상주면에서 태어나 상주중학교와 경남공고를 졸업했으며 1979년 영남대 행정학과와 1981년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81년 문공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 문화관광부 예술국장, 문화관광부 종무실장,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예술의전당 사장, 한국행정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제19대 국회에 입성했다.
1998년 홍조근정 훈장을, 2000년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공직 재직 중이던 1989년 8월에는 뛰어난 행정력을 인정받아 국비로 미국 하와이대학원에 유학을 가게 되었으며 3년만인 1992년 7월에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김 의원은 국민생활체육회 부회장, 2014 인천세계휠체어 농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장, 대한장애인농구협회 회장, 새누리당 대외협력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김 의원의 아버지 고(故) 김용상씨는 원래 남면 우형 사람이다. 아버지는 4대 독자로 남면에서 부자소리를 들으며 윤택하게 살았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20년간 갖은 고생을 겪다가 무일푼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상주면 금전리에 터를 잡았다. 김 의원은 4남 1녀 중 막내다. 그 시절에 다 그랬듯 김 의원도 가난으로 온 가족이 어려움을 겪었다. 누나가 흉년이 든 해에 굶어죽었을 정도로 힘든 살림살이였다.
땟거리도 없는 가난 때문에 공부할 여건이 전혀 되지 않았다. 형들은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했으나 김 의원은 우겨서 국민학교를 다녔다. 6학년이 되자 중학교에 가고 싶어 부모님께 졸랐다. 고등학교를 안가는 조건으로 중학교를 갔는데 막상 중3이 되고 보니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다. 쌀 한 말을 들고 새벽부터 서둘러 노량에서 부산행 경복호를 탔다.
시험에 떨어지면 바로 죽음을 택한다는 각오로 경남공고 입학시험을 쳤다. 이런 절박함과 집념 때문인지 합격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대학이 가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도 하며 영남대 고시 반에서 고시공부를 했고 이후 영남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1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김 의원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조상들이 꿈에 나타나 막내아들이 집안을 일으킨다고 선몽했다.”는 말을 들려주곤 했으며, 어머니는 “장실아! 네가 어른이 되면 이름을 널리 떨치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한다. 양친의 이런 말들이 늘 김 의원의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평생 놓지 않는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꿈+열정+노력’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많다. 꿈을 가졌으면 그를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큰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일시적인 실패는 있어도 영원한 좌절은 없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열정을 이어가질 못하고, 그래서 꿈도 일시적으로 끝나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결국, 한 우물을 파는 노력을 말하는 것인가.
“자신이 처한 상항이 아무리 좋지 않다 하더라도 꿈을 소중하게 여기고 목표를 정하여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한 우물을 파다 보면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다. 기회가 올 때 잘 잡아야 한다. 실력도 길러야 하며 제일 중요한 것은 넉넉한 인품이다. 좋은 인품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기가 믿는 종교가 있다면 아침저녁으로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고 인내의 힘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 번을 생각하고 행동하되 항상 겸손하면 일에 그르침이 없다.”
-향우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花香百里(화향백리)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酒香千里(주향천리)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人香萬里(인향만리)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훌륭한 선배들의 위대한 전통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베풀겠다. 훌륭한 후배들에게 징검다리가 되겠다. 국정과 남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큰 보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향 남해가 발전하려면.
“찾고 싶은 곳, 즉 문화유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심이 좋아야 한다. 살고 싶은 곳을 만들어야 한다. 청정한 자연을 아끼면서 관광산업도 발전시켜야 한다. 노인휴양지나 의료기관이 들어서면 좋을 것이다. 아토피 치료에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고 공해가 유발하지 않는 21세기형 산업을 찾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면 그것이 하나의 산업이 되어 남해를 발전시킬 것이다.”

김 의원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시절부터 ‘문화’는 김 의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역이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한류 등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다. 국민생활체육회 부회장으로 지난 10일에는 국민 100세대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생활체육진흥법 제정안을 여야 국회의원 111명 공동발의로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한 점 부끄럼 없이 남해군민, 재경, 재부향우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도록 정직하고 성실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부인 나혜정씨와 1남 2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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