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싶다 - 미조면 조도>
<그 섬에 가고싶다 - 미조면 조도>
  • 정영식 기자
  • 승인 2013.12.0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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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 노래같은 환상의 섬

조도 일주 섬바래길, 체류관광객에 섬이 주는 선물
고된 섬 사람들의 삶 엿보며 여유를 되찾는 길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섬의 동남쪽 끝, 산에 포옥 둘러싸인 아늑한 포구, ‘한국의 베니스’, ‘남해의 나폴리’라 불리며 우리나라 최초의 어업전진기지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미항(美港) 미조항에서 햇볕이 부서지는 바다 쪽을 바라보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방파제 푸른 바다 사이로 손에 잡힐 듯한 섬들이 눈에 띈다.
그 중 가장 시야에 크게 들어오는 섬, 조도. 미조 앞바다에서 가장 큰 유인도로 예전에는 큰섬과 작은섬으로 나눠졌었다던 그 섬이 지금은 제방으로 연결돼 마치 새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듯하다 해 새섬, 조도(鳥島)라 불리는 섬.
마감을 마치고 주말 취재, 그러다 2박3일씩 당진으로 서울로…. 연이은 기획취재 출장에 삶의 단락단락 찍어줬음 싶은 쉼표조차 찍을 수 없는 일상이 이어지던 중 머리도 식힐겸 바다를 따라 발길이 머문 곳이 미조항이었다.
미조항 방파제 끝에서 서서 바다를 한참 쳐다보며 눈길이 닿은 곳이 바로 눈앞에 손뻗으면 닿을 듯한 섬 조도였다. 그렇게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나름의 인위적인 노력’을 하던 중 예전 김대홍 미조면장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조도 알제? 조도에 요새 주민들하고 우리 면 직원들하고 새로 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네…. 언제든 시간되면 구경도 하고 머리도 식힐 겸 한번 들어오시게….”
그말을 떠올린 순간 쇠붙이가 자석에 이끌려가듯 조도로 가는 도선에 몸을 실었다.
▲선장실에서 흘러나온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왕복 4천원. 이 배가 아니면 어선을 타고 나오는 수 밖에 없으니 처음 왕복 뱃삯을 주면 나오는 건 공짜로 배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뱃삯을 기관장님께 전하고 나니 돈을 주머니에 넣자마자 기관장님의 분주한 몸놀림이 이어지고 이내 배를 육지에 붙여 뒀던 홋줄이 뱃머리에 툭 내던져 진다.
선수(船首)가 한 눈에 내다뵈는 선장실 격자 유리창, 그 너머로 구성진 트로트 가요가락이 흘러나온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그랬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에 사랑하기 더없이 좋은 화창한 늦가을 날씨였다.

▲‘도지사’님의 영접을 받고 나선 그 길에서…


사실은 두 번째였다. 그런데 배에서 내려 고작 간 곳이라곤 조도 작은 섬 배 선착장에 바로 붙은 어촌체험센터 밖에 가보지 않았으니, 무턱대고 배만 타고 들어간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도지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조도’에서는 마을 이장님을 ‘도(島)지사’라고 부른다는 것은 언젠가 미조 선창가 한 중매인에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도선 타고 와서 큰 섬에서 내리세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서도 좋은 인상이 느껴지는 허복희 ‘도지사’님의 목소리가 타고 흘렀다.
무작정 시작한 조도 섬 바래길 걷기는 그렇게 도지사님의 영접을 받으며 조도 큰섬부터 시작했다.

▲폐교, 좁은 길…그 곳에서 여유를 찾다

늦가을 오후 볕은 생각보다 따사로왔다. 전날 바람이 심하게 불었던 탓에 부랴부랴 두꺼운 다운점퍼를 걸치고 나왔는데…. 아뿔사! 조금만 걸었는데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만성적인 마감 후유증이라 위안 삼았지만 운동을 너무 안했다.
조도 허복희 ‘도지사’님의 뒤를 졸랑졸랑 따라 걷는 조도 섬바래길. 초행이라 따라 걸을 수 밖에 없는 길이었긴 했지만 조도 섬 바래길은 길이 이어진 곳만 안다면 오히려 혼자 걷기 좋은 호젓하면서도 아늑한 길이었다.
낙엽이 길가로 쌓인 시멘트 포장길을 올라서자 폐교 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옛날 언젠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뛰노는 소리로 가득했을 운동장에는 어느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을까 싶을 들국화 몇 송이가 드문드문 피어있고 그 때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 뛰노는 소리는 사라지고 저 아래 바닷가 갯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대신 채우고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
돌길을 지나, 덤불이 이리저리 꼬인 나무 그루터기, 상수도가 들어서기 전 옛날 섬 사람들의 목을 적셨던 작은 우물터. 한적한 섬 곳곳에는 아직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 곳곳에 자리했다.
큰 섬을 반에 반쯤 돌아 작은 섬으로 향하던 길. 외딴 집 대문 앞, 마당이라기도 우스울 작은 시멘트 바닥에 앉아 뜯겨 나간 통발 그물을 손 보고 있는 섬 아낙.
아낙의 이야기는 섬에서 시작해 섬에서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섬 사람 하나둘 다 떠나고 이웃도 없는 섬에서 지금은 곁을 떠나고 없는 남편과 함께 했던 바다를 지키며…. 오늘도 그렇게 통발을 손질하며 섬 아낙은 그렇게 자신이 사는 섬처럼…. 그 섬 한켠을 지키고 있었다. 섬, 그곳엔 아직 고단하지만 억척스레 오늘은 사는 섬사람이 있었다.

▲장산곳에 올라서니…가슴이 트억!
한걸음 내걸을때마다 꼭 내 뒤를 쫓아오는 듯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큰섬에서 작은섬까지 이어지는 섬 해안일주길을 한바퀴 그렇게 걸었다. 반짝반짝 동백나무 잎이 햇볕에 반짝이는 한적한 오솔길도 지나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수리대나무가 지붕과 자연벽을 쳐놓은 요새 속 미로 같은 길도 지나고 이제 방향을 꺾어 장산곳에 올라섰다.
장산곳에 올라서자 한 눈에도 영엄한 기운을 폴폴 풍기는 소나무 두 그루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눈치라도 채신 걸까. 이내 예전에 이 나무 아래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제를 지냈었다던 이장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수형이 너무나 이뻐 한 때는 보호수 지정 후보에까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는 요즘 시쳇말로 뼈대 쩌는 나무였다.
그 나무가 바다쪽으로 내뻗은 가지를 따라 눈길을 옮기자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바다 사이사이로 이웃처럼 자리잡은 바로 앞 목과도부터 저 멀리 통영 욕지도와 두미도, 노대도와 하노대도, 그 옆에 조금은 외롭게 자리잡은 갈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남해 금산에서 상주 망산, 미조 남망산, 이곳 조도 당산 장산곳까지…. 남해 영산(靈山) 금산에서 이어지는 석가의 기운이 미륵이 도운 곳 미조를 지나 이 곳 당산까지 이어진다고 믿는 탓에 이 곳 마을 주민들은 매년 이곳에서 마을주민들과 연말 섬을 찾은 관광객들과 함께 새해 첫 일출을 보는 곳이라 했다.

▲내년 일출은 조도에서…
잠깐의 여유를 찾기 위해 나선 길 끝에서 조도를 만났고 약 두어시간에 걸쳐 조도를 둘러싼 섬 바래길을 걷고 나자 닭가슴살처럼 퍽퍽하게만 느껴졌던 일상에 돼지비계같은 기름기가 도는 듯한 여유가 몸과 마음을 감쌌다.
워낙 전국에서도 유명한 낚시 포인트가 많은 미조 인근 해역의 특성상 조도를 찾는 관광객들도 매년 일정수준을 유지하지만 낚시 외에는 즐길거리가 없어 뭔가 관광객들에게 조금 더 많이 조도 곳곳의 숨은 비경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주민들의 바람이 미조면 김대홍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의 노력과 맞물려 이제 막 첫 선을 뵀다는 조도 섬바래길.
한 두어시간 남짓 섬 곳곳의 숨은 속살까지 다 들여다 보고 작은섬 방파제에 자리한 어촌체험센터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올해 일출은 꼭 조도 와서 보세요. 방값은 우리도 마을에서 하는 건데 비싸게 받겠나?”하며 막판 마을민박 시설 자랑까지 깨알같이 덧붙이시는 허복희 ‘도지사’님…. 도지사님의 사람좋은 웃음을 뒤로 하고 다시 조도호에 몸을 싣고 나오는 길,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며 바다에 붉은 물감을 뿌린 듯한 장관을 볼 수 있게 해 준 것은 조도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글·사진 정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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