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진이란 걸 알았을 때는 참 신기하더구먼. 카메라가 '펑' 하는 소리를 내면 똑같은 모습이 종이에 새겨져 나오니 어찌 안 신기했겠어.

그런데 찍는 건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지. 내가 찍은 것이 그대로 나오니.... 지금이야 흔한 게 사진이지만 그때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었지.

그 재미에 빠져 이때까지 살고 있는거여" 올해로 여든 여덟살인 이중문 옹은 처음 사진을 접한 것을 1930년대인 열대섯살 때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이종 육촌 형님이 지금의 남해읍 사무소 앞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옹을 여기를 놀려다니면서 처음 사진을 접한 것이다. 그리고 7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는 사진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 옹이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운 것은 열일곱 되던 해 부터다.

그는 농업계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원체 덩치가 작고 몸이 약했던 그여서 "한 해 더 있다가 오너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도 "농사가 안 맞는 것 같고 사진을 배우고 싶다" 는 생각을 했는데 마치 일본에 살고 있는 친척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 가 사진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어릴 때 사진이 참 신기했지"

일본에서의 첫 시작은 견습공이었다. 자신보다 한단계 위인 직공의 심부름을 하면 등 너머로 하나둘씩 배웠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에게도 사진을 찍거나 현상하고 인화하는 일이 맡겨졌다. 차츰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일본에서 10년 동안 사진공부를 했다.

그러나 집안의 맏이였던 까닭에 더 이상 일본에 머물려 있을 수 없어 해방 3년전 귀국해 남해에 사진관을 열었다. 이것이 해양사진관의 시작이다. 해양(海洋)이란 이름은 그의 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 해양사진관이 자리를 잡은 곳은 사거리 밑 현재 박애의원 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당시 사진을 찍는 곳이라고는 학교 졸업식이나 결혼식 등 기념 행사 등에 정해져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대쯤 그는 부산으로 진출했다. 남해에 있는 사진관을 그대로 둔 채 자녀들의 교육 문제로 부산에 사진관을 차렸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이 옹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 부산에 사진관을 내면서 많은 자산을 투자했지만 맡았던 관광서 일의 수금문제로 결국 부산사진관을 접고 다시 남해로 내려왔다.

그 후 남해에 사진관을 순조롭게 운영하며 그는 사진작가로서 고향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오늘날까지 계속 해 오고 있다.

사진 통해 남해 아름다움 전해

이 옹이 전문 사진작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1960대 부터다. 그는 당시 자전거에 카메라를 실고 남해 구석 구석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진주, 부산 등을 다니며 전시회를 가지며 남해를 알려내는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이 옹은 "참 그때는 용기도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또 그는 1965년 경상남도 관광협회 주최 제 1회 관광사진전 특선, 개천예술제 특선을 비롯 많은 사진전에서 두루 수상하며 남해를 알려내는 데 이바지해 왔다. 99년에는 남해문화대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무엇보다 이 옹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수년간에 걸쳐 남해 220개 전 마을과 학교, 축제, 행사를 담은 '정다운 고향, 남해전경'사진첩(96년 발간)이다.

이 사진첩은 편집이 멋있게 되지는 않았지만 수천장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옹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 사진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몸이 움직일때까지는 사진 찍겠다"

이 옹은 요즘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요즘은 몇 년전 산행을 하다 다친 다리 때문에 이전처럼 가고싶은 곳을 모두 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다.

문화원 회원이기도 한 그는 특히 문화행사를 기록하는 일에 빠지지 않는 편이다. 남해군청 입구나 남해읍 사무소에 걸려 있는 남해읍 전경도 모두 거의 작품이다. 요즘은 남해일주 관광 비디오 촬영하고 보급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사진 찍는 일이 즐겁다"는 이중문 옹. 이때까지 그가 낡은 수동카메라로 남해를 기록해 왔다면 이제 남해사람들이 이 옹을 기록해야 되지 않을까?

/ 한 중 봉 기자 bagus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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