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문화원 앞에선 박희오 화전농악 기능소유자
 
 
 박희오옹은 1932년 서면 서상리 장항마을에서 출생했다. 성명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남해화전농악 기능소유자가 됐으며, 지금은 화전농악과 그와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또한 그는 1999년 문화부문 군민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남해문화원 문화학교에서 운영하는 풍물교실 강사로 나가 군내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농악을 지도하고 있다.

화전농악은 남면 석교리의 전수자인 한석동(1866~1943)옹이 한회포, 한점식, 전찬기 등으로 전수하였고, 한점식(1903~1965)옹이 박희오에게로 전수했다. 한점식 옹이 상쇠를 박희오는 끝쇠를 잡아 여수와 남해군 일대를 순회하면서 농악을 보급하는데 헌신했다. 

남해의 화전농악은 민속농악으로서 특히 질굿, 거듭나기굿을 비롯한 경쾌한 가락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찾아 볼 수 없는 남해의 특유한 가락이다. 그의 전수자들은 유일하게 남해 풍물굿 12채박을 재연하였다.

박옹은 화전농악단을 이끌고 86년부터 개천예술제에 참가하여 우수상3회, 최우수상2회를 수상했고, 42회째 개천예술제(92년)에서는 최고의 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또 제24회 경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상쇠 개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화전농악단은 군내 각종 행사에 출연하여 화전농악을 시연할뿐 아니라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비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남해선구줄끗기, 화계배선대의 민속놀이의 일부인 풍물을 담당하여 지도했다.

남해문화원 이호균 원장은 박옹에 대하여■소박한 분이다. 서면 장항에서 먼 거리를 마다하고 항상 열심히 풍물교실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50년 가까이 남해의 소리맥을 이어오는 박희오 옹은 젊은 사람들이 농악이나 화전문화제 등에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하기도 했다.
그의 문하생인 고현면 오곡에 사는 박삼영씨는 화전농악의 거듭나기굿, 길굿이 다른 농악에는 없다' 면서 "다른 농악보다 가락이 훨씬 빠르고 경쾌해 상모돌리기는 힘들지만 신명난다" 고 했다.

화전농악은 꽹과리, 장구, 북, 징, 소고가 서로 다른 가락의 소리를 낸다. 박 옹에게 풍물을 5년째 지도 받아온 이동 초음에 사는 김창렬씨도 소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박옹이 지도하는 남해문화원 풍물교실은 97년 문화학교 개설이후  35명의 문화원 수강생들이 화전농악을 배우고 있고, 박 옹이 이끄는 남해화전농악단은 최근 열렸던 '도민생활체육대회 입장식' 행사에도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물굿 12채박을 재연하였다. 박옹은 화전농악단을 이끌고 86년부터 개천예술제에 참가하여 우수상3회, 최우수상2회를 수상했고, 42회째 개천예술제(92년)에서는 최고의 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화전농악단은 군내 각종 행사에 출연하여 화전농악을 시연할뿐 아니라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비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박옹은 제24회 경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상쇠 개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남해선구줄끗기, 화계배선대의 민속놀이의 일부인 풍물을 담당하여 지도했다.
남해문화원 이호균 원장은 박옹에 대하여■소박한 분이다. 서면 장항에서 먼 거리를 마다하고 항상 열심히 풍물교실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50년 가까이 남해의 소리맥을 이어오는 박희오 옹은 젊은 사람들이 농악이나 화전문화제 등에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하기도 했다.
그의 문하생인 고현면 오곡에 사는 박삼영씨는 ■화전농악의 거듭나기굿, 길굿이 다른 농악에는 없다■면서 ■다른 농악보다 가락이 훨씬 빠르고 경쾌해 상모돌리기는 힘들지만 신명난다■고 했다.
화전농악은 꽹과리, 장구, 북, 징, 소고가 서로 다른 가락의 소리를 낸다. 박 옹에게 풍물을 5년째 지도 받아온 이동 초음에 사는 김창렬씨도 소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박옹이 지도하는 남해문화원 풍물교실은 97년 문화학교 개설이후  35명의 문화원 수강생들이 화전농악을 배우고 있고, 박 옹이 이끄는 남해화전농악단은 최근 열렸던■도민생활체육대회 입장식■행사에도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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