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역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한국현대문학사에  크게 족적을 남긴 문인들의 문학관이 건립된 곳이 많다.  이웃 사천에도 박재삼문학관이 있고, 하동에도 이병주문학관이 있다. 남해에는 이러한 현대문학관이 건립되기 전 남해유배문학관이 건립되어 전국의 어느 문학관보다 주목을 받고 있고,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학관 주관으로 김만중문학상이 해마다 시상되고 있다. 그러나 유배문학관에 전시된 중요 문인들의 족적 가운데는 그 성격상 남해출신 문인들이 전시될 수 없다. 또한 유배문학은 과거의 문학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박물관의 성격으로 고착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 현재 내지 미래의 문학관이 될 수 없게 된다. 물론 김만중문학상과 그에 관련된 문학제 등으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남해에도 많은 문인들이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하여  지역 출신 작고 문인들과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남해에 오랫동안 머문 유명문인 들의 족적과 업적을 전시할 남해현대문학관의 건립과 이미 다른 지자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생가 표지석 조성이 절실하다.
 필자의 생각으로 남해출신의 문인들의 개인별 문학관이나 독립된 문학관을 세우기보다 이미 넓게 터를 잡은 유배문학관 경내에 별도의 건물로 전시공간만 마련하면 건립 경비도 절약되고 유배문학관과 연계하여 운영과 관람객 유치도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그 속에 전시될 작가로는 우선 서면 작장리 출신으로 평생 남해초등교육에 헌신하다가 남해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하신 문신수(1928-2002) 소설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족적이나 소장 자료 등은 유족과 협조하면 쉽사리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문 소설가는 여기에서 자세하게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남해 지역사회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작고한 이듬해인 2003년 5월 스포츠 파크에 남해문학회가 주동이 되어 문신수 문학비를 제막하였다. 그리고 문신수 소설가의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어 해마다 작고한 5월 11일에는 추모행사와 각종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관 건립이나 생가에 표지석을 세우는 등의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다음으로 남해가 주목해야 할 문인은 이동면 금평리 출신의 소설가 정을병(1934-2009)이다. 그는 여러 해 전에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남해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을 했다가 남해 지역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출향문인들의 중재로 그가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으로 있을 때에 세미나를 남해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현대문학사상 가장 대표적 풍자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의사사회를 풍자한  <유의촌>은 1960년대 후반 <주간한국>에 연재되어 화제를 일으킨 작품으로 <주간한국>을 베스트 셀러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문신수 소설가, 남면 평산리 출신의 백시종 소설가 그리고 필자를 비롯한 남해출신 문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였으며, 문단활동이나 작품 발표 심지어 취업, 작품집 발간 등에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이다. 남해사람들을 비하한 것도 그의 남해에 대한 애향심 때문에 빚어진 그 특유의 냉소적 어조에서 발생한 일종의 헤프닝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필자 개인적인 일을 회고하면, 1976년 서울서 그를 처음 만날 때의 일인데 그는 그 당시 대한가족협회 간부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를 만나자 가족계획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하면서 앞으로 3,40년이 지나면 가족계획 때문에 한국은 출산율이 저하되어 국가 존립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지금의 우리 나라의 출산율 위기를 37년 전에 예언한 혜안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남해출신 문인들뿐만 아니라 소설가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콘텐처 사업에도 선도적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여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추진력으로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를 두 번이나 역임했다. 그러다가 사무국장을 잘못 두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가정적으로는 한창 나이의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그 후유증으로 사모님마저 돌아가셔서 그도  암투병을 하다가 75세로 비교적 일찍 작고 했다. 유족은 딸이 한 사람 있다. 이러한 여러 사실을 감안할 때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곳은 당연히 남해에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현 한국소설가협회의 이사장인  백시종 소설가의 노력으로 문학계에서의 정을병 소설가의 명예도 모두 회복되었다.
  그 외에도 시나리오 작가이자 남해 지역문화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고현 대곡 출신 이청기(1919-1994) 작가, 미국에서 몇해 전에  작고한 이동면 용소리 출신인 김선현 시인, 마산에서 활동하다가 여러 해 전에 작고한 역시 이동면 용소리 출신인 시조시인 박평주 등 남해가 아니면 어디에도 족적을 남길 수 없는 시인들이 많다. 최근에 작고한  남해가 자랑하는  법조인으로 알려진 삼동면 영지리 출신인 김일두(1923-2013)변호사 역시 수필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인 1933년 남해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1939년 남상초등학교로 전근되었다가 1940년 동아일보 동래지국장으로 부임하면서 남해를 떠난  소설가 김정한(1908-1996), 1955년부터 1958년까지 창선중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한 시인 이경순((1905-1985)  등의 남해에서의 족적도 전시할 수 있을 것이다.
 작고 문인의  생가에는 간단한 표지석을 세워 기념물로 남길 필요가 있고, 스포츠 파크에 외롭게 서 있는 문신수 소설가의 문학비 옆에다 작고 문인들의 문학비를 세워 공원화 하는 것도 좋은 기념물이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남해유배문학관 경내에 남해현대문학관을 세우게 되면 유배문학관의 박물관으로서의 한계성도 극복하고, 생가의 표지석 그리고  문학비가 남해의 문학적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킬 것이다,  작고 문인들을 기념하는 문학축제를 김만중문학제와 연계시켜 출향문인들과 현역문인들을 초청하여 개최하면문학제도 과거로부터 현재 나아가서는 미래로 나아가는 문학제가 될 것이다. <노도 문학의 섬>과 <남해유배문학관> 그리고 작고 문인들의 생가 탐방 등 새로운 관광 콘텐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