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문화' 발행인 한남종
   88년 문화부문 군민대상 수상

고 한남종은 1943년 남면 죽전리에서 태어났고, 남해중학교, 조선대 약학대학 약학과를 졸업했다. 문화부문 군민대상을 88년에 수상했고, 남해군지(南海郡誌)(1994년) 집필위원이기도 했다.

군 사회복지과 이길한 과장은남해 문화원장을 역임했고,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연구뿐 아니라 사회봉사 활동에도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석교마을에 사는, 한 군민은 " 만날 때 항상 웃는 인상이었다. 아까운 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고장의 빛나는 정신 유산의 전승을 위하여남해문화Ⅰ.Ⅱ집을 발행했다. 남해문화 제1집 발간사에서 그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은 민속 향토축제가 왜 남해에서는 없을까 염려하던 중 선구에서 고싸움놀이가 원형을 간직한 채 사장되어 있다" 는 것을 알고, 선구 고싸움놀이의 음악적, 연극적 요소에 향토 축제를 제언했다.
그는 또  "향토 축제는 향토 전통 문화의 온상이니 원형 보존에 대한 전통 문화 보존에 향토민의 일체감,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 타 지역 축제를 도입하여 지역 간의 교류의 중요성도 제언했다.

그는 "남해문화" 제1집에 남해의 문화재, 남해가 배출한 인물, 남해의 방언, 조상들의 생활과 풍습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남해문화" 제2집에서 그는 선사시대의 유물인 지석묘, 잊혀져 가는 남해의 지명어(地名語)의 유래, 없어진 땅이름, 가락과 장단과 함께 없어져 가는 우리의 민요(民謠), 전설, 유배문학의 산실이었던 옛 남해, 남해를 거쳐갔거나 숨진 적객과 유배객 등으로 구성했다.
여기서 그는 남해지방에 남아있는 선사시대 유적에 대하여 지역사람들의 무관심과 훼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1994년에 집필한 남해군지(南海郡誌) 역사 부문의 내용 중 제7장 남해의 농민항쟁에 대해 살펴본다.
 ■(임술록(壬戌錄)에 기재된 것을 기초하여) 철종 13년(1862) 12월 28일 남해현령이 상관에게 서면(西面)으로 보고한 편지안에 남해현 백성들이 흰수건을 노끈으로 동여매고, 몽둥이를 들고 뜻을 같이한 무리들이 모여서 소동을 일으켰다. 설천면 향리(鄕里) 백성인 박아무개, 김 아무개, 정 아무개의 집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21일 각면에서 일제히 가세 합세하여 그 숫자가 기천명에 가까운지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또 고현면 향리 백성인 (중략) 다시 용문사로 향하여 가서 여러 사람이 한곳에 모여 24일 이동면 백성 (중략)  김아무개의 집을 불태워 버렸다■

그는 급작스런 발병으로 2001년 1월21일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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