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문화예술인사 백과사전 (5)
남해 향토연구의 토대 구축- 이청기
“조상의 얼과 향토의 미”재조명

남해 고현면 대곡리 출신의 이청기 선생은 1919년에 태어나  남해공립 보통학교(현 남해초등학교)를 2학년으로 입학하여 1933년에 졸업하였는데, 한국어와 일본어에 성적이 우수하였다.

일본 경도(京都)중학교, 일본대학 등에서 수학한 후 부산일보 기자로 생활했고,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위원, 영화윤리 전국 위원회 초대 위원장, 서울특별시 문화의원, 주간 새마을 신문 상임 고문, 남해향토문화연구회장 등을 역임했다.

『사향록(思鄕錄) 』서언(序言) ‘고향(故鄕)은 조상(祖上)의 위대(偉大)한 유산(遺産)’이라는 글에서 선생은 ‘이 소책자를 통해서 선대의 뿌리를 찾아 조상의 얼과 향토의 미를 재조명하려는 뜻 또한 여기 있는 것이다’라 했다.

군민들이 기억하는『사향록(思鄕錄) 』발문에 선생은 “선현(先賢)들은 일찍이 시간을 황금으로 비유하여 많은 가르침을 남겨 주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의 참뜻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모든것이 때가 늦어버린 뒤 일수가 왕왕 있다는 것을 인생의 쓴 잔을 맛보지 않은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오로지 이 길을 이어주는 후진들이 예지(叡智)와 노력으로 완전무결한 우리 향토문화사지가 하루 속히 출간되어 주기만 기원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라고 적혀있다.

본사 논설위원장이기도 한 김우영은 ‘향당(香塘) 이청기(1919∼1994년) 선생과 사향록( 思鄕錄)’이라는 논단(2003.2.14)에서“사향록(思鄕錄)은 향당 선생이 가슴으로 쓴 향토역사서”라고 했고, ‘전무후무한 분이다’라고 했다.

고 문신수 선생의「남해문학의 역사적 고찰」에서“이청기, 그는 1959년 시나리오 교차로(交叉路)로 문단에 데뷔했고, 그의 저서 ‘사향록’은 문예 작품은 아니다 남해 향토의 역사와 현실을 문학적 학문적 접근 방법으로 연구, 그 전모를 밝혀 놓은 최초의 향토연구서로 남해 향토의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향토사학자 정상운씨도 “남해향토사에 기초를 마련한 분이며, 남해군지(南海郡誌)의 시초”라고 말하기도 했다.

군민들은 그의 저서 『사향록(思鄕錄) 』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고, 김우영 선생은 본지‘향당(香塘) 이청기 선생과 사향록( 思鄕錄)’의 논단(2003.03.07)에서“향토사 연구를 통해서 향토발전에 쏟은 향당 선생의 큰 공적은 망운산을 덮고 섬 덩어리 전체를 다 덮어도 부족함이 없는 큰 그늘이지만 우리 군민들이 그에게 보답한 정성은 좁쌀 하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운한 마음이다”고 밝힌바 있다.

증보개정판인『사향록』(1984)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슬기롭고 다양(多樣)한 문화재들
△제2장 인의예지(仁義禮智) 심어준 현인들
△제3장 고수(孤愁)의 낙도(落島) 유적지(流謫地)로서의 옛고향
△제 4장 비탄(悲嘆)의 적소(謫所)에 핀 유배문학(流配文學)
△제5장 남해 연혁연구(沿革硏究)
△제6장 삼남(三南)의 절승(絶勝) 심진자욕무(尋眞字欲無)의 경(境)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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