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일 필자는 모교 창선초등학교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하였다.  방문을 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해마다 11월에 주로 부산과 서울에서 모이는 초등학교 동창회를 올해는 고향 창선에서 가지기로 한 것이다. 서울에서 아직도 건설회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창회 회장이 만나는 장소를 모교의 느티나무 밑이라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감도는 곳으로 하여 통지문을 낸 것이다. 서울과 부산, 창원 그리고 삼천포에 있는 친구들과 창선과 삼동면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24명(남자 16명, 여자 8명)의 친구들이 정해진 시간에 모였다. 오래 만에 고향에서 개최된 탓인지 예상보다 많은 참석자들로 모두 흐뭇해 하였다. 모교의 운동장은 우리가 다닐 때보다 훨씬 넓어진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 가운데 고향을 지키고 있는 한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처음으로 만났다.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초등학교 시절의 얼굴을 발견하였으나 그는 친구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어리둥절 했다. 필자는 그에게 자녀들은 어디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둘 다 서울에서 자리잡고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얼굴은 그 동안 자녀 키운다고 고생한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우리는 교정을 둘러보며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다니던 시절의 흔적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하죽 동네 쪽에 있는 향나무뿐이라면서 상전벽해가 된 모교의 변화와 세월의 오래됨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6·25 전쟁이 나던 1950년 4월 창선초등학교 34회로 입학하였다. 1950년은 학제가 9월 학기에서  4월 학기로 바뀐 첫해라 선배들보다 신입생이 적었다. 왜냐하면 1943년생으로 1월부터 8월까지 태어난 아동들은 1949년에 입학했고 1943년 9월부터 1944년 3월까지 태어난 아동들이  한 학년이 되었으니 12개월이 아니라 8개월에 태어난 숫자였다. 그래도  1학년  입학 할 때에는 2개반은 겨우 되었다. 6·25전쟁이 지나가고 2학기가 되자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나올 형편이 되지 않아 1개반이 되어 1956년 봄 69명이 졸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적게 졸업한 탓에 창선중학교 2학년까지 과밀학급 1개 반으로 막대한 지장을 받고 학업에 임하다가 3학년 때에는 분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반에 오랫동안 공부한 탓으로 우정은 남달라 초등학교 동창회는 다른 해 졸업생들보다 잘 되어 그 동안 백두산과 일본 남구주로 해외여행도 두 번이나 했다.
 물론 우리 동기들 못지 않게 기별 모임은 잘 되는 선후배들도 많다. 그러나 창선초등학교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총동창회가 오래 전에 와해된 채로 있다. 특히 창선중고등학교는 총동창회와 서울, 부산 등 각지역 동창회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데 비하여 그렇게 되어 있다. 우리 동창 중 몇 년 전 모교 교장을 지낸 친구에게 이번에 창선초등학교 총동창회의 재건 가능성을 타진해보니 자기가 있을 때 몇 번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면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어떤 후배는 창선의 지역적 특성상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겹쳐지기 때문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1999년 창선면내 5개교가 통합되어 더욱 어렵다고도 한다.
 우리 모교 창선초등학교는 남해군에서 그 역사로 보면 남해초등학교 다음으로 오래 된 곳이다. 1921년 일본총독부에 의하여 4년제로 개교되었으나 그 전에 사립 흥선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개교 이듬해인 1922년 3월 6일 2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3년 4월에는 6년제로 인가되어 인근 면에서 4년제를 졸업한 학생들이 5학년과 6학년은 창선초등학교로 편입하여 다닐 정도의 중심학교였다. 금년 2월 17일에는 90회 졸업생을 배출하여 총 9476명의 동문들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비록 140명의 적은 재학생 수이지만 군내에서 남해읍의 2개 초등학교 다음인 세번째로 큰 학교이다. 그리고 사립 흥선학교부터 역사를 계산하면 정확하게는 알수 없으나 이미 백년이 지났을 지도 모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립학교 개교도 90년이 넘어 앞으로 9년 후인 2021년에는 100주년이 된다. 앞으로 9년 후의 모교 100주년을 위해서도 그 기념사업의 구심체가 될 총동창회는 하루 빨리 재건되어야 할 것이다.  
 창선초등학교의 경우 현재 1,2학년이 16명과 12명이다. 이러한 추세로 갈 때 앞으로 9년 후에는 전교생이 100명도 되지 않는 미니 학교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책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창선면민들이 힘을 합하여 혁기적인 학교 발전 방향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요즈음 일간지에 자주 나오는 시골 초등학교의 혁신으로 그 지역 인구가 증가하는 기사의 주인공이 되자는 말이다.
 창선초등의 경우는 그래도 지역 특성상 폐교 위기에 다다르지는 않았다. 남해읍과 창선면을 제외한 타 지역의 경우 상주초등은 1,2학년이 3명과 7명이고, 고현초등은 4명과 3명,이다 . 타교의 1,2학년도 각 학년 10명 내외가 대부분이다. 요즈음 지역 공립 거점중학교를 어느 지역에 짓느냐 하는 문제로 투표까지 하였지만 거점중학교가 설립된다고 하여도 채울 학생들이 크게 부족하여 국고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필자 개인의 생각으로는 거점중학교를 새로 세우는 것보다 기설 중학교로 통합하고 그 예산을 초등학교 교육 전반의 혁기적 개선에 투입하는 것이 보다 미래 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눈 앞에 굴러온 떡만 생각하는 교육지원청 당국과 해당 학구 주민들의 행정과 행동이 안타깝기도 하다. 따라서 거점중학교 문제보다 해당 초등학교의 면민들은 학교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로 적은 초등학교 학생수의 획기적 증가 방안에 더 고민하여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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