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마을 조성과 한일관계
일본마을 조성과 한일관계
  • 남해신문 기자
  • 승인 2012.08.27 1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한 집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 식구들과 함께 남해에 휴가를 다녀왔다. 아직 손녀와 손자가 어려 먼 곳을 가지 못하고 창선삼천포대교 근처 삼천포 쪽에 살고 있는 여동생 집에 이틀 동안 머물면서 하루를 남해도 동쪽 부분을 구경하였다. 휴가 이튿날 아침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 창선을 국도 3호선으로 관통하여 다시 창선대교를 건너 삼동면의 유스호스텔 단지로 가 그곳에 머물고 있던 친지 일행을 만났다. 그리고 소문만 듣던 내산 편백자연휴양림으로 가 두어 시간 머물다가 원예예술촌과 독일 마을은 자동차 속에서 조망하고 해오름 예술촌에서 신기해 하는 손녀 탓에 잠시 머물기도 했다. 점심은 상주 쪽으로 내려 가다가 인터넷에 좋다는 글이 올라 있는 <갯내음>이라는 식당에서 주인이 낚시하여 씨알 좋다는 볼락정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상주와 금산을 거쳐 이동에서 삼동으로 나와 창선대교를 건너 서쪽 도로로 다시 삼천포로 돌아왔다. 남해도를 돌아 본 소감은 한마디로 그 동안 볼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처음 가본 편백휴양림은 온 식구들이 좋다면서 다음은 하루나 이틀 머물 수 있도록 예약을 하고 와야겠다는 결론에 쉽사리 도달하기도 했다. 독일마을 주변 역시 옛날에 비하여 활기가 넘쳤으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해오름예술촌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창선은 펜션이 몇 개 더 들어선 것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창선은 역시 남해군의 변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국제타악기축제 전어축제로 활기찬 삼천포 쪽에 비하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일본마을 조성지가 창선 장포마을 왼쪽 해안에 확정되어 창선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특히 장포 오른쪽 산에는 골프장이 조성 중이고 남해안 프로젝트의 일환인 사량도와 수우도를 거쳐 장포와 연결되는 다리 건설의 필요성도 여러 전문가들에 의하여 주장되어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만약 이에 발맞추어 장포에 이미 조성 중인 골프장과 그 부속시설인 골프텔 말고 모상개 해안과 장고지에 해양레포츠 시설이 더 들어선다면 장포 마을이 남해 관광의 거점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마을 조성은 애초부터 일본과 우리나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말이 많았다. 남해군 당국에 의하면 하필 일본마을이냐고 네티즌들이 항의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 그러할 경우 일본마을이라고 해서 일본사람들이 정착하는 곳이 아니라 젊은 시절 고향 남해를 떠나 일본에 정착해 있던 재일교포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곳이라고 답변하는 것으로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사실 일본 동북지방의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 사람들이 한국 특히 부산에 아파트를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 일본인들은 집단 거주지를 물색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우리나라 영토인 독도를 우리나라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일본의 극우파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정부까지 나서 연일 한국을 향하여 맹공을 퍼붓고 있다. 특히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여 독도 주변을 분쟁지역화 할려는 불순한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정치의 불안과 국회의원 선거까지 겁쳐 증폭되고 있는데 , 이차대전 패전국이자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강제로 점령해 있던 국가로서의 일본의 자세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독일의 대국적인 자세와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이 시점에 일본마을 조성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필자는 지난 2월 24일자 남해시론 <윤이상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잠시 일본마을 조성에 유의할 사항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일본을 건너간 교포들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광복전 보다 나은 삶을 동경하며 건너간 사람들이 있고, 광복 이후 6·25 전쟁 중 좌익에 가담했다가 밀항하여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교포 사회는 대한민국을 따르는 재일거루민단계가 있고 아직도 북한을 내왕하고 동조 찬양하는 조총련계가 있다. 적어도 일본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민단계와 과거에 조총련계에서 전향하여 지금은 북한을 들락거리지 않는 사람들이라야 한다. 남해에 머물면서 때때로 윤이상의 부인과 딸처럼 북한에도 가서 그 쪽에 협력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일본마을이 간첩의 거점이 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조성 가구수보다 희망자가 많다고 하니 옥석을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6·25전쟁을 전후하여 장포 마을이 창선에서 좌우대립이 가장 극심하였다는 점에서 어쩌면 일본마을 조성이 장포 마을의 좌우대립의 앙금을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 계획 수립도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번의 한일관계의 냉각은 일본의 자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본마을이라는 명칭의 변경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명칭변경으로 쓸데없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설들에 일본풍을 유지하여 일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이며 일본인의 성향상 접근성에 문제가 있는 남해에는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일교포들의 일본에서의 애한과 남해 사람 특유의 근면함으로 성공한 모습 등을 재현하여 남해 출신이 아닌 타지역 출신의 재일 교포 관광객 유치라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고려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일본마을이 잘 조성되고 장포 일대에 하루빨리 종합해상관광단지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이해와 이를 계기로 큰 돈 벌겠다는 이기주의를 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여러 난관들을 극복하고 장포를 중심으로 창선에 남해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