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익조(比翼鳥)라는 전설의 새가 있다. 이 새는 암수가 각각 눈과 날개가 하나뿐이어서 짝을 이루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 흔히 남녀의 지극한 사랑이나 부부애를 두고 일컫는 말이지만, 사회발전의 전제조건이나 양상을 두고도 이 말을 흔히 쓴다. 작고하신 ‘행동하는 언론인’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역작을 통해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비단 진보나 보수의 문제 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양분하고 있는 각종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끊임없이 토론하고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냄으로써 사회를 조금씩 발전시킨다는 원리를 모두가 체득하고 있다면 극단적 분열이나 상대방에 대한 분노, 유무형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원리가 막연하게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자세만으로는 가동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권력관계에서는 강약이 존재하고 책임론에서는 주객과 경중을 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나 행정조직의 면면을 보면 한번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의 대부분을 가진 쪽이 상대방을 먼저 인정하고 포용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현태 군수가 18일 군의회 본회의장에서 그의 부인과 공무원들이 대법원 유죄확정을 받은 산림소득 비리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그는 ‘군민들게 사과를 하면서도 이런 저런 단서를 붙여... 반성의 첫 단추부터 잘 못 꿰었다’고 밝히며 ‘공무원의 유죄를 저의 불찰로 부인의 판결결과는 제 부덕의 소치로 인정하고 도의적 책임이 법적 책임보다 더 크고 무겁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밝혔다.
정 군수에 대한 비판여론이 극에 달하고 성명서, 주민소환제 등 군민들의 움직임이 나타나려는 시점에서 와서야 떠밀리듯이 사과를 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런 사과와 동시에 화력발전소와 산업단지와 같은 대형사업을 군민들에게 내던지면서 밀어붙이는 바람에 군민들에게 또 다른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자칫 또 한번 거대한 논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찰나이다. 이런 때 일수록 정 군수는 더욱 자신을 낮추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 진정성은 이번 사건에 대한 사과 뿐만 아니라 그동안 벌어진 군정에 대한 각종 논란과 의혹에 대한 책임있는 해명과 사후조치, 화력발전소와 산업단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군민의견 수렴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외에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태도, 측근 문제, 편 가르기 등의 논란을 잠재울 만한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번 사과 역시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며,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수 있음을 새겨야 한다.
정 군수는 약자가 아니다. 남해군민의 선택으로 군정의 수장이 되었으며 지역사회 전반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최강자이다. 그럴수록 정 군수 자신이 상대방의 처지와 관점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어렵더라도 치열한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좌우의 날개로 나는 방법이다.
남해신문과 필자는 지금까지 군정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을 여러 차례 제안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제는 입이 아프고 참을성의 한계를 느낄 지경이다. 그럼에도 남해호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다시 한번 제안해 본다. 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로서의 토론이 아니라 사과와 사업추진의 진정성과 합리성, 효과성을 검증할 수 있는 열린 토론의 장을 만들어 보자.
‘소비자는 현명하다’는 경영학의 믿음처럼 ‘군민들은 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나서서 치열한 토론과 방향설정을 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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