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단오가 지났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의 재상을 지낸 굴원(屈原)의 청렴결백한 청백리의 삶을 추모하고자 기리는 명절이다. 중국의 모든 사람들은 "쫑즈"라는 삼각형의 댓잎에 싼 떡을 먹으며 그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관리(官吏)의 덕목을 일깨운다. 원래는 혼탁하고 추한 세상을 비관하여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한 굴원의 시신을 물고기들이 갉아 먹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먹이 감으로 쫑즈를 강에다 던지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굴원이 살았던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대혼란의 시대였다. 그는 오로지 그의 조국 초나라의 부국강성을 위하여 올곧은 직언을 하였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세력들의 음해와 모함으로 등용과 축출을 거듭하였고 사로잡혀 있던 진나라의 장수 "장의"를 죽여야 한다는 굴원의 진언을 듣지 않고 풀어준 초나라는 결국 진나라에 멸망하고 만다. 시류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옳다고 판단한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인 자작시 '이소(離騷)’를 보면 그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나는 맑은 물에서 나는 향초인 강리(江離)와 숲 속에서 나는 향초인 백지(白芷)를 몸에 걸치고, 연보라색 향초인 추란(秋蘭)을 실로 꿰어 노리개로 찬 듯 청렴결백했다.” 스스로 장담할 정도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독백을 시로써 남긴 것이다. 우리시대에 과연 스스로 자문하여 그렇다고 답할 이가 단 한명이라도 존재할 런지 의문이다.

"어부사(漁父辭)"라는 시를 보면 좀 더 그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그가 축출되어 타향에서 임시로 살고 있을 때, 사리사욕을 위한 탐관오리들의 음해로 인한 비분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어부와 나눈 대화체의 시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세상이 모두 탁해져 있을 때도 나는 홀로라도 맑고 바르고자 했으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몽롱애 있더라도 나는 홀로 취하지 아니하고 깨어 있고자 했다. 그랬기에 나는 추방되었다."

어부가 묻기를 "성인이라면 만사에 휩쓸리거나 얽매이지 않고 능히 세속과 어울려 갈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세상 사람이 모두 탁하다면 왜 그대는 썩은 진창의 물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탁한 물결을 일게 하지 않으시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취해 혼몽하다면 왜 그대는 어울려 술지게미를 먹고 독한 술을 마시지 않으시오? 무슨 연유로 깊이 생각하고 고결한척 하다가 스스로가 추방되게 하였소?"

어부의 질문에 굴원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새로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을 털어 머리에 얹고, 새로이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고 걸친다.’라고 했소. 그러니 어찌 청결한 몸에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걸칠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배 속에 묻히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오. 어찌 깨끗하고 흰 내가 세속의 더러운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어부가 웃으며 노를 저어 배를 몰아가며 노래를 지어 말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고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 어부가 어딘가로 가 버려 다시 더불어 말을 나누지 못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어부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면 된다고 말한 것은 나아가 벼슬을 얻는다는 뜻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된다고 말한 것은 물러나 은거한다는 뜻으로 세속과 적당하게 타협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라는 뜻이다.  그러나 어부가 이야기하는 출세론에 대하여  굴원의 청력결백한 성품은 이를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직언은 하되 아첨하지 않고 세속의 흐름에 따라 교묘한 솜씨로 살아가는 것이 관리된 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굴원은 멱라수에 몸을 던져 고기의 밥이 되는 자살을 선택하였다.

근간의 남해군수 사태를 보면서 굴원의 청렴결백에 대한 깊은 사고와 고뇌가 투영됨은 무슨 까닭인가? 그간 군수가 군정일기를 통하여 쏟아냈던 글들을 통하여 그의 마음과 결과를 되짚어 본다. 2008년 6월 처음 42대 남해군수로 취임했을 때 선거의 결과와 뇌물수수사건의 후유증으로 고민하고 있던 중 2009년 1월 "오랜 고민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군수라는 자리는 제가 잘못한 것도 제 몫이고 군민들이 잘못한 것도 제몫인 자리가 바로 이 자리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잘못도 부모님 자신들의 탓이고 자식들의 잘못도 다 부모님 탓으로 돌렸던 것처럼 군수라는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구나 하는 아픈 깨달음을 온 몸으로 시리게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미 군수라는 자리가 군민의 종복이 아니라 어버이라는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6월 42대 남해군수 취임1주년에 부쳐서 "큰 산은 작은 흙과 돌멩이 하나도 가리지 않고, 큰 바다는 가늘게 흐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泰山不讓土塊, 大海不擇細流)는 말처럼, 우리 군정의 최고 목표는 군민 대화합이며, 이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될 것입니다. 저는 군민 대화합을 통해 남해의 대 발전을 이루는 ‘화합의 기적’을 계속 일구어 나가겠습니다."라고 천명했다. 군수라는 자리가 태산이나 대해와 같음을 인지하고 그런 차원에서 군민의 화합을 이루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했었다.

2010년 7월 제43대 남해군수 취임사에서는 "지금부터 저와 우리 군민들이 해야 할 일은 ‘화합’입니다. 저를 지지했던 분들도, 또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모두 남해를 사랑하고 남해의 미래를 걱정하는 남해군민입니다. 우리 모두가 화합하고 한마음이 될 때 ‘위대한 남해군 시대’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으며 2011년 초 '영조와 정조의 나라'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론'보다 상생을 위한 '우열론'에 기초한 '중도정치' 이념에 바탕을 두고 군정을 펼쳐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 책이 남해군정의 지침서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어떻게 보면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지만 매사를 이런 원칙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지금 남해군민이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은 상대적 우위를 가려 군정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탕평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목민관이 가져야 할 덕목의 진정성을 일부 공무원이나 군수가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숱하게 쏟아져 나왔던 각종의 비리나 오류에 대하여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뼈를 깎는 철저한 자기반성을 미리 보여주었어야 했다. 금번 대법원판결에 대한 군수의 기자회견도 사태의 결정을 놓고 목민관이 가진 철학의 오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가에 대해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평소 목민관의 자리에 대한 자기 철학이 태산이나 어버이 같다고 생각한 연유가 무엇인지 그 진정성이 군민들에게 설득되지 않았다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설령 그 속뜻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말은 하되 가렸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기자회견 때마다 쉽게 이런 말을 내뱉아 군정을 엄청난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고 결국에는 군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여론의 악화를 몰고 왔음에 대하여 통렬한 자기반성과 책임을 져야 한다. 군민들도 대법원의 판결과 그간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한 사안의 본질을 보고 군정을 심판해야 함이 더욱 중요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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