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경험적으로 남해군민들이 고향에 대한 애정과 인정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며 살고 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모두가 도와서 농사일을 해야 하는 역사에서 비롯된 점도 있겠지만 남해는 특히 이런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직접 경험만 예만 보더라도 사회복지법인 ‘사랑의집’ 설립운동에 너나 할 것 없이 나서는 모습이나, 수능시험장 유치운동, 선거구지키기 운동과 같은 공익적인 일에 들불같은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늘 이웃과 함께하고 인정이 넘치는 남해인의 특징은 다른 한편에서는 자칫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온정주의나 지역이기주의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는 언론인을 표방하는 사람들마저 공인에 대한 ‘평가’와 개인에 대한 ‘인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엉뚱한 잣대를 갖다 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현태 군수는 산림소득사업 비리사건과 관련된 그의 부인과 공무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나왔는데도 이처럼 자신을 비호해주는 세력들에 안주하면서 ‘대법원 보다 상급심이 없어 안타깝다’느니 ‘군수는 태산같은 자리’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비리사건의 결론을 김두관 도지사의 대선출마와 연결시켜 무마하려는 시도까지 보여 군민들이 혀를 차게 만들었다.
그와 그의 비호세력들의 내면에는 군민들이 한결같이 온정주의에 얽매이거나 남해군청이란 권력의 눈치만 보는 수동적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여기지 않고서야 이런 행태를 반복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군민들이 늘 인정만 베푸는 것은 아니다. 다수 군민은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하고 책임있는 공인의 자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필자 역시 남해군민의 화합과 단결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원칙도 없이, 비리를 저지른 공인을 용서하고 화합하자는 논리에는 찬성할 수 없다.
남해신문이 지난달 29~30일 군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군민들은 이번 비리사건과 관련하여 정군수의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하고 과반수의 응답자가 자진사퇴를 요구했으며 주민소환제 추진에 찬성했다.
정군수는 지금도 부인과 관련 공무원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군민들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한다는 한마디 말고는 어떤 책임성있는 조치도 밝히지 않고 오히려 검찰과 법원을 탓하는 모습에 군민들이 함께 화를 내고 있다는 결론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비단 산림소득사업 비리 뿐만 아니라 각종 군정의 난맥상에 대한 군민들의 반발심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정군수의 법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군수가 직접 처벌받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없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현재 나타난 군민의 여론을 피부로 느낀다면 이런 주장을 한 것이 낯 부끄러울 것이다.
전남 해남군의 박아무개 전 군수는 부인이 공무원 승진과 관련하여 뇌물을 받은 것에 대해 자신은 몰랐다고 발뺌했으나 결국 법정구속되고 유죄가 확정된 사실이 있다. 정군수가 법적 처벌을 면했다고 해서 공적 책임까지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론조사 응답자의 65.2%가 정군수의 책임이 있다고 답했으며, 52.8%가 책임에 대한 방법으로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설명이 필요없는 부분이다.
필자는 예전 칼럼에서 눈물을 머금고 부하장수 마속의 목을 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예를 든 바가 있다. 남해의 발전과 대의를 위해 말을 바꿔 타야 할 이유가 있으면 바꿔 타야 한다. 군수라는 자리는 군민들을 위해 힘껏 봉사하고 희생하라는 ‘머슴’의 자리이지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상전’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민들의 뜻으로 머슴을 삼았지만 그 머슴이 잘못된 일을 반복해서 저지르면 다시 군민들의 뜻을 모을 필요가 있다. 정군수는 지금이라도 머슴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돌아보고 겸허한 사과와 책임있는 답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정군수가 언젠가 다시 떳떳하게 나설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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