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명만도 네댓가지, ‘기약없는 병’에도 애끓는 모정
성금 모금 소식에 “너무나 고맙죠. 꼭 갚아야죠”

세 살배기 하담이, 기억나시나요? 지난 5월 18일자 <남해신문>에 실렸던….
원인을 알 수도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세 살배기 귀여운 남자 아기 이야기였습니다. 고현 차면마을에서 44년 만에 태어난 쌍둥이, 엄마 박은영 씨와 남해축협에 다니는 아빠 김윤호 씨에게는 세상 어떤 선물보다 값진 축복이었던 하담이, 하린이. 그 쌍둥이 중 오빠 하담이가 원인도 모를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하담이가 오래도록 지냈던 병원 생활을 잠시 쉬고 아프기 전 첫 걸음마를 배웠던 고향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이놈의 고약한 병마는 작디 작은 하담이를 지금도 여전히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부산의 큰 병원에서도 현재로서는 하담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 병원 특성상 병균들이 많은 환경이다보니 오히려 하담이에게 더 안 좋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집으로 잠시 내려와 있습니다.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하담이를 데리고 그렇게 갔던 병원. 벌써 반 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단 한 시도 하담이 곁을 비우지 않고 엄마의 자리를 지켰던 박민영 씨도 오랜 병원생활을 잠시 접고 하담이와 함께 남해로 왔습니다.
서른 둘의 쌍둥이 엄마, 민영 씨는 남해에 내려와서도 일분일초도 하담이와 떨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간 병원생활 하느라 한창 엄마 손이 그리웠을 동생 하린이도 돌봐야 하고 의료진의 손을 잠시라도 빌릴 수 있었던 병원보다 오히려 더욱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죠. 하담이 엄마 민영씨를 만났던 날도 그녀는 느티나무 남해군장애인부모회에서 열리는 원예 테라피 수업을 들으러 나온 길이었습니다. 하담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죠.
▲“탐스런 고추를 한 소쿠리 따는 꿈이었어요”
“탐스런 고추가 주렁주렁 열린 밭에서 고추를 큼지막한 소쿠리에 한 가득 따는 꿈이었어요.” 하담이 엄마 민영 씨가 알려준 쌍둥이 태몽이었습니다.
그렇게 길몽을 꾼 뒤 쌍둥이 하담이와 하린이는 엄마 아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어서였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와버렸습니다. 덕분에 처음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로 향하긴 했지만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 탓에 금새 건강해졌었죠. 그렇게 성미급한(?) 쌍둥이와 엄마, 아빠, 할머니가 알콩달콩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옹알옹알거리며 ‘엄마, 아빠’를 부르고 몸을 겨우 뒤집는가 하더니 이내 걸음마를 배우던 쌍둥이. 지난 1월 6일 저녁 하담이가 경기를 일으키기 전까진 너무나 행복한 일상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왜 하필…”
작고 가녀린 몸이 ‘C'자 모양으로 구부러지며 경련을 일으키는 하담이를 데리고 그렇게 병원으로 내달린 민영 씨.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들은 하담이의 병명은 뇌염, 뇌척수염, 저산소에 의한 뇌손상, 슈퍼바이러스에 의한 감염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작고 가냘픈 몸이 절반이나 굽혀질 정도로 심한 경련 탓에 엉치뼈까지 빠져버린 상태지만 여리디 여린 하담이의 몸은 당장 수술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가녀리기만 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계속 힘겹게 마른 기침을 쏟아내는 하담이를 토닥거리며 민영 씨의 기억은 지난 1월의 그 날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청천벽력이라 그러나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왜 하필 우리 하담이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러고 나서 민영 씨는 짧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요. 내 아이니까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게 제일 마음이 아프죠. 병원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더라구요.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아니면 그 이상이 될 지도 모른다구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하담이가 엄마, 아빠 부를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음악도 많이 들려주고…”. 하담이를 토닥거리던 민영 씨의 손이 잠시 멈추고 잠깐의 침묵이 흐릅니다.
▲우는 법을 잊은 서른 둘의 하담이 엄마
뇌손상으로 하담이는 지금 세 살인데도 생후 2개월 아이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점없이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는 하담이의 눈. 엄마의 눈은 계속 하담이를 찾고 있지만 간절한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하담이의 눈은 여전히 허공을 향합니다.
올해 서른 둘, 젊다면 젊고 어리다면 어린 하담이 엄마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제 소원…이요. 가족여행을 갔으면 좋겠어요. 하담이, 하린이에게도 추억이 되고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가까운데라도 가 봤으면….” 민영 씨와 비슷한 또래 친구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하담이 엄마에겐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하담이 아빠 직장 동료들부터 시작해 생면부지의 분들까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온 모금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민영 씨는 생각했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분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구요. 그렇지만 속으로 다짐을 했답니다. “하담이가 낫는다면…낫기만 한다면 꼭 갚아야 할 빚이다”라구요.
인터뷰 내내 한번도 하담이를 토닥이는 손을 쉬지 않고 하담이의 핼쑥한 다리에 덮힌 무릎담요를 매만져 주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민영 씨였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울지는 않으세요?” 이내 돌아온 민영 씨의 답입니다.
“처음엔 저도 많이 울었죠. 그런데 내가 울면 하담이도 같이 약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안 울려고, 강해지려고, 참고 견디려고 노력했죠. 하담이가 엄마도 못 알아보는 상태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뱃속에서부터 들었던 엄마 목소리는 기억한데요. 그래서 울지 않으려구요.”
그 대답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그리고는 진부하지만 이 말이 생각나더군요. 서른 두 살의 여자 민영 씨는 약하지만 하담이 엄마 민영 씨는 강하다. 그렇게 먹먹해진 가슴을 억누르고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나중에 하담이가 나아서 기사를 본다면…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해 주고 싶으세요”
품에 안은 하담이를 내려다보며 내뱉은 민영 씨의 말에 먹먹해진 가슴이 아려오며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다시는 아프지 말구 건강하게 엄마, 아빠랑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그리고….

“만약에… 만약에… 다음 생에 태어나게 되더라도 꼭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

/정영식 기자 jys23@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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