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겉으론 꽃과 같이 화려하고 밝은 측면을 지향하는 발전적 선택의 수단으로 보이지만 이면엔 철저하게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과 목적달성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부정적 요소도 깔려있기 마련이다.

그 부정적 요소로 인하여 주권자들은 수단으로 전락되는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전시적 선심성 공약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누구를 선택하면 내일 당장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날 것 만 같은 착각에서 니편 내편으로 갈려 만사를 제쳐두고 열광한다.

열광은 지나쳐 갈등을 초래하고, 환상적인 공약과 우리들의 공복으로 충성을 약속했던 선량들의 그 빛나던 맹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선거가 끝나면 우리위에 군림하는 절대강자로서의 권위로 변신해 버린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리끼리의 반목과 질시뿐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정치사를 두고 볼 때 실질적으로 남해군의 발전을 위하여 내세울 만한 선량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딱히 내세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가 선택해줘서 그들은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정작 남해군은 전국 최하위의 낙후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만의 잔치에 우리에겐 실익은 없고 철저하게 편이 갈라져 화합을 통한 발전을 모색할 기회마저도 가지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한 셈이다. 이런 것이 정치고 민주주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면 차라리 선거는 안하는 것이 더 낳을 것이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선거구획정의 파행적 결과로 인하여 통분하고 있으면서도 선거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과거와 똑 같이 이번 총선도 의미 없는 과열로 인한 전철을 밟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실익적인 면을 따져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생활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선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선거로 인해 당장의 우리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남해군의 현재 경기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건설업종의 경우는 3년 이상 연속해서 매출의 하향세가 지속되고 있고 주유소의 경우는 매출액은 비슷하나 이는 유류단가의 인상분을 고려하면 사실상 수량적으론 매출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음식업을 비롯한 일반사업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시현하고 있으나 업종의 특성상 노출되는 카드매출이 매출액과 직결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카드매출의 비율이 높아져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론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수산업과 의료 직종만이 그나마 실질적인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의료직종의 경우 다른 한편으론 인구의 노령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으로 인한 반사적 이익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서글픈 우리지역의 현실이 투영되어 가슴이 아프다.

이렇듯 우리 군의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때 전력을 기울여야 할 분야가 민생인가 선거인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선거는 원칙의 차원에서 주권자의 권리행사로 받아들여야 할 문제지 선거로 인해 모든 관심이 한 방향으로만 집중되고 민생이 소홀해 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

법률로 정해져 있듯이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운동기간 중에 어느 일방을 편드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규정에 충실해야 하고 선거구획정으로 상처받은 군민의 상실감과 극도로 위축된 민생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어루만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회의 지도층도 이번 기회에 우리가 어떤 방법과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건강한 남해를 위해 자기 몫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필요 이상의 과열 속으로 주변을 몰아넣거나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 수단으로 군민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새벽이 어둠을 밀쳐내듯이 시련이 따르면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지 실패한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잘못을 수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남해사람이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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