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이 막을 내렸다. 우리의 처절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남해하동선거구는 사천시에 통폐합되었다. 63년 헌정사에서 남해출신인사가 지역구 국회의원을 맡지 않은 경우는 18대 여상규의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소속지역의 발전만을 책임지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역대 정치사의 관행이나 우리 국민의 정서적으로 볼 때 국회의원의 역할은 지역생존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73년 9대 때부터 남해.하동선거구가 유지되었으니 정확히 40년이다. 그간 이미 통합선거구를 통하여 남해와 하동지역민은 하나로 일체감을 이루고 있어 행정단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한 배를 탄 동반자로서의 상생을 모색하는 그런 관계를 유지해왔다. 누구라도 오랜 기간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바꾸게 되면 혼란스럽다. 어느 날 갑자기 어미가 같이 사는 애비와 갈라서고 낮선 남자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서 이제부터는 이 사람을 애비라 부르라 할 때 아이에게 주어지는 혼란과 상실감은 이루 형용하기 어려울 거다. 지금의 사태가 이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기관단체장들을 중심으로 열정 있는 많은 군민들이 생업을 폐하고 연일 상경투쟁을 했다. 결과가 이렇게 된 마당에 같이 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통렬하게 마음을 찌른다. 우리지역구 국회의원은 망신살이 뻗치는 한이 있더라도 소속당의 간사와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체면을 버렸었고 하동군수는 우리지역의 선거구가 존치되지 않는다면 소속한 새누리당을 탈당한다고 했다. 남해군의회의장도 군청광장에서 삭발식을 단행하며 하동군수와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탈당의지를 천명할 정도로 강도 높은 결의를 다졌다. 물론 남해군수도 혈서까지 써가면서 상경투쟁을 했다. 눈물겨운 투쟁들이었다.

필자가 직접협상을 한 당사자가 아니라서 욕심 많은 저들이 무슨 밀실협상을 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리가 없지만 중앙언론을 통하여 보도되고 있는 내용들을 미루어 짐작하면 새누리당의 원안은 인구편차를 들어 영남지역의석을 한 석이라도 적게 줄이려하고 민주통합당은 인구하한선을 기준으로 해서 호남보다는 영남지역구를 한 석이라도 더 줄여보자는 작정을 하고 선거구획정을 요구했고 보다 못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입하여 중재안을 제시 결국에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해하동 선거구는 통폐합되었다. 이러나저러나 다들 제 잇속만 챙기고 보자는 전형적인 정치권의 원칙 없는 놀음에 우리만 희생양이 되었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상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정한 내용의 구속력이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법률상한계와 헌법재판소의 판례 등을 감안해보면 어찌됐던 논란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할 처지에 놓였던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결과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대들듯이 무언가를 해보아야 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함에서 하동군수가 자기가 속한 당을 떠나겠다고 한 것은 하동군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기득권자로서의 힘을 최대한 활용해 보고자 하는 충정으로 보인다.

표를 먹고사는 인간들의 입장으로 볼 때 내외 오십만의 하동군민이 선거판에 미칠 영향력이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뭔가? 남해의 오십만 내외 군민들의 힘까지 합하여 백만 대군의 여세를 몰아 결사항전을 해도 패색이 짙은 상황인데 하루 전날 혈서까지 쓰면서 상경투쟁을 한 군수가 다음날 잉크도 아닌 피도 마르기 전에 공공연히 전국최소인구 지역구 남해하동선거구를 지목하여 통폐합하고자 하는 민주통합당에 남해군의원을 대동하여 달랑 입당했었다.

김두관 지사도 입당과 관련하여 당 일자 사과성명을 발표해서 대의를 위한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이해해달라고 간곡히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입당의 문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 지사와 정군수의 입장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김 지사의 입장은 정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선거구획정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남해 하동으로 봐서는 생존의 문제였다. 군민의 생존문제가 절박하게 대두되어 있는 이 시기에 다들 탈당을 불사하며 싸우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수장이 입당을 결행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 군수 측은 김 지사의 입당시기에 맞추어 시너지효과를 가지고자 했다고 하는데 무슨 시너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건지, 혹여 남해군민이 누구의 정략적 도구라고 생각하고 군정을 이끌어 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정말 당장이라도 군정을 내려놓고 남해를 떠나야 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김 지사는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정군수를 대동해서 자기의 입지만 키우겠다고 동반입당을 요구할 정도의 경솔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사태를 감안하여 신중한 선택을 주문했을 것이다. 굳이 입당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었다면 다른 구실을 찾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해군수는 현행 선거구획정문제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가서는 안 될 길을 갔다. 하동사람들께 미안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남해사람인 게 쪽팔리게 만드는 짓이다. 선거구를 두고 남해군 하동면이라는 과거의 역사가 무색해지는 꼴을 군수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고래가 뛴다고 망둥이가 뛰는 것은 대세에 전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술렁이는 내부문제도 그러하거니와 군민의 생존과 직접 관련된 선거구획정은 만사를 제쳐두고 그 문제에만 올인 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탈당을 천명했고 혈서를 썼고 삭발을 하고 엄동설한에 상경투쟁을 했던 것 아닌가? 정략적 선거구획정과 입당문제는 4.11총선 승리를 위한 정당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동일 선상의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남해를 지목하여 도륙 낼 작정을 하고 으르렁대고 있는 정당에 대하여 칼날을 세우지 못할망정 굳이 민감한 시기에 입당을 한다는 것은 실리도 명분도 없다. 오로지 장래의 정치적 야심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경솔한 행동이 누가 될 것이라는 것은 범인들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라 더욱 아쉬움이 큰 것이다. 

입당 후에도 상복을 입고 상경해서 투쟁을 하곤 했으나 입당을 결행함으로써 혈서까지 써가며 선거구를 지키고자했던 그 비장한 각오와 의지에 대한 진정성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입당에 대한 명분 찾기와 전시적인 행동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치가들의 얄팍한 단면을 보는 듯싶어 안타깝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정군수가 일찍이 민주통합당에 입당했었고 그 이후에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면 하동군수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탈당할 것을 천명하며 결사항전 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간의 잘잘못에 대한 평가는 그래도 서로 절충하고 합의하여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필자는 한 때 정군수의 반대편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가 끝나고 군민의 선택을 존중했다. 무수히 쏟아지는 반대목소리에 대하여 중심을 잡고자 애썼다. 그러는 것이 군정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배신했다는 소리도 들으면서도 골 깊은 갈등으로 상처받는 군민들이 화합해서 남해의 발전적 미래를 만들어 가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이번 정 군수의 입당사태를 보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걱정했던 ‘중우(衆遇)정치’의 전형적 사례가 바로 남해에서 일어났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오로지 군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눈물로 호소하던 정 군수는 없고 군민보다는 자기의 입신만을 생각하는 정략가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래도 군수 측근들은 군수를 비호하고 나설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선거구가 통폐합된 지금, 다시 탈당을 선언하며 여의도광장에서 할복이라도 결행하지 않는다면 누가 정 군수가 이야기하는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어찌됐던 정 군수는 속마음을 크게 들킨 셈이고 남해는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는 참 잘못된 선택을 했으며 지금 남해에는 남해사람들을 보듬고 이끌어 나가야 할 지도자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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