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범 옹은 지난 1960년부터 대국산성관리에 평생을 바쳤다.

설천면 어느 마을에 한 청년이 살았다. 청년이 살던 마을에는 언제 지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고성(古城)이 있다. 우연한 일로 옛 성에 관심을 갖게 된 청년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역사를 알 수 있는 관광지로, 또한 문화재로 성을 가꾸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낡은 산성은 옛 위용을 되찾기 시작했지만 청년은 산성과 함께 늙어갔다. 산성과 같이한 50여년 세월, 청년은 이제 백발노인이 됐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설천면 진목리 정수범 옹이다. 그는 1932년생으로 올해 만 80세가 됐다. 정 옹이 대국산성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지난 1960년이다. 당시 천도교 남해교구는(정수범 옹은 도정까지 지낸 천도교 신자다) 야외시일(천도교 도인들이 갖는 일요일 합동기도식)에 필요한 청수상을 마련하기 위해 산성 주변을 두루 살폈다. 이윽고 청수상에 적합한 큰 돌을 발견한 신도들은 이를 옮기던 중 돌 밑에서 하얀 사기그릇을 발견한다. 정수범 옹은 “술잔 밑바닥에 그려진 벚꽃 문양으로 미루어 이것이 일본과 관련된 유물이라 생각하고 대국산성에 묻혀있을 문화재를 발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 옹의 생각은 문화재 발굴에서 대국산성의 유지·보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실행하기위해서는 막대한 소요경비가 있어야했고 청년 정수범 혼자서는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에 진목마을 주민들의 만장일치 동의로 그가 위원장을 담당하는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마침 새마을운동이 불붙던 때라 동민들이 합심해서 밀고 나갔어요. 우선 산성으로 가는 길을 내는 작업을 하는데 큰 바위가 나오면 경찰서와 교섭해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를 해야 했지요. 발파문제로 경찰과 교섭한 것만 3번이예요.”

맨 주먹으로 힘겨운 작업을 진행한지 27년이 흘렀다. 없는 자금을 쥐어짜며 근근이 버티는 것도 한계를 넘었다. 자금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정수범 위원장은 지난 1987년, 당시 박익주 민정당 국회의원의 배려로 2천만원의 공사비 지원을 받게된다.

“그 돈 2천만원이 추진위원회에 대단한 용기가 됐습니다. 폭파비용 등 각종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왜 시작했을까’하는 후회도 생겼지요.”

다시 긴 싸움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김혁규 경남지사가 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 위원장은 대국산성 보전·개발에 대한 건의를 하게 되고 경남도가 1억 원의 예산을 투입, 드디어 국가가 산성관리에 나섰다. 대략 15년 전의 일이다. 바톤을 넘겨받은 남해군은 지난 2010년까지 공사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관계자는 “공사기간동안 성곽과 연지 보수를 마무리했으며 남문지와 건물지의 보수를 남겨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50년간 대국산성에 관심을 가졌으며 30여 년간 직접 산성을 관리해온 정수범 옹은 관청에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는 “내성(석성)을 보호하는 외성(토성) 약 800m를 보수해야하고, 산성의 병사들이 식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토성 내 당샘을 복원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성벽에 붙어있던 굴 껍데기가 성벽을 보수한 뒤 없어진 것도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물론 정수범 옹의 주장이 문화재청이나 군청 문화재팀, 또는 관련 전문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대국산성과 함께해온 그의 정성은 ‘다른 의견’이라는 말로 평가절하 될 수 없는 귀한 가치를 지닌다.

지금 대국산성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9호(1974년 지정)이며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그동안 정 옹이 쏟은 땀은 산성이 갖고 있는 가치 속에 분명히 살아있어야한다. 우리는 알아야한다. 50년 긴 세월을 고장의 문화재와 함께해온 한 노인의 흔적을...

(대국산성에서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편’등 유물은 문화재관리국이 수거·보관하고 있다. 또한 정수범 옹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6년 모범군민상을 수상했다. 그의 공적조서에는 ‘대국산성 문화재 지정이전부터 현재까지 30여년동안 잡풀, 잡목제거 등 관리를 솔선수범해 오고 있음, 대국산성의 특별한 애착으로 문화재 관련 자료수집 및 성 주변 지속적 관리’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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