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인쇄사 박문호 대표를 지난 1일 고현 이어리에서 만났다. 박 대표에게 미안하지만 읍으로 자리를 옮겨 문성인쇄사 앞에서 사진을 찍기를 권했지만 박 대표는 사양했다. 곧 있으면 사라질 문성인쇄사 간판을 아쉬워하며 카메라에 인쇄사 간판을 마지막으로 담아봤다.
남해 현대사를 담았던 문성인쇄사가 남해의 추억 한 켠으로 사라진다.

1970년대부터 인쇄업을 했던 검은머리 청년이었던 박문호 씨가 2012년 2월, 64세 백발이 돼 인쇄사와 함께 은퇴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옛날 서변동 2번지 부산일보 남해지부에서부터 인쇄업을 시작했다는 박문호 씨는 프린트 시음지인 등사기(일명 가리방)로 인쇄하던 시절부터 컴퓨터로 작업하는 지금까지 밥벌이로 인쇄업을 해왔다.

70년 11월 인쇄업을 시작하고서 이삿짐을 참 많이도 옮겼다는 그는 어느정도 정착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짐을 싸야했다고 한다.

자리를 옮기고, 옮기고…또 옮겨 6번씩이나 이동해 지금의 남해초등학교 옆 골목에 문성인쇄사가 겨우 자리를 잡아 20년 동안 지냈다.

최근까지 있었던 곳에서 박 씨는 첫 남해군지를 발간했는데 작업기간이 3년 정도가 소요됐다며 그 때 당시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 타자기로 일일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군지 발간하던 94년을 전후해 그는 울산·경남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서부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숨 돌릴 틈 없이 참 바쁘게 살았었다.

평소 향토문화재·역사 연구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했던 박 씨는 향토역사 연구 책자를 80~90년도엔 한 해 1권 정도 책이 나오도록 힘썼다고 한다.

▲ 문성인쇄사 박문호 대표를 지난 1일 고현 이어리에서 만났다. 박 대표에게 미안하지만 읍으로 자리를 옮겨 문성인쇄사 앞에서 사진을 찍기를 권했지만 박 대표는 사양했다. 곧 있으면 사라질 문성인쇄사 간판을 아쉬워하며 카메라에 인쇄사 간판을 마지막으로 담아봤다.

40년 동안 인쇄업을 했다고 하는데 자의든 타의든 떠나는 지금 그간의 결과물을 모아놓지 않았냐고 묻자 일부는 재활용 하는데 넘기고 향토역사 자료 등은 문화원에 전달했다고.

그렇다면 인쇄기계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자 그 기계들은 일반 고물상에 줄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라 제품을 만든 회사에서 가져가도록 해 정리했다고 한다.

폐업을 결정하고 최근 한달 간 인쇄소를 정리했다는 박 씨의 말에 마음이 어떻냐고 묻자 “인쇄소를 시작하면서도 난 기분이 좋았고 문을 닫는 지금도 참 좋다”고 말했다.

문성인쇄사가 2월 1일자로 폐업되고 그날 오후 문성인쇄사를 찾았을 때 눈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

“굳게 닫혀진 문…여기가 분명 인쇄소 였는데…하는 생각이 들 뿐 인쇄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발길을 돌리려하는데 단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문성인쇄사 간판이었다.

그 간판은 문성인쇄사가 남해초 부근에 자리잡은 그때부터 함께했다고 하는데 그럼 그 간판의 나이도 스무살을 넘겼을 것이다.

아!…이젠 들을 수 없는 문성인쇄사 기계소리까지 귀에 어른거리며 벌써부터 문성인쇄사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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