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포 이락사

 
  

비란, 고사, 문항, 동흥마을을 돌아 거북선이 있는 남해대교 아래 충렬사 문턱에 서니 초겨울의 바닷바람이 살을 에인다. 남해에서 이렇게 강한 추위를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계단 입구에서 현판을 확인하고는 되돌아와 차안의 두꺼운 점퍼와 장갑을 꺼내 계단 중간에 다시 서보니 살아낸 시간을 가늠하기 힘든 산대나무 사이에 늙은 영혼을 기대 쉬고있는 고목에선 신의 느낌이 강하다. 단순히 ‘영혼’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 뜬금 없이 그것이 저 늙은 나무가 갖는 해독불가의 힘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돌계단을 마저 올라서니 마당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충렬사 문에 새긴 선명한 태극문양이 객을 반긴다. 강한 해풍에 몸을 세차게 흔들고 있는 태극기를 보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빠른 자각이 온다. 나는 입구에 서서 잠시 마음을 모아 합장으로 충무공에 대한 예를 드린다. 언덕 위에 세워진 누각은 작지만 고풍스럽고 위엄 있다. 이 일대가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고 이 충무공이 순국한 현장이라 했던가.  
 

  
 
  

청해루

 
  

청해루와 외삼문
어디서 읽은 바 숲의 오른쪽이 청해루이고 왼쪽이 외삼문이라는 기억을 찾아내 아, 저기가 청해루이고, 저기가 외삼문이구나 혼자 독백하듯 중얼대며 천천히 돌아본다. 누각이 있는 후원에는 적막이 감돌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발빠른 청설모가 팽나무 위를 바람처럼 기어오르고 있다. 이곳 충렬사 누각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라 그런지 비교적 깨끗하게 정비되어있어 그런 대로 위안이다. 언 손을 호호 불며 돌아보는 동안 바람은 대나무 숲을 돌아 청해루의 기둥을 휘감고 다시 아래 노량마을을 지나 강진만까지 단숨에 내달린다. 추위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둘러 외삼문 지나 내산문으로 들어서니 비석 하나가 시선을 막아선다.
안내자가 있다면 설명을 듣고 싶었으나 날씨 탓인지 사람이라곤 그림자조차 없다. 누각을 돌아 나오며 나는 또 혼자 묻고 혼자 답할 수밖에 없다. 왜적과 맞서 우리 수군이 대승을 거두었다고는 하나 충렬사 좁은 흙 마당의 날카로운 빗질 자국이 노량대전의 상처만큼이나 선명하다. 지난 태풍에 가지 부러진 나무들도 그때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충렬사를 내려와 오른쪽으로 남해대교를 끼고 노량마을을 돌아 감암, 월곡을 지나 이충무공 전몰유허가 있는 관음포로 향한다. 관음포는 이충무공이 임진왜란을 끝내는 노량해전을 1598년 11월19일에 치르고 전사한 곳이지만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지극히 무인다운 유언을 남긴 곳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 아니던가. 12월의 세찬 바람도 아랑곳 않고 관음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瞻望臺(첨망대)로 향하는 길목엔 키 큰 소나무를 따라 붉은 꽃망울을 단 푸른 동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둘러보면 이곳만큼 산책하기 좋은 코스도 드물 것이다. 더욱이 시간을 거슬러 역사적인 현장에 서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산책의 감동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넓은 첨망대에 올라 크게 한번 둘러보니 관음포는 그 명성만큼 독특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어서리끝과 이내기끝에서부터 관음포가 시작된다. 어서리끝과 이내기끝은 마치 할머니 쌈지 주머니의 끈과 같다. 끈을 조으면 주머니가 닫히고 끈을 풀면 주머니가 열린다. 어서리끝에서 이내기끝을 막아서면 관음포는 미꾸라지 잡는 통발이고, 이 안으로 적을 몰아넣으면 사냥개로 토끼몰이하기다.”-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 중에서-

지금은 건너 여수, 광양만의 높은 굴뚝들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임진왜란 당시 이곳의 특수한 지형을 이용한 전투는 상상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시대를 초월해 어느 전투든 리더의 지혜로운 두뇌작전은 필수였을 것이다.
어디를 가나 지정된 관광지에는 그곳을 안내 설명하는 책자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내가 둘러본 남해는 아직 그 부분에서 미흡했다. 그래서 순수한 매력이 더한 곳인지도 모른다. 나는 남해에 갈 때마다 인터넷으로 남해군청이 운영 관리하는 싸이트에서 아주 단편적인 자료들을 얻었고 그것으로 그때그때 갈증을 풀고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여행은 그런 역사의식이나 지식적 암기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부딪는 체험의 장이 우선임을 알기에 크게 염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해에 가면 이 충무공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역사 현장을 되짚을 수 있는 그야말로 뜻깊은 여행이 아닐 수 없다.   

/ 김인자(시인·여행가) http://www.isibada.pe.kr / kim8646@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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