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어느 곳이든 사계절이 아름답지만 가로수의 경우 겨울에는 유자나무가 볼만하고 이른봄에는 동백, 유채, 벚꽃이 아름다우며, 여름은 온갖 야생화가, 가을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도처에 핀 코스모스와 野菊(야국)이 아름답고, 겨울에는 비취빛바다가 아름답다. 대개의 사람들은 남해대교 건너 바로 이어지는 설천해안도로. 19번도로. 미조해안도로. 물미도로. 남면해안도로 등등을 드라이브코스로 으뜸으로 소개하지만 나의 경우 언제나 달려도 싫증나지 않는 코스는 1024번과 19번 해안도로다. 그 중 염해등대∼구미, 평산∼월포, 원천∼벽련, 벽련∼소량,  소량∼금양, 금양∼천하, 천하∼미조, 미조∼동천까지의 해안도로는 소박하지만 이름난 어느 곳 못지 않은 절경을 안고 있다.
사실 내가 권하고 싶은 남해는 이정표에만 의지하지 말고 때로는 없는 길도 만들어 찾아가는 크고 작은 모험을 즐기는 여정이다. 잘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보는 것은 낯선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묘미에 속한다. 이정표를 따르다가 문득 지도를 버리고 숨어있는 예쁜 이름을 가진 마을이나 재를 넘어서 새로운 곳을 가다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각양각색의 갯바위들, 다랭이논에 삶을 일구는 촌부들, 그리고 정겨운 사람냄새와 숲에 묻힌 소로, 그런 것을 찾아 즐기는 여행이라면 누구에게나 두고두고 자신만의 무기가 될 것이다.

  
 
  
 
  


특히 겨울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마치 푸른 잔디를 깔아놓은 듯한 넓은 마늘밭을 보게되는데 그것은 눈과 마음을 싱그럽게 씻는데 한 몫 한다. 허나 자세히 보면 푸른 마늘만 있는 게 아니라 보리도 있는데 그것은 남쪽지방 특유의 온화한 기후 탓일 것이다. 몇 년 전엔 오랜만에 넓은 보리밭을 만끽했는데 어느 날 남해에 간 이유가 보리밭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면 믿겠는가. 바람이 불 때마다 월포언덕에서 바라본 푸른 물결은 들판의 보리밭에도 있었고 청정바다에도 있었다. 보리밭을 뛰어 넘어 넓은 들판을 내지르다가 금새 바다로 달려드는 바람을 보고있노라면 개구쟁이가 따로 없다. 어디서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남해의 산과 바다, 남해를 좋아하는 이유를 들자면 많은 것 중에 겨울에도 푸른 밭을 제외하고 말하기는 힘들다.        
 
  
 
  
 
  

풍경, 끝없는 길의 유혹   

남해에 머무는 동안 마을과 마을을 따라 걷거나 달리면서 길이 가진 온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삶이 있는 길은 따뜻하다. 그것도 오랜 시간이 가꾸어온 풍경은 더욱 그러하다. 감이 익어 가는 토담에 아기 기저귀 바람에 춤추는 풍경은 따뜻하다. 부모님이 계시고, 할아버지 기침소리와 손자 떼쓰는 소리, 젊은 내외가 토닥거리는 풍경은 따뜻하다. 다랭이논에서 게으름을 피는 소와 만선의 배가 포구로 돌아오는 풍경은 따뜻하다. 수매를 마친 농부가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가는 풍경은 따뜻하다. 등 굽은 어머니 일몰 속으로 바쁘게 돌아오는 풍경은 더욱 따뜻하다.  
나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눈을 감고 이름이 예쁜 남해마을들을 하나하나 호명해본다. 설천, 비란, 달실, 초양, 새목, 벽련, 소량, 대량, 미조, 들지, 월포, 설리, 팔랑, 섭개, 서편, 모상개, 사포, 꽃안…,  바다를 닮은 순박한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남해에는 사람도 풍경이 된다. 그 속엔 내게 후한 인심과 친절을 팔던 할머니도 있고 무뚝뚝한 어부도 있고 입안에 든 사탕을 건네주던 아이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들은 모두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자연인이었다.    


/ 김 인 자(시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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