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서 출산까지 더없이 힘든 현실"

"아이, 사회가 함께 키우는 배려가 절실"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는 10일은 임산부의 날. 지난 2005년 개정된 모자보건법에 따라 임신기간을 의미하는 숫자 ‘10’이 중복되는 매년 10월 10일이 임산부의 날로 제정됐다.

“우리 동네서 마지막으로 태어났던 아이가 지금은 군대갔다”하던 한 이장님의 말씀. 비단 이 동네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남해군 통계연보에 담긴 수치도 마찬가지. 2008년 346명이던 신생아 출산은 09년 313명, 지난해에는 301명으로 매년 감소 일로에 놓여 있다. 근간에 회자되는 인구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한 일.

남해에서 임산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결혼 적령기를 조금 넘긴 미혼의 총각 기자가 임산부의 삶, 미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다. 그 미지의 영역에 도움을 준 달이(태명) 엄마와 나머지 세 명의 엄마, 곁에서 함께 한 남편들의 협조에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300만원? 겨우 그것 때문에?!”

첫째아 30만원 상당의 상품권, 둘째 100만원, 셋째는 300만원. 생명의 귀함을 돈으로 재단하는 듯한 개인적인 꺼림칙함에 여전히 기자 개인적으로는 탐탁지 않지만 많은 지자체들이 그렇듯 남해군도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임산부의 삶 들여다보기, 이들의 첫 마디는 “300만원? 겨우 그거 받자고?”였다. 첫째 아이 장려금으로 “유모차 하나 구입하고 나니 땡”이라는. 0세부터 5세까지 매달 15만원의 지원금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우유값’ 정도로 미미한 것이 이들의 체감 현실.

산전검사, 기형아 검사, 초음파검사, 거기에 옵션으로 붙는 각종 검사들. 만만찮은 그렇다고 안 하자니 남들은 다 하는데 뱃 속의 아이에게 죄 짓는 것같은 마음이 들어 하게 되는 검사들까지…. 게다가 지역내 임신 기간 내 간단한 검사와 진료는 가능한 산부인과가 있지만 분만시설은 없어 출산은 인근 도시에서 해야 하는 현실. 출산 후 조리원이라도 이용하려면 해당 병원 진료기록이 있어야 하는 탓에 가까운 병원을 두고도 진주나 삼천포, 순천 등지로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가야만 하는…. 교통비, 남편과 아내 모두 꼬박 하루는 들여야 하는 시간, 이것 저것 다 때고도 병원 한 번 가면 족히 십 만원은 깨지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을 듣자니 ‘요즘 세상, 모르고 아이 놓지…. 알고는 못 놓는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닌 듯하다.

▶임신과 동시에 온 가족이 ‘비상태세’

그래도 새 생명을 잉태한다는 임신의 고귀함이 그냥 ‘돈’의 잣대로만 재단할 수 있는 것이랴. 그래서 그 모질고 척박한 현실을 견디면서도 ‘사랑의 결실’을 지키는 것 아닐까.

경제적인 고충을 넘어 더한 고충은 임신기간 내 한시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이다. 탯줄 하나로 엄마와 교감하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조산, 임신 중 응급상황이 생기면 당장 새벽이라도 다니던 인근 도시 병원으로 가야하는 불안이 가장 힘든 일.

임신한 아내는 물론이고 평소 ‘주(酒)님’을 각별히 모시던 남편들도 읍내에서 갖던 ‘주님찬양’의 시간을 포기하고 항시 ‘5분 대기조’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아이는 첫 애 임신과 출산 경험이 있어 다들 알아서 하지만 첫 아이를 가졌을 당시 초보엄마, 초보아빠들을 대신해 24시간 전화기를 붙들고 이것저것 궁금증을 대신 채워주고 불안함을 잠재워줘야 했던 수많은 친정엄마, 시어머니들의 노고까지 생각하니 “참…. 새 생명을 얻는다는게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 절로 든다.

▶맞벌이 부부, 그 참을 수 없는 현실의 갑갑함

영화 속 대사이긴 하지만 인용에 있어 조금 저급함이 느껴져 양해를 구해야겠다. 육아에 대한 이들의 고충이 어쩌면 단적으로 담긴 말이라 양해를 구하며 인용을 해 보고자 한다.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했던 영화 ‘트루라이즈’ 대사 중 “자식은 30초 즐거움으로 인해 30년이 괴로운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임신도, 출산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낳아도 어려운 현실은 이어진다. 아이 한 명, 한 달에 드는 육아비용 ‘100만원’. “아이들 귀 막고 눈만 막으면 조금은 덜 가르치고 덜 사줘도 별 말없는 시골 덕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옷 입혀야 되고 어린이집 보내야 되고 어린이집에서 누가 뭐 샀다고 자랑하더라면 당장이라도 비슷한 거라도 쥐어보내야 되는 탓에 못 들어도 한 달에 100만원은 깨진다”는 이들의 말.

비용은 비용이고 있는 있는 제도라도 활용해보자는 심산으로 아이돌보미 신청을 해 볼까 하지만 맞벌이 부부라 소득 때문에 이도 저도 안 된다. 성질 같아선 한 사람이 그냥 때려치고 싶지만 ‘한달에 100만원’ 때문에 목까지 올라온 목소리는 꾹꾹 눌리기 일쑤다. 결혼하고 애들은 낳았으니 집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온갖 대출 끌어당겨 집 장만 해 놓으니 ‘빚도 재산’이라고 각종 육아혜택은 저멀리 손 흔들며 달아난다. 상투적이지만 유리지갑 신세니 어쩌랴. 참…. 눈물난다.

▶“너만 애 놓냐?”, “애 낳았으니 이제 관둬야지?”

대한민국 법은 ‘모성보호관련법’이라고 하는 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고용보험법 등 참으로 다양한 법 안에 모성보호와 관련된 조항을 담아놨다. 그런데 지역에는 이 모법(母法)을 상회하는 법이 있었으니 이른바 ‘눈치법’.

법은 기존 60일에서 90일로 출산휴가를 늘리고 모성을 보호한다지만 출산휴가 90일을 다 채우고 다시 일터에 돌아온 아내는 직장 상사에게 은근한 ‘압박’을 받는다.

“애도 낳았으니 이제 일 그만 해야 안되나?”. 특히 서비스업이나 금융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의 경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니 업무상 특성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모성보호와 반대로 달리는 사회분위기가 야박하기만 하다.

또 법은 2001년에 이미 6개월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한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가진 여성근로자와 배우자인 남성근로자 중 1명은 1년 범위 내에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유급’이라는 감사한 조항까지 넣어뒀으나 육아휴직 신청서를 회사에 제출하는 순간 남편은 ‘사직서’를 낸 것과 다름없는 현실. 할 수 있는 것은 육아휴직 하루 쓰고 뒷날 조금 늦게 출근하는 ‘지극히 소심한 반항’ 뿐이다.

▶늘어나는 복지회관, 아이들 놀이터는?

늘어나는 보육비, 분만시설 없는 지역의 의료현실, 보건소에서 임산부 철분제 나눠주는 걸 엊그제야 알았다는 엄마. 임신육아교실에서 뭘 좀 배워보고 싶어도 ‘눈치법’이 통치하는 치외법권 지역에서는 할 수 조차 없는. 오가다보니 ‘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간판은 보이는데 정작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다는 엄마. 아카데미 강좌니 뭐니 되게 많이 하던데 직장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다던 엄마. 가 본 사람 얘기 들어보니 공무원들만 잔뜩 앉아 몇몇은 듣고 또 몇몇은 자다가더라던 아빠. 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되게 많았다. 불편한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고.

동네마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노인복지시설. 이 나라의 민주화와 근현대화, 산업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어르신들을 위한 시설에 투자하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노인이 된다는 걸 생각하면 뭐라 꼬집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는 왜 눈에 띄게 늘지 않을까 하는 다소 갑갑한 마음. “같은 군민으로 인구에는 들어가지만 애들은 유권자는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소주잔을 부딪히며 총각기자의 임산부 삶 들여다보기, 그 짧고 생경한 체험은 마무리 됐다.

언젠가 모 일간지에 소개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모두가 다 떠나는 섬에서 ‘다시 찾아오는 섬’으로 바뀌었다던. 이 마을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섬으로 만들기 위해 그 동네 군수에게 가장 먼저 건의한 이른바 주민숙원사업은 “아이들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는 간청이었단다. 그런 간청에 제대로 된 육아정책도 따라왔고 현실적인 지원책도 세워졌다 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다시 섬으로 돌아오고 1차 산업이긴 하지만 특산물 양식에 성공해 지역경제까지 다시 살아났다던 그 기사.

그런 기사를 남해신문에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꼭 이 손으로 쓰기를 기대하며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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