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을 멈추고 눈 앞 산을 바라본다. 멀리 새파란 고향 바다를 내려다본다. 신록이 가득한 고향의 풍경이 눈에 들어차고 가슴에 차고 넘쳐 마음마저 가득 채운다.

사람사는 곳, 어느 곳이건 바람 안부는 곳 없겠냐마는 오늘도 ‘누가 어쨌다더라’, ‘누가 그랬다며?’하는 입에 입을 타고 도는 풍문이 귓바퀴를 차고 들어 뇌 속마저 어지럽힌다. 서로 떠들어대는 통에 저 파아란 바다의 파도소리는, 저 눈이 아리도록 푸르른 숲 속에 새소리는 제법 신경을 기울여야만 겨우 고막에 닿을 지경이다.

그 풍경을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 속 저 아래부터 깊은 숨이 차고 올라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이렇게도 좋은 곳에…. 저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남해인들의 이야기.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저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쁜 일상에 찌들어 잊고 있었던 이야기, 소중함을 알면서도 지나쳤던 그 마음을 다시 다잡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다잡는 시간, 그 시간이 내려앉는 지면이었으면 좋겠다. ‘사랑’이란 단어로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하는 지면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아려요…팀장님”, 그 한 마디에 녹은 사랑

서면사무소 이화숙 주무관, 어머니에게 간 이식

제 것의 일부를 내어주고라도, 제 살의 일부가 뜯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무한히 주고 싶은 사랑, 당신은 해 보신 적 있나요?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만 스물 여덟의 아가씨가 그런 사랑을 생각해 볼 마음의 짬을 내게 해줬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서면사무소 주민생활지원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화숙 주무관. 지금 이 순간에는 ‘근무하고 있었던’이란 표현이 더 맞는 말이겠네요.

저기 저 사진 속 환한 미소로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앙증맞은 얼굴의 이화숙 주무관(사회복지 9급).

이 숙녀에게 지난 3일은 어쩌면 평생 기억하기 싫은 순간일지도 모르겠네요. 식당일을 하면서도 어렵사리 화숙씨 오빠 공부 뒷바라지에 자신을 이렇게 이쁘게 길러준 엄마가 점심께 갑자기 쓰러지셨으니 말입니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엄마를 모시고 들은 병명은 급성간염, 그날 오후 서울로 엄마를 다시 모시고 천리길을 내달렸습니다. 서울 큰 병원에 도착해 다시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이름도 생소한 성격성간부전증이랍니다. 무슨 병인지 궁금해서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어떤 병인지 잘 나오지도 않네요. 여튼 치료를 위해서는 건강한 간이 옮겨져야 하는 중한 병이랍니다.

어디 가서 돈을 주고라도 사올 수 있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간을 어떻게…. 이 막막한 상황에서 이 숙녀가 생각한 것부터가 그 깊고 큰 사랑을 짠하게 전합니다. 아직 시집도 가지 않은 숙녀에게는 큰 흉이 지게 할 큰 수술. 화숙씨는 자신의 간을 자신에게 생명을 나눠준 엄마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하고 환자복을 입었습니다.

현충일 오전 이른 아침, 화숙 씨와 엄마는 그렇게 나란히 수술용침대에 누웠습니다.

엄마가 아시면 수술을 안 받으실 것 같아 엄마도 모르게 결정했다는…. 아직 엄마는 자신의 몸을 나눠 키웠던 딸아이의 몸 일부가 다시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 온 것을 모르시는 상태랍니다.

옆에 자신의 몸 일부를 떼어주기 위해 차디찬 수술용침대에서 나란히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화숙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차디찬 금속재질의 수술용침대에 그녀의 따뜻한 눈물이 고여 흘렀을 것을 생각하니 왼쪽 가슴이 뻐근해지며 눈물샘이 차오릅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서면사무소 주민생활지원팀에서 어느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면사무소를 찾은 이웃분들을 대하고 자신의 어려움처럼 이들의 아픔을 보듬던 이. 그 밝고 성실한 모습을 항상 보아왔던 김영인 계장이 장장 12시간이 넘는 길고 힘든 수술을 마친 화숙 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이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밝디 밝았던 스물 여덟 숙녀는 나직히 “너무 아려요…팀장님”이라 했답니다. 수술 후 엄마는 한 차례 고비가 있어 재수술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다행히 호전돼 모녀가 조금씩 몸을 추슬러가고 있는 중이라네요.

한 몸에서 두 몸이 됐다 다시 몸 일부를 나눠가진 두 모녀. 두 모녀의 사랑이, 화숙씨의 따뜻한 마음씨가 오늘 이 지면에 나눠져 신문을 보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따스함을 심었으면 합니다.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했으면 합니다.

그런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화숙씨에게 고맙습니다. 얼른 털고 일어나서 다시 예의 이쁜 미소 나눠주세요.

김태명 향우, “나는 남해사람이다”

국제요트대회서 독도 입도시 남해군기 내걸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사랑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국내외 정상급요트선수들이 출전해 기량을 겨루는 국내 최대 요트국제대회, 2011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가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포항에서 열렸습니다.

총 9개국 330명의 내노라 하는 선수들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요트를 타고 포항에서 울릉도를 돌아 독도까지 내달린 뒤 다시 돌아오는 이 대회 외양경기(ORC 클럽).

이미 본지 보도를 통해 군민들에게도 익숙한 김태명 향우도 이 굵직한 국제대회에 자신의 배, 와이콕스호를 타고 늘 함께 파도를 넘나들던 경남대 요트팀 크루들과 함께 출전했습니다.

각자 자신의 배에 각 국가의 국기를 내걸고 달리는 국제요트대회.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를 영원히 우리 것으로 확인한다는 취지를 띠고 있어 더욱 의미 있었던 이 대회에 더욱 남해사람인 저로선 의미를 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기 중 독도에 입도하는 순간 각 국가 국기들 사이에 나부낀 남해군기. 김태명 향우의 배, 와이콕스였습니다.

무슨 연유였을까요. 그냥 남해사람인 것을 알리고 싶었답니다. 크루들에겐 뜻깊은 대회에 참가하는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미리 양해를 구했고 크루들도 남해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어 선뜻 ‘그러자’고 하더라네요.

그냥 남해사람인 걸 알리고 싶었다는 말. 숨은 곳에는 김태명 향우가 가진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30년간 남해에서 보훈회장을 지냈던 김태명 향우의 아버지 김귀식 옹의 평소 가르침이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어디 가건 남해놈인거 티내고 다녀라”.

전화로 만난 김태명 향우에게 사진을 좀 보내줬으면 하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받아 든 사진,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독도’를 배경으로 너른 동해바다에 남해군기가 바람에 나부낍니다. 그 중 남해군기를 가슴에 품고 찍은 김태명 향우의 사진도 눈에 띕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 확 드네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그 어떤 대가도 없는 일. 국내외 유수의 선수들이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그것도 독도를 돌아오는 뜻깊은 대회에서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를 내걸고 남해인임이 자랑스러워 뿌듯했다는 김태명 향우.

오늘도 그의 고향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따지기 위한 시비로 연일 시끄럽습니다. 다 내려놓고 떠나고 싶을 정도로 떠들썩하기만 합니다. 서로 진실이니 거짓이니를 놓고 목소리만 커져갑니다.

먼 곳 동해바다 외로운 우리 땅에서, 독도를 뒤로 한 망망대해에서 티없이 맑고 푸른 청정의 희망을 가슴 가득 담아 돌아왔다는 김태명 향우. 끊임없는 말과 말이 폐부를 찔러 명치 끝이 아리고 절망이란 단어까지 떠올리는 상황에서 다시 희망을 생각하게 해 준 그의 고향 사랑.

그의 고향사랑에 다시 밝은 미래를 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그 어느 무엇도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것.

누구도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을 낳아 기른 어머니의 품 속 같은 땅, 이 곳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음 속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그려낼 수도 없을 정도지만 아련히 누구나의 가슴에나 박힌 내 고향 남해를 사랑하는 그 마음. 처음 그 마음은 그리 명확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단지 남해사람인 것을 알리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단순한 소망이었겠죠.

그러나 그것을 마음 속에 새기고 그것을 온전히 그의 마음 전체로 차지하게 한 순간, 그의 소망이 다른 이들의 마음에도 전해져 잔잔한 소망의 씨앗을 뿌려주기를 기대합니다. 그의 그 소망이 감동을 전한 것처럼 다른 이들의 가슴에서도 다시 움을 틔워 더 큰 감동으로 되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내고향 남해를 진정으로 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든 이들이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 이 땅을 온전히 뒤덮게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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