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추악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현자는 교묘한 술수와 지략으로 어리석은 이를 현혹하고, 강자는 힘으로 약자를 억압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하였듯이 민주주의는 상황에 적합한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을 때 중우정치(衆遇政治)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민주주의가 가진 맹점이자 병폐이다. 지금 남해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땅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될 지자체의 장과 공무원들이 도둑으로 치부되고 군의원이 개보다 못하다는 질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연실색한다. 권력은 다수가 보내는 무한한 신뢰와 기대를 다스리는 기술이다. 신뢰가 무너진 민주주의는 실패한 선택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삼가야 하고 이를 감시하는 자는 섣부른 단정으로 갈등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남해의 아들로 태어나 그지없이 자랑스러운 선배들을 보면서 항상 가슴속에 간직했던 것은 내가 남해인 이라는 자부심이었다. 이 땅 어디를 가도 근면하고 슬기로움에 보내주는 찬사는 “혹시 남해사람입니까?”라는 말이었다.
그런 남해가 왜 이 지경에 이르러 게 되었는지?
아름다운 영혼은 사라지고 삭막함에 몸서리치는 아수라장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깊은 고뇌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남해라는 이 축복의 땅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안 느껴온 감성적 애정을 통하여 잊고 살았던 우리의 영혼을 추슬러보고 다시 새로워지는 게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에게 남해의 모든 부분은 거룩하다. 빛나는 태양으로 반짝이는 코발트빛 바다, 파도가 밀려 와서 포말이 되어 사라진 언저리에 남은 모래 기슭, 쿨럭 거리며 아침을 차고 날아오르는 갈매기의 원무, 바람을 가르며 출항하는 어선들의 펄럭이는 깃발, 매끈하게 씻겨져 형형색색으로 꿈꾸는 조약돌의 속삭임,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새벽어둠을 뚫고 희부연 안개 속으로 난 바닷길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든든한 뒷모습, 차가운 갯바람을 맞으며 바래길을 나서는 어머니의 종종걸음에 남겨진 모진 삶의 흔적들, 굽이굽이 이 섬 어느 길목 어느 모퉁이에도 찬연히 살아 흐르는  삶의 기억은  풍파를 이겨낸 강인한 인정과 사랑이 배여 있다.
이방인은 이 바다에 서서도 눈 시린 아름다운만 보지만 우리는 이 땅위에서 우리가 존재함에 대한 가치를 본다. 남해의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다. 우리는 이 대지의 한 부분이고 대지는 우리의 한 부분이다. 다랭이밭 길 향기로운 유채꽃이나, 바람을 따라 이지러지는 억새풀들은 우리의 자매이다. 해변의 바윗돌이나, 모래톱을 드나드는 게고동, 바닷물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숭어 떼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나무와 숲들, 그 속을 살아가는 다정한 사람들 모두가 한 가족이다.
개울을 지나서 바다로 흐르는 물과 같이 우리는 그렇게 같이 출렁이며 살아왔었다. 돌부리에 채이면 돌아가는 지혜로 서로를 껴안고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하며 감싸고돌았다. 거룩할 뿐만 아니라, 개펄이나 들판 사이 길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듣는다. 파도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바래길 바스락거리는 반지락의 분주함은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가 만들어 낸 부지런함이다. 신선하고 풍성한 해산물은 우리의 갈증과 허기를 채워 준다. 남해의 만물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겐 축복이다. 
지금 우리의 자식들은 도시를 그리워하지만, 원래 우리의 모습은 우리 그대로도 충만했다. 자동차와 빌딩 숲 사이를 휘젓는 소음과 매연은 각박한 생존의 치열함 속에서 고통인 줄도 모르고 분주하게 도시를 휩쓴다. 봄풀이 돋아나는 소리, 가을 잎 떨어지는 소리나, 매미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 물총새의 외로운 울음소리, 한 밤중 연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도시의 삶을 동경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극적이고 편리함에 익숙해져가는 육체의 노예가 된 영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고즈넉한 오후의 갈대숲에서 서걱 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먼데로부터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한 줄기 소낙비로 갈라진 황톳길 사이로부터 피어나는 흙 내음을 느끼며 나도 자연임을 깨닫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욕심이 적어서 주변이 먼저 생각나는 그런 사람들과 부닥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남해라서 누릴 수 있는 풍요다.
핸드폰을 들고 살면서도 누가 내 전화번호를 물으면 얼른 생각이 나질 않는다. 계산기를 옆에 두고 쉬운 셈도 두드려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TV에서 거짓말을 해도 진짜로 믿는다. 요즘같이 심란한 세태를 접하면 나는 없고 문명에 길들여진 짐승 한 마리 존재하는 듯싶다.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영혼을 상실한 인간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홀로 울부짖는 짐승들을 보면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삶은 없어지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만 난무하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화두를 발견한다. 삶을 누릴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칠 것인가? 남해의 아들로서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아남는 각박함보다는 더 없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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