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잠시 눈을 돌려 먼 나라 이야기를 해 보자.
관련 뉴스가 며칠 동안 온 언론을 장식하고 있었기에, 9/11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소식은 익히 들었을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 명이 ‘제로니모’이고, 이 ‘제로니모’란 말 또한 빈 라덴을 지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 제로니모란 누구인가? 
 제로니모는 아파치족 영토를 계속 잠식해 들어오던 미국과 멕시코를 상대로 투쟁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걸출한 지도자였다. 여러 차례 체포와 탈출을 거듭하며 투쟁했던 그는 미국 기병대에 의해 1886년에 마지막으로 체포됨으로써 결국 그의 투쟁은 막을 내렸고, 후에 자서전을 내기도 한 인물로 1909년 오클라호마주 실 요새(Fort Sill)에서 사망했다.

 5~60대 연령의 사람들은 존 웨인이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미국의 기병대 영화를 몇 편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착한 쪽은 당연히 백인들이고 악당들은 인디언들이다. 무작하고 사악하기조차 한 인디언들이 착하디착한 백인들을 기습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힘찬 나팔소리와 함께 미 기병대가 달려온다. 정의의 사도들인 기병대가 인디언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면 어린 시절의 우리들은 박수치고 환성을 질렀다. 권선징악의 결정적 장면에 환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미국 영화에 길들여진 어린 우리들에게는 백인은 선이고, 인디언은 악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악질 인디언으로 단골로 등장하는 부족들이 아파치족이고 이 아파치족의 전설적인 추장이 바로 제로니모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로 보자면 인디언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그들에게 개척자란 이름으로 등장한 백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밀어닥쳐 사정없이 몰아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의 고향을 빼앗기고 이웃과 가족이 살해당하는데도 저항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부족이 저항에 나서면 기병대란 현대식 무장을 갖춘 군대가 나타나 가차 없이 인디언들을 격파했던 것이다. 이런 백인 군대에 끝까지 저항하였던 인물이 바로 제로니모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미국은 ‘빈 라덴’의 암호명을 ‘제로니모’라 하였을까?
미국은 작전이 필요할 때마다 암호를 만들어 써왔는데 이런 암호는 대체로 미국정부가 그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따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교황 바오로 2세는 ‘후광’으로 불렸고, 혈색이 좋았던 에드워드 케네디는 햇볕에 탔다는 뜻의 ‘선번’, 지난 부통령 후보 페일린의 남편은 ‘시추공’으로 불렸다. 왜냐면 그가 석유업체에서 현장 관리인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냉전시절에 피델 카스트로는 ‘흉악범’, 체 게바라는 ‘돌팔이’로 불렸다. 체 게바라가 의사 출신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제로니모’는 백인들에게 저항했지만 투항하여 끝내는 미국시민으로 전향을 한 인물쯤으로 보일지 모른다. 백인의 시각으로 보면 무지한 인디언을 개화시켜 문명에 귀화시켜 자연사하게까지 살게 했으니 인도적 처사로 강변할 수도 있다. 비록 그가 고향에서 쫓겨나 미군요새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더라도 말이다.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 집요한 추적을 10년 가까이 따돌린 빈 라덴이, 기병대와 끈질기게 투쟁한 제로니모와 비슷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미국 백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제로니모는 인디안 퇴출 작전의 마무리로써 완벽한 승리의 상징으로 해피엔딩인 셈이니까.

 그런데 제로니모란 암호명이 지니고 있는 미국의 희망사항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왜냐면 빈 라덴의 제거가 알카에다 저항의 종말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 될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군사 작전은 여러 면에서 무리수를 두었다. 특히 해당 국가에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자국의 군대를 보내 작전을 감행했다, 이는 파키스탄을 독립국으로 취급하지 않는 처사이다. 또 은신처를 찾게 된 정보는 수감 중인 알카에다 요원을 물고문을 통해 알았다는 것이다. 고문이란 문명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니던가!
 처음에는 무장 저항하는 빈 라덴을 사살했고 심지어는 자기 부인을 인간 방패로까지 삼았다면서 빈 라덴을 치사한 인물로 발표했지만 곧 그 내용이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무장하지 않은 빈 라덴을 부상당한 처와 어린 딸 아이 앞에서 사살했고, 그 시신을 유족에게 넘기지 않고 바로 수장해 버린 것이다. 여러 가지로 비난거리와 저항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3일에 아프간 보안군에 의해 파키스탄 국경 지대에서 사살된 외국인 병사 25명은 빈 라덴 사망 이후 보복 공격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국 잉글랜드 북부의 한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서 20대 방글라데시 남성 5명이 테러와 관련된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대 테러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BBC방송이 3일 보도했다. 알카에다가 핵발전소 폭발을 노린다는 것인가? 만약 이런 기도가 현실화 된다면 얼마나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인지는 이웃 후쿠시마에서 이미 우리는 보고 있다.

 중동지역에 파병을 해 놓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알카에다나 과격 이슬람 단체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빈 라덴의 살해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아 우울하고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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