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해협 원시어업 죽방렴(2)
지족해협 원시어업 죽방렴(2)
  • 관리자
  • 승인 2004.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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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의 남해사랑 20

매번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더했으나 이번엔 친구의 안내로 직접 배를 타고 죽방렴 안으로 들어가 고기 잡는 과정을 살펴본 것은 여러 번 남해에 갔었지만 나로서는 처음 누려본 귀한 체험이었다. 

  
 
  
 
  


숭어 떼의 환영을 받으며
10월의 햇살은 바다 위에서 은빛으로 빛나고 창선면과 삼동면을 오고가는 창선교 위의 차들은 느린 화면의 영화처럼 한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도 저 매혹적인 죽방렴을 두고 빠르게 흘러갈 수는 없었으리라. 친구의 도움으로 창선포구에서 배를 타고 죽방렴으로 나가는데 그날 따라 수많은 숭어들이 조련사의 훈련을 받은 물개처럼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며 공중 곡예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수많은 숭어들이 연달아 물위로 뛰어오르는 그것들은 혹 고기가 아닌 새였을까? 바다에 사는 숭어라는 새! 몇 십 년 남해기지로 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동행한 친구도 매우 즐거워했다.
그날 숭어새(?)의 특별한 환영을 받으며 죽방렴으로 가는 시간은 짧아서 아쉬움이 더했다.  이제야 말이지만 그 동안 몇 차례 남해에 가는 동안 내겐 몇 명의 친구가 생겼다. 그 중 시종 나를 배려해주는 이는 친절이 낡은 옷처럼 몸에 배어있는 김형이라고 부르는 친구다. 그날 김형은 약속을 지키겠노라며 귀한 시간을 내어 죽방렴으로 나를 안내했다. 매번 창선교 근처에서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멀찍이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던 죽방렴을 그날은 주인의 허락을 받아 가까이 가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친구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죽방렴을 소개했다. 물때를 이용해 어떻게 고기가 드는지, 한번 들어온 고기는 어떤 원리로 나갈 수 없게 되는지,
배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 본 죽방렴은 예상보다 큰 규모의 어장이다. 고기가 들어오는 물 목은 통로가 좁고 좁은 만큼 물살이 세지만 그 안은 어떤 고기도 자유롭게 무리 지어 놀 수 있을 만큼 넓은 어항이다. 대나무 어살 한 귀퉁이엔 사람들이 고기를 건지거나 어장을 손질할 때 들고나는 출입문이 있었는데 나도 그곳을 통해 어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은빛 잔치를 보면서
마침 어장에서 뜰채로 고기를 건지는 어부를 만났다. 그분의 웃음은 넉넉했다. 작은 배로 옮겨 놓은 바구니에서 일제히 살아서 팔딱거리는 은빛 고기들! 은빛! 살아있다고 온몸으로 팔딱거리는 눈부심! 그래, 저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저것이었다. 잘 익은 햇살 아래 저 황홀한, 살아있는 자가 온몸으로 자신을 받아준 우주의 주인에게 바치는 마지막 춤, 눈물겨운 제례, 은빛 잔치!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서 뛰어오르는 은빛의 파닥거림, 그것은 10월의 햇살에 반사되어 눈을 즐겁게 했다. 심호흡을 하고 손을 내밀어 고기를 만져본 건 살아있음의 교감을 위해서였다. 가을멸치와 가을전어와 가을숭어.......나는 가을이라는 이름 앞에 종소리 나는 생명감을 불어넣었다. 가을, 죽방렴의 고기들은 그렇게 배 위에서 손님을 환영하듯 쉬지도 않고 은빛 춤을 추었다.
살아있는 고기들에 넋을 놓고 있다가 더 이상 작업을 방해할 수가 없어서 돌아서는데 인심 후한 어부는 좋은 고기만을 골라 한바가지 푹 퍼 주었다. 살아있는 고기를 선물로 받은 나는 그 고기가 나를 위한 나만의 몫이라면 그것만은 바다로 되돌려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고기를 준 어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싶었다. 배가 포구에 닿자 돌아오는 잠시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바가지 안에서 온몸으로 보여주던 산 자의 춤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고기들은 내가 육지에 닿는 순간 그렇게 축제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그들에게 그것은 눈앞에서 기다리는 최후의 시간을 춤으로 대신한 짧고도 아쉬운 절명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죽방렴을 통해 예전 조상들이 시도했던 자연의 흐름을 이용한 삶의 방식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무엇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거두는 생활방식은 과욕으로 본질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 듯 싶었다. 그 옛날 죽방렴에 삶을 기대고 살았을 우리네 조상들은 모르긴 해도 하루하루 삶을 잇는 고기잡이에 감사하며 죽방렴에서의 시간을 축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의 양식이 늘 그 안에 있다는 믿음으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시 <멸치> 전문-
아무튼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원시적인 어로방법으로 고기를 잡는 이유는 일반 어업방법으로는 이곳의 고기맛을 따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고생하지 않은 산 고기이기에 가격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일반 그물을 사용하면 자주 갈아야 하고 보수를 해야 하지만, 죽방렴은 견고하여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도 한 몫 한다.

물목을 따라온 죽방렴으로 길 잘못 든 멸치 떼들, 물살은 바람처럼 빠르다 저 속도라면 누구라도 거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갈수록 좁아지는 물목이 막장의 함정이라는 걸 알았어도 저토록 미치게 흘러왔을까? 두렵더라도 목을 놓으러 가는 길은 어차피 순간이다 그러나 죽방렴에 든 멸치들, 어떻게 보면 춤을 추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쫓기는 자의 몸짓이다. 쫓기는 자는 초조하기 마련이나 제 발로 독 안에 든 쥐를 보고 서두를 자는 없는 법 어부의 손길은 느긋하다. 대개 독 안의 쥐는 조급증에 그날로 끝장이지만 간혹 재수 좋은 놈은 큰 바다로 되돌아가 제 2의 삶을 누리는 자도 있긴 있을 것이다 그때 마지막으로 어부의 손에서 파닥거리며 사라져간 동료들의 은빛 춤을 그들은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 김 인 자(시인·여행가) http://www.isibada.pe.kr
kim8646@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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