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달 밝은 밤, 12월의 추위도 아랑곳없이 벌써 몇 번을 나는 창선교 위를 왔다갔다했는지, 다리난간에 서서 가로등에 희미하게 반사되는 유속을 보니 느린 것 같으나 매우 급하다. 건너 창선 입구에는 매서운 추위에도 낚시꾼인지 하나 둘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지금쯤 저 물길을 따라 고기들이 죽방렴으로 들고 있을 것이다. 

좧애써 고기를 후리러 바다를 헤집고 다니지 않아도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죽방렴이다 이 원시적 어업 법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지족해협인 서해나 남해에서만 가능한데 고기를 후리며 ‘어기영차 가래질이여’ 선소리 매기는 어부들의 구수한 노래도 남해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가락이다 물목에 함정연못을 만들고 물살 빠르고 수심 얕은 곳에 부챗살 모양의 날개를 설치한 뒤 중앙에 고기를 몰아 넣을 발을 세우고 물이 찼을 때 든 고기를 물이 빠진 후에 건져내는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일단 한 번 든 고기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곳에나 죽방렴을 치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드나드는 길목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함정연못이라 했던가 죽방렴은 갇힌 고기 몸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표면이 매끄러운 대나무발을 설치한 것도 지혜롭다. 빠른 물살 때문에 이곳에서 잡은 고기 맛은 특별하다는데 지족해협에 남아있는 죽방렴, 세사에 찌든 사람들 창선도에 가서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아프리카 어느 부족도 같은 방법으로 고기를 잡았는데 남해에선 멸치 같은 잔고기들을 많이 잡는다고 한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먹을 만큼만 구하는 원시부족들의 사냥처럼 아직도 죽방렴으로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몰랐던 희망이다 이제 욕심으로 눈멀었던 한시대의 삶도 황금색으로 물드는 저녁 죽방렴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도 죽방렴에서 고기를 잡고 싶다좩
- 남해도 죽방렴 시 전문

남해도 죽방렴

죽방렴을 알게 된 건 텔레비전에서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나를 남해에 가게 한 건 이 한 편의 시가 무의식중에 만들어낸 시간일지도 모른다. 남해대교를 건너 얼마쯤 가다가 다시 창선교를 눈앞에 두고서였다. 죽방렴은 창선교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고루 나뉘어져있다. 창선교를 건너지 않고 작전과 전도 마을 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만도 여러 곳이 있는데 그 풍경은 실로 장관이다(지금은 또 다른 명물로 등장한 사천과 창선을 잇는 연륙교가 개통을 하면서 그곳에서도 여러 개의 죽방렴을 볼 수 있지만). 특히 불규칙하게 수면에 드러나 있는 어살. 둥근 홈으로 한번 든 고기는 빠져나갈 수 없는 치밀한 설계. 밀물과 썰물로 달라지는 물의 수위처럼 안으로 든 물고기도 생김새나 크기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죽방렴은 원래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자연 그대로 가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잡아 올리는 옛날 방식의 어항이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 남아있지 않은 원시어업 방법이고 그것도 주로 남해 창선 근해에서만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어장이니 남해에 갈 때마다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역시 죽방렴이다.

죽방렴, 원시의 삶을 꿈꾸는

남해에서 처음으로 죽방렴을 보았을 때 바다 한가운데 크기가 들쭉날쭉한 대나무 어살의 자유로운 설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원리나 구조는 같지만 하나도 같지 않은 자유로움의 미학, 나는 그 오랜 원시어업이 가장 자유로운 첨단과학이라는 사실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방식은 살아가면서 지금의 과학이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흐름을 이용해 살아온 치밀한 과학이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가장 원시적인 것은 가장 첨단적일 수도 있다는 원리를 나는 죽방렴을 보면서 믿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죽방렴을 첨예한 과학이 자유로운 감각으로 생활 속에 끌어들인 미학적 예술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앞서 남해를 이야기하면서 앵강만이나 설흘산을 소개했었지만 개인적으로 남해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금산이나 청정바다보다 죽방렴이다. 이유는 산이나 바다는 다른 지방에서도 볼 수 있지만 죽방렴은 예외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죽방렴은 현재의 삶을 원시의 정서로 돌아가게 하는 매혹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남해에 갈 때마다 여전히 핵심적인 코스로 죽방렴을 염두에 두곤 하는데 다른 곳을 둘러보고 마지막 코스로 죽방렴을 택하는 것도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 김인자(시인·여행가)http://www.isibada.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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