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과 경제적 성장으로 인한 고령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미 우리지역의 경우는 초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지가 오래되었다. 연령대 별로 보더라도 70대 이상이 전체군민의 2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60대까지를 포함하면 군민 2명당 1명은 노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핵가족화와 도시집중화로 인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화는 노인문제에 대한 대안을 강구하기도 전에 급격하게 진행되어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과거 공동체사회 속에서는 자식이 보험이자 노후생활의 대안이었다. 자식에게 쏟은 애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효”로 되돌아 왔고 그게 당연한 도리라 여겼다. 우리가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었던 미덕이었다.
그러나 2009년 OECD통계자료를 보면 인구 10만 명 당 노인층(65-74세)자살자 수는 OECD평균이 16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82명으로 무려 5배에 이른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통계 치다. 무엇이 우리사회의 노인들을 자살이라는 극단적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는지 심각히 고민해봐야 한다. 사회전반적인 구조적 모순이 남긴 상처다.
우울증을 경험했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 노인 중 28%가량이 우울 증세를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배우자와 동거하고 있는 노인의 경우가 21%, 자식과 동거하고 있는 노인의 경우가 27%, 독거노인의 경우는 4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자살은 관심으로부터의 소외가 일차적 원인으로 분석되며 사회전반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여 진다. 또 한편으론 의술과 의약의 발전으로 인한 수명과 건강의 연장이 가져오는 욕구의 해결수단을 찾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우선은 노인성생활의 개방화와 사회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 60이면 청년이라고 한다. 70대에도 성생활을 왕성하게 하는 노인들이 많다. 보통의 노인들은 의약의 도움이나 적절한 운동을 통하여 자기관리를 함으로써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노년생활을 하고 있다. 음지를 통한 욕구의 해결방법을 강구하기보다는 개방된 만남의 공간을 사회가 제공하고 주변의 시각이 그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사회보장책으로 강구된 기초노령연금 등으로 실질적인 생활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노인들은 기능성측면에서 기교적인 면은 다소 떨어지나 풍부한 삶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재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평균 퇴직연령이 53세인 점을 감안하면 죽을 때까지 수십 년 간을 소속감 없이 어정쩡한 상태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일회성 위로나 위문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얻어먹는 것보다는 일해서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음으로 삶의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노인들 스스로가 근로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면에서는 가용 노동력인구들이 노인세대들을 부양할 수 있는 방안을 정책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만 우리 지역과 같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노인인구점유율을 가진 곳에선 노인들에 대한 생존의 문제를 그들 자신의 몫으로 만 돌린다면 사회적 조직체계가 유지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전국제일의 실버휴양지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시설을 유치하는데 급급하기보단 진정으로 노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각종의 문화적 소프트웨어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속에서 노인이 공경 받는 풍토가 조성되고 시설까지 구비된다면 비로소 여기가 노인의 천국입니다 라는 부끄럽지 않은 명품지역으로서의 자리매김이 가능하다.
지금이라도 시급히 노인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집중되어야 하고 과거를 만들어 오늘이 있게 한 그들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 당연한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노인이 존경받을 수 있는 가치를 인정해 줄 때 그 때 노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의 의미를 가질 수가 있다.
누구나 평균적 수명을 살아간다고 가정하면 노년기는 도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노인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전체의 문제라고 봐야한다. 지금 내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얼마 후면 내가 처하게 될 문제로서 미리미리 준비해 나가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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