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닥친 한파에 집보다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 있다. 급인기를 끌고 있는 곳은 불가마 뜨끈한 찜질방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을 만한 목욕탕도 아닌 마을회관이다.

지난 몇 해간 군내 대다수 마을회관이 신축·개축되며 시설이 현대화된 탓에 낡고 외풍이 심한 시골집보다 난방효율이 높은데다 농한기를 보내고 있는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겨울철 추위도 피하고 이웃들과 환담도 나누는 정겨운 곳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분위기다. 전시성 행정이라는 일부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던 마을회관의 발전과 활용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유가에 한파, 이중고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활용방안까지 찾아내는 남해인들의 슬기로움, 그 속을 들여다봤다.<편집자주>

마을동회 때만 쓰이는 썰렁한 공간, 이장집무실, 마을공동창고 등 동네 가장 목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흉물스런 공간의 이미지, 몇 년전까지 우리네 마을회관이 갖고 있던 이미지다. 그랬던 마을회관이 전시선심성 행정이라는 일부의 비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다들 꺼려하는 혹한으로 말이다.

혼자 썰렁한 집을 지켜야 하는 대다수 어르신들에게 한 드럼당 23만원 내외를 호가하는 작금의 난방유 가격은 취재 중 만난 한 어르신 말대로 ‘간이 덕석’만하지 않고서야 쉽지 않은 일. 그런 어르신들에게 그래서 최근 몇 해동안 기억원 들여 만든 신축 마을회관은 지금 같은 겨울 어르신들에게는 딱 ‘꿈만 같은 곳’이다.

실제 이번 한파를 취재하며 둘러본 읍내 경로당은 저녁 8~9시가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을 훤하게 밝힌 곳이 많았다. 농한기 한낮 내내 소일거리 모아다놓고 함께 하거나 삼삼오오 둘러앉아 십원짜리 그림맞추기를 하는게 거의 다수 경로당의 풍경이지만 저녁밥 각자 집에서 챙겨먹고 나오는 잠시의 해산시간을 제외하고는 다시 경로당에 모여 한창 인기인 TV 일일연속극 단체관람 삼매경에 빠진다. 기자가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딱 60~70년대 동네 TV 수상기가 한 대 뿐이던 시절 그 때 그 모양이 저랬으리란 생각이 든다. 할머니들의 일상이 이렇다면 할아버지들은 주로 뉴스보도 전문채널을 선호한다. “뭐 어디서 받아먹고 어디다 투기하고 세금을 빼돌렸네” 하는 보도가 나올라치면 듣기에도 속 시원한 육두문자가 브라운관으로 화살이 돼 나른다.<사진>

이렇게 정겨운 풍경이 한창 이어지면 좋으련만…. 일부 마을은 노인회 또는 마을회 운영비로 지출되는 난방비 탓에 이장 눈치가 만만치 않아 은근슬쩍 아쉬움만 남겨놓고 썰렁한 집으로 조기 퇴근하는 경우도 실제 빈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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