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도와주지 않는다, 게으르지 않으면 산다”

“이런 사람 다시 없을 거다.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다. 사회의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지난달 ‘삼천포 어시장’상인들로부터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전화상의 제보(사람 소개)에 그치지 않고 차를 몰고 창선삼천포 대교를 건너 본지를 찾아 왔다.
삼천포 어시장 상인들의 방문 목적은 “남해 사람이니 제발 이런 사람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다리 건너 삼천포 지역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창선면 대벽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3남매를 키우며 사는 곽영순(40.여)였다.
자신이 화제의 주인공이 된지도 모르고 있는 곽 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연말 31일 오후였다.
이날 삼천포 어시장 상인들의 길 안내까지 받으며 창선면 대벽 곽 씨의 집을 찾았다.
“신문에 낼 내용도 아닌데 왜 왔느냐”는 태도였지만 삼천포 이웃 상인들의 성의(?)를 생각해서인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시골에서 애들 키우고 시부모님 모시고 살려면 달리 방도가 없었다”
“8년전 처음에는 바다에서 나는 바지락 등 조개를 캐서 뱃길로 삼천포 어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20kg 짜리 망사에 가득찬 조개를 처음에는 들기도 힘들었지만 애들 키우고 시부모님 모시고 살기위해 죽을 힘을 다해 들고 나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20kg망사도 힘에 부치지 않게 됐다”
“그런 세월을 보내다 보니 창선삼천포 대교도 개통돼 더 이상 뱃길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고, 그동안 힘들게 난전에서 일한 대가로 차량도 구입했다. 이제는 전세 가게(주희수산)까지 얻게 됐다”며 이야기를 풀었다.
신랑을 만난 사연을 묻자 인연이 되려고 그리 되었단다.
“10년전 첫 중매가 있었지만 사연이 있어 신랑과 만나지 못했고 똑같은 중매로 이듬해에 만나게 되었다. 신랑의 첫 인상은 키가 180㎝ 이상으로 커 보였다. 첫 만남에서 신랑의 주문(?)은 단호했고 그런 조건이 왜 그리 좋았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며 웃는다.
신랑의 조건은 6남매 중 아들로는 셋째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었단다.
대구에서 무남독녀로 커 시골 생활을 해 본적도 없었는데 신랑의 키에 반했고 자식으로 도리를 다하는 모습에 반해, 남해로 시집왔단다.
남편은 지금 뱃일(형망)과 농사를 도맡아 하고 참 착하다고 자랑한다.
“남해로 온 날, 모교 친선 체육대회인가 여하튼 무슨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신랑을 찾지 못해 옆 이웃에게 물어보니 ‘운동장에 뛰는 사람들 중에 키가 제일 작은 사람을 찾으라고 말해 그 때 신랑의 키가 162㎝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대교를 타고 와 남해가 섬인지도 몰랐고 시골집이 마치 펜션처럼 보였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루 일과에 대해 물었다.
“보통 오전 11∼12시에 장사가 끝나면 그 길로 남해뿐 아니라 멀리 고성, 통영 등으로 물건을 하러간다”바지락 등 어패류는 생물이기 때문에 내 눈으로 물건을 확인해야 고객들에게 좋은 상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꼭 직접 물건을 하러 간다고 설명한다.
“물건을 하고 나면 다시 창선으로 넘어와 부모님과 아이들을 챙기고 가정일 하다보면 저녁 식사시간, 그러다 9∼10시에 되면 잠깐 눈을 부쳤다가 자정이 넘은 시간에 다시 트럭을 몰고 삼천포 시장의 가게로 향한다”
“잠은 하루에 보통 4시간 정도 자는데, 잠이 쏟아지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깐 잔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정을 넘겨 캄캄한 밤에 시골길을 혼자 운전을 하는 게 처음에는 무서워 제일 힘들었는데 지금은 익숙해 져 좀 낫다”고 말한다.
가게에 도착해 물건을 정리한 후 새벽 1시 이후부터는 삼천포 어시장 상인 등 거래처에게 바지락을 직접 배달한다.
 곽 씨는 삼천포어시장에서 부지런하고 친절한 남해 창선 악바리 주희댁으로 통한다.
특히 시부모까지 지극 정성으로 모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효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삼천포어시장 상인들의 이같은 칭찬에 대해 “별로 도와 드린 것도 없는데?,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아 미안하다”고 답한다.
“그냥 열심히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칭찬을 듣는 것 같아 과분한 따름이다”고 말한다.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가라는 말로 슬며시 인생관을 물었다.
“운다고 도와주지 않는다. 게으르지 않으면 산다. 몸이 건강하면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열심히 살면 이웃도 도와 준다”
“원래 남들 말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인데, 살면서 역적이 10명이면 충신도 10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남들 말에 별루 휘둘리지 않게 됐다. 남들한테 피해 안주고  아이들 잘 건사해 내가 노력해 살면 잘사는 것 아닌가”
바쁜 중에도 동네 추천으로 창선 대벽 부녀회장을 맡은 남해 창선‘주희댁’의 꿈은 3남매가 다 자라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특히 애들을 좋아해 결손가정 애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싶단다.
인터뷰 내내 며느리 자랑을 하고 싶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꼭 잡으며 “얘가 시집 올 때는 손이 참 고왔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하러 나가다 보니 뼈마디가 굵은 남정네 손처럼 변했다”면서 “요즘 세상에 이런 며느리도 드물 것이다”고 말한 뒤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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