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

새해를 맞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삼겹살집 한 켠에 고향이 남해인 젊은이 넷이 모였다. 한 사람은 40살 초반, 조금 늦은 결혼으로 이제야 학부모가 되는 박 씨 형님, 세 살과 이제 갓난아기 테를 조금 벗은 한 살 배기 아들을 둔 서른살 초반의 친구 박 씨, 그리고 동년배인 기자, 밑으로 10살 터울이 지는 스물 넷, 지금은 군인인 동생 한 명. 그렇게 아래위로 스무 살 터울의 젊은이 넷이 삼겹살 불판을 끼고 둘러앉았다.

공교롭게도 기자를 제외하고 이들이 하는 일은 모두 같다. 다들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향 남해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어업인’이다. 동생은 지금 군인이지만 지금도 아버지 곁에서 바닷일을 돕는 ‘예비어업인’이다. 아직은 부모님도 자신도 썩 내켜하지는 않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날 자리에 앉은 젊은이들은 유년시절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았던 그리고 굳이 묻지 않아도 시름이 뚝뚝 묻어나는 고된 도시생활의 시련을 겪고 이제는 고향에서 살고 있는 공통된 이력을 갖고 있다.

다들 먹고 살 일 찾아 도시로, 도시로 떠나는 이들과 반대로 도시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 이들 네 젊은이가 나눈 고향이야기다.

▶“남해대교는 무서운 다리”

“남해대교는 무서운 다리”라 했다. 고향이야기를 처음 시작하자마자 박 씨 형님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다. 그들의 고향과 이들이 자란 도시, 물리적으로 그 둘을 이어주고 있는 다리는 심리적으로는 서로 다른 곳을 구분짓는 하나의 상징과 같은 존재여서 그렇다고 그는 말했다.

나란히 아이 둘을 가진 두 박씨에게 남해대교 이 켠과 저 켠은 시골의 불편과 도시의 편리함을 나누는 또다른 기준이었다. 갑자기 새벽에 아이가 아프기라도 할 때면, 도시에서 크고 자라 시골생활이 익숙찮고 답답해하는 아내들에게는 항상 넘고 싶은 다리.

아픈 아이를 안고 때론 시골의 답답함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다리를 넘는 이들에게 지금의 고향은 어머니 품처럼 항상 포근하지만은 않은 곳이다. 불편함과 답답함에 이해하면서도 가끔씩 목을 옥죄는 이중성을 가진 고향. 그들에게 지금의 고향 남해는 그런 곳이었다.

▶‘인심’으로 보기 힘든 과도한 ‘관심’, 이중성 가득한 고향

아내 이야기를 하는 내내 이들 표정은 ‘미안함’ 그 자체였다. 박 씨 형님이 처음 고향으로 내려올 때 아내에게 다시 도시로 돌아가자 약속했던 시간은 5년. 연년생 아이 둘을 낳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5년은 너무도 짧았다. 그렇게 첫 아이가 낼모레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다시 약속시한은 연장됐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로. 박 씨 형님은 아내에게 10년이 넘도록 ‘사기 아닌 사기’를 치며 산다 했다. 친구 박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 남편 고향이 시골인 것은 알았지만 시골에 와서 그것도 심심찮게 바닷일을 거들며 살리라곤 생각도 않했던 친구 박 씨의 아내다.

표정에 뚝뚝 묻어나는 미안함은 아내들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이웃 어르신들 때론 시어른의 ‘관심’ 때문에 생기는 아내들의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항상 아내들 이야기를 하기전에 고향의 ‘인심’이면서 ‘시골의 정’이라는 말을 붙이면서도 이들의 고향 남해 특유의 ‘인심’과 ‘관심’의 모호한 이중성 때문에 무던히도 싸웠단다. 도시에서 자라 익숙찮은 시골생활에도 나름 하는데까지 한다고 하는 ‘객지며느리’들은 유달리 더 부지런한 어른들에게는 ‘마냥 게으른 젊은 며느리’, ‘도시서 자라 철없는 며느리’가 되기 일쑤였고 이웃집 누구네 며느리보다 못한 ‘객지며느리’가 됐다.

그런 것에 힘들어하고 답답해 하는 아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지만 1년 365일 빨간 날도 없이 이어지는 바닷일에 바람쐬자는 아내 부탁 다 들어주지도 못하는 노릇. 정 힘들어하면 그나마 가까운 인근 도시에서 마트 장보기, 영화 한 편 보고 오기, 기껏해야 해 줄 수 있는게 그 정도다. 그나마 형수한테 잘 한다는 박 씨 형님이라 그렇단다. 친구 박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지만 그냥 일이 먼저다 생각하고 무심히 넘긴단다. 그래도 맘 속에 뻗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남편 고향이 시골이라는 것만 알았지 지금처럼 이곳에서 바닷일 도와가며 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던 아내였기에 더 미안한 마음이란다.

▶“자네가 뭘 안다고…. 여태껏 그래 왔네”

처음 고향에 왔을 즈음. 아버지 하시던 일이었지만 직접 해보진 않았던 바닷일이다.

한 1년을 죽을둥 살둥 해 보니 뭐가 필요한지 살짝 눈이 트인다. 이렇게 해 보면 조금 더 쉽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은 일을 하는 어른들과 상의를 해본다. “그래? 그럼 한번 자네 뜻대로 해보게”라는 답은 거의 없다. “자네가 어려서 아직 뭘 몰라 그러네. 여태껏 그리 해왔는데…”하는 답이 이들이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몇 번을 하다 이제는 그냥 얘기조차 않는단다. 몇 번을 더하면 “뉘집 아들 어른들 말도 안듣고 참 아가 안되긋데”하는 말이 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 여지껏 그래왔던 어른들의 노고를 이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르신들의 피땀어린 수고가 있었기에 그들이 지금 지키고 있는 바다가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가슴 속 깊은 곳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가시질 않는다. 기사에 이들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것도 얼굴을 내지도 못하는 것도 고향 남해가 가진 또다른 이중성이다.

▶ 제대로 된 것 하나 없는 그렇다고 없는 것도 없는…

어른이 겪는 마음고생은 그냥 저냥 넘기고 산다고 하자. 시골생활 그렇겠거니 하면서 산다고는 하지만 아이들 생각하면 지금 그네들의 고향은 막막하기 그지없다.

매일아침 면에서 읍의 유치원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줘야 하는 고향이다. 아이들 아프면 꼭두새벽에 진주로 삼천포로 달려야 하는 고향이다. 아이들 낳기 위해 삼사백씩 써가며 도시로 가야하는 고향이다. 그런데도 매일 늘어가는 건 마을회관이고 복지회관이고 공공시설물이고 도로다. 필요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요즘같이 해가 짧은 겨울이면 면에는 저녁 7시, 그나마 읍은 9시…. 고향은 어둡고 고요한 적막에 휩싸인다. 생기라고는 없다.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고향이다.

어느 곳이건 제대로 된 것 하나씩만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제대로 된 식당 한 곳, 청소년을 위한 제대로 된 문화공간, 아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놀이공간, 아이들 믿고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소아과 한 곳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이들에게 고향은 뭐든 항상 아쉬운 그런 곳이다.

▶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고향이야기 마지막

이들과 이날 저녁 참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지면에 다 담을 수 없는 무능함을 또 자책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아직까지는 새해 분위기가 한창이다.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공감했던 고향이야기.

이들에게 고향은 젊은이들의 어깨를 도닥여 주는 어른들이 많은 곳이었으면 했다. 젊은이들의 왕성한 혈기를 잘 다뤄줄 경험많은 어른들의 힘이 함께 모여야 할 고향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직은 아쉬움이 많은 뭉쳐야 할 것들이 흩어져 있어 더욱 아쉬운 고향이다.

세상은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은 새로운 산업, 알파라이징(Alpharising)을 외치는 세상이다. 이들의 고향은 알파라이징은 커녕 아직도 1·2차 산업 그대로다. 나서서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입으로 알파라이징을 말한다. 미래를 말한다. 꿈을 말한다. 그런데도 아직 이들의 고향은 예전 그대로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얼마전 스치듯 본 예능프로그램에서 ‘남자에게 소주는 아픔이다’라는 말이 불현듯 다시 떠오른다. 올해가 다 가고 다시 내년 이맘때 이들과 나누는 소주는 쓰리고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달래는 아픔의 소주가 아닌 희망을 확인하고 생기넘치는 고향을 위한 축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팍팍한 살코기가 아닌 삶의 윤기를 더하는 삼겹살 같은 기름진 고향을 확인하는 마음이다. 삼겹살에 소주, 꿈보다 해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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