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내내 병원에 있었다.
‘대상포진’이란 다소 생소한 병명의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한 것이다.
평소에 귓전으로 슬쩍 듣긴 들었던 병인데 나에게 발병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지난 달 내내 몸이 무겁고 몸살 기운이 있어서 예사로 오래가는 감기인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 부위에 모기에 물린 상처가 있어서, 집안에서 월동하는 독종 모기를 소탕하느라고 매일 아침 법석을 떨곤 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지네나, 혹은 그 비슷한 벌레에 쏘인 듯 제법 굵고 긴 붉은 상흔이 격통과 더불어 어깨 부위에 나타났다. 대상포진이었던 것이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 종이 신문은 단 한 줄도 보지 않았다. 몸도 아프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입원한 것을 기화로 세상살이와 일정기간 담을 쌓아 마음도 쉬고 싶었던 것이다.
일주일 입원을 마치고 나와 보니 세상이 참 희한하게 보인다. 불과 일주일만 잠시 세상을 등지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우선 처음 드는 느낌이 정치 평론가들에 있어서 한국은 천국이란 것이다. 왜냐면 꼬집을 소재가 무궁무진 하다는 것이다. 우선 날치기 통과한 예산안 처리과정에서의 국회의 안팎만 살펴보아도 할 말이 너무 많다.
현 정부 들어서서 3년 연속으로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있으니 날치기 통과는 절차상 의례히 그런 것이라 마음 편히 생각하자. 또 날치기 과정에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폭력행위도 귀엽게 봐 주자. 쇠사슬도 끊는다는 괴력의 의원이 상대 당 의원을 피 박살낸 것도 병가지상사 정도로 생각할 일이다. 또 힘이 넘치는 바로 이 의원이 여성 속기사의 머리채를 잡아 챈 것도 이해해야 한다. 왜냐면 이 군 출신의 의원은 여 속기사를 상대 당 여성 당직자로 알았고 또 머리채를 잡은 것이 아니고 멱살을 잡았다고 했으니, 면상을 얻어맞고 피 칠갑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할 일이다. 이런 것은 忘年회를 하면서 다 잊어도 괜찮은 일이다. 아니 할 말로 미친개에게 물리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느냐고 생각해 보면 천만 다행한 일 도 될 것이니까.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될 일들이 많이 있다. 너무 많아서 몇 가지만 추려서 적시할 수밖에 없는데 이 선별과정도 쉽지 않았다. 우선 소액인 것부터 말해 보자.
한식 세계화 사업 예산으로 310억이 배정되었단다. 동시에 대한민국 결식아동 25만 명의 방학 중 급식비 203억은 전액 삭감됐다. 급식비로 정부는 작년에는 542억원, 올해에는 203억 원을 지원했지만 이는 경제위기를 고려한 한시예산이었기에 지원했던 것이라서 내년에는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경제위기가 지났기에 결식아동들이 다 사라졌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것도 이해하자. 우리나라 아이들이 배를 곯고 있는 상황에 우리 한식이 맛있다고 세계에 선전을 하겠다는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물어야 할 것이 있다. 항간에 대기업 연말 보너스라 일컬어지는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는 왜 살려 놓았냐 말이다. 이 ‘임투’는 버젓이 내년에도 살아남았다. 이는 필자가 지난 번 시론에서 이미 우려하고 경계한 바 있는데, 지난 20년 동안이나 기업을 세제혜택을 통해 지원해 주는 제도이다. 내년에 살려 놓았기에 이제 21년째 연장되는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지난해 기업들은 2조 32억 원의 혜택을 받았고 그 중 84.7%가 대기업에 떨어졌다. 이 제도의 이름에도 ‘임시’란 접두어가 떡하니 붙어 있지 않는가? 너무나 ‘한시’성격이 분명한 이 제도는 멀쩡하게 살려 놓아서 어마어마한 세금을 왜 깎아 주냐 말이다. 돈을 쌓아 놓고 있는 대 기업에! 중앙정부의 눈에는 이 대기업들이 불쌍해 죽겠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통 큰 부분을 말해 보자. ‘형님 예산’ 뒷감당에 10조원이 든단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에 배정된 ‘형님 예산’의 전체 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한다고 14일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발표했다. 이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09년 이후 시작된 사업의 총사업비 4조8070억 원에, 현 정부 출범 전에 시작됐으나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중단했다가 이번 날치기 과정에서 살아난 총 사업비 5조1606억 원을 합하면 9조9676억 원에 이른다. (한겨레신문 12월 15일자 )
정말 萬事兄通인 모양이다. 예산 규모를 보니 통도 크다. 너무 통이 크니 몇 푼 안 되는 결식아동 지원비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무슨 끼워 팔기도 아니고 예산안 날치기에 ‘국군 파병’안도 들어있는 것이냐? 도대체 국군 파병 같은 엄청난 중요한 사항이 덤으로 ‘땡 처리’할 것인가 말이다.
관련 상임위에서 상정도 되지 않아서 여당 국회의원들도 잘 모르는 일이 그냥 무작하게 넘어 간 것이란다. 미묘한 중동 정세와 국제 정세 속에서 심사숙고, 또 숙고하여야 중차대한 문제인 것을! 비슷한 경우는 건국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의 ‘월남 파병’이다. 이때에도 국회에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거친 것이었다.
망년회 시기라 온갖 궂은일들은 다 훨훨 털어 버리고 가고 싶더라도 이번의 국회 예산안 날치기 사건에 관련하여 일어난 사태들은 기억해야 한다. 국민들의 혈세가 어떻게 배정되고 국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유권자들이, 국민들이 눈을 밝혀 또렷이 보고 똑 바로 기억하지 못하면 또 다시 이런 작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역사 굽이를 숨 가쁘게 돌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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