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代에 걸친 유자 사랑, ‘유자연인’으로 탄생

유자엑기스에 이어 유자청, ‘인기몰이 中’

새콤하면서 달작지근한 맛이 혀 끝에 닿는가 싶은 순간 딱 고만큼 새콤하고 달큰하면서도 향긋한 유자향이 콧 속을 파고 든다. 어릴 적 엄마 품에서 안겨있을 때 나던 엄마 냄새처럼 편안하고 따사로운 느낌이 든다.

나는 유자차를 마실 때마다 항상 이런 느낌을 받는다. 마치 엄마 품에 포옥 안긴 것마냥 편안한…. 유자차를 마실 때마다 딱 지금 요만큼 추웠고 그만큼 더 따뜻하게 느껴지던 아랫목에 누워 머리 맡에서 토각토각 도마 위에서 썰려나가던 유자내음을 떠올린다. 유자를 많이 썰어 손목이 욱신하다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띠며 그 위에 하이얀 설탕을 솔솔 뿌려내던 엄마 표정도….

아마 화일 씨가 5년 전 고향으로 내려와 집 뒷배미 구릉에 널찍히 앉은 유자밭을 찾았을 때 그는 아마 내가 유자차를 마실 때 그 느낌보다 더 편안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그의 아버지 서상권 씨가 딱 화일씨 나이만큼 먹은 그 유자나무를 그 자리에 심었고 화일씨와 유자나무가 비슷한 세월을 함께 먹고 자랐으니 유자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의 감정과 감히 비교조차 되랴.

회룡마을 집 뒤편 유자농장을 찾던 날도 화일씨는 어머니 박정숙 씨와 저 안켠 유자나무에서 노란 바구니에 탐스럽게 익은 노오란 유자를 담느라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5년전 화일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자밭에 발을 딛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 ‘유자가 이러면 안되는데…’였다. 남해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다 알겠지만 한때는 ‘대학나무’라 불렸던 유자나무였다. 나무에서 딴 유자 팔아 자식들 대학보내는 학자금 댈 정도로 남해유자는 전국에서도 최상품으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남해유자가 언젠가부터 고흥에 치이더니 거제에 밀리고 통영에 눌렸다. 남해사람들에게 향수(鄕愁) 그 자체였고 또 다른 고향이었고 내음만으로도 엄마 품을 떠올리게 했던 유자는 쓸쓸히 밭 언저리, 집 뒤뜰, 담장 한 켠을 우두커니 지키고만 섰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화일씨에게 유자는 곧 자신의 분신이었고 동시에 아버지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5년간 유자를 갖고 속된 말로 지지고 볶고 다 해 봤다. 이 청년, 남해유자의 부활을 화려한 변신을 꿈꿨다.

그렇게해서 탄생한 것이 이름 속 숨은 뜻도 고운 ‘유자연인’이다. 과실 껍질을 먹는 유자는 농약과는 멀다. 친환경·유기농, 오가닉농법 어지간한 것들 많지만 단연 유자가 독보적이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You 자연인'이다. 유자차 마시는 당신이 진정한 자연인이라는 뜻. 틀어 읽어도 참 그 이름 곱다. ’유자 연인(戀人)‘,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화일씨. 2대에 걸친 유자 사랑이니 유자의 연인, 맞다.

화일씨 이름도 사연이 특별하다. 딱 벼를 거둬들일 시기에 태어났다 해서 조부가 지어준 이름 벼가 춤춘다, 벼 화(禾)에 춤 일(佾). ‘유자연인’인까지 유자농장 옆에 작명소 차려도 대성할 집안이다.

그렇게 2대에 이어 온 유자 사랑이 그리고 화일씨의 꿈이 이제야 조금씩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모양새다.

지난달 창원에서 열린 ‘feel 경남 특산물 판매장터’에서도 먹기 좋은 파우치에 담겨 깔끔하게 유자맛을 즐길 수 있는 유자즙이 인기를 끌더니 얼마전부터 후속탄으로 야심차게 개발한 과피를 분쇄해 만든 ‘갈아만든 유자연인 유자청’이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김장대축제에서 가져간 물량이 모자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관심을 넘어 고객들의 반응이 남해유자의 화려한 부활을 조심스레 예상할 정도로 뜨겁다. “유자차로 먹어도 좋지만 곱게 갈린 유자청이라 식빵이나 토스트에 잼 대용으로 발라 먹어도 색다른 맛이 난다”는 고객들의 시식평은 제품을 개발한 화일씨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팁이라고.

이만하면 제법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 싶은데 이 청년,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히딩크 정신으로 탄탄히 무장을 갖춘 모양이다. 고흥, 통영, 거제 유자는 따라오지도 못했던 과거의 남해유자, 매끈하고 보기 좋은 접목유자에 밀려 한 주 두 주 집에서 밭에서 직접 뿌리째 심어 세월먹고 자란 실생목 유자의 가치, 그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뛰어넘는 남해유자의 부활을 어떻게든 이뤄내 볼 요량인가 보다.

원조를 따라하다 못해 이제 싼 값에 남해유자를 사들여 고흥, 거제, 통영유자로 둔갑해 팔려가는 등 농락까지 해대는 못된 유자들을 응징할 모양새다. 장수의 기백이 느껴진다. 이 청년, 아버지의 피땀으로 만든 서면유자작목반을 토대로 남해유자 원정토벌대를 꾸릴 계획이란다. 조합법인을 만들었고 이제 가격과 상품경쟁력에서 다시 원조의 화려한 부활을 알릴 실생목 유자의 물량확보와 유통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를 갖추는게 가장 먼저 탈환해야 할 ‘고지’란다.

지난 5년간 그냥 유자로 ‘유자연인’을 만들기까지 그리고 그가 앞으로 꿈꾸는 진정한 유자의 부활에 이르기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힘이 들지 모른다. 어쩌면 매끈한 접목유자 표면보다 그가 사랑한 실생목 유자껍질처럼 울퉁불퉁한 질곡의 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청년, 꼭 해낼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런 뒤에 접목유자에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실생목 유자향처럼 이 청년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내음이 더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함께 말이다.

오늘 난 따뜻하고 향긋한 유자차 한 모금에 오래전 엄마를, 고향의 편안함을, 진한 사람내음을 담아 마셨다. 오래도록 마음 속에 이 향기가 남아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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