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한 여름이 가는 듯싶더니 가을이 들어설 틈도 없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먼데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갈대숲을 누이고 들풀을 말리고 잎사귀를 털어 내렸다. 싱그러움이 황량함으로 바뀌는 이 계절에 서면 우리네 삶마저도 발가벗긴 듯 가난한 자와 풍성한 자의 차이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인정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에 대한 철학적 사고의 빈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미국의 40대 거부들 중심의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버크셔해서웨이사의 워런 버핏 회장을 필두로 한 미국의 부호들이 세계적으로 기부문화를 확산하기 위하여 자기의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며 기부문화 정착을 선언한 것이다.
빌게이츠가 535억 달러, 워런 버핏이 470억 달러,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280억 달러,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18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폴앨런이 135억 달라, 선아메리카 창업자 엘리브로드가 57억 달러,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가 30억 달러, 힐튼호텔 전 회장 배런힐튼이 25억달러, 록펠러 가문 후손 데이비드 록펠러가 22억 달러, CNN 창업자 테드터너가 18억달러를 사회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환원을 선언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어림잡아 175조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올해 한 해 예산의 60%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워런 버핏의 이야기다. 얼마를 기부하느냐 하는 액면적 가치의 많고 적음보다는 재산과 행복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판단하고 있느냐 하는 워런버핏이 가진 생각이다. 그는 그가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해서웨이사의 소유주식 1%만 쓴다고 해도 그의 행복이 더 나아지거나 불행해 진다는 생각을 좌우할 정도가 아닐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에 99%의 소유지분으론 전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이 건강이나 행복을 위하여 투자하는 것이 응당 자기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부를 가지기 까지 사회의 구성원들이 제공했던 재화와 용역에 대한 사회의 환원을 생각하기 보다는 부의 대물림을 위하여 상속세의 폐지를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의 부자들이 기부의 서약을 통하여 같이 상생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 우리의 부자들은 알량한 기부금에 대한 영수증을 챙겨 감세에 혈안을 올리기에 급급하다. 결국은 소득의 투명한 공개를 통한 세금의 납부와 그로 인한 모두의 행복을 지향하기 보다는 한 푼이라도 덜 내기 위하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기부문화는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굳이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부의 재분배를 통하여 더불어 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경제활동의 기본이다. 예를 들자면 많이 번 사람이 장롱 속에 돈을 쌓아두기 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기부할 때 그도 기부한 사람이 경영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능력이 생기고 좋게 형성된 이미지로 인하여 더 많은 부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상생의 지혜다.
하물며 남해와 같이 끈끈한 정으로 만들어진 좁은 지역사회의 경우엔 더더욱 이런 문제에 대하여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 연말이면 누가 얼마를 불우한 이웃들에게 성금을 보냈다는 기사가 지역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화제가 되는 우리 주변의 인색함을 보면 좀 더 라는 아쉬움이 항상 마음을 짓누른다. 이는 필자도 예외 없이 그 범주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다. 그래서 늘 고향과 고향사람들에 대하여 미안하다.
이제 우리도 기부문화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가진 재산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때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마음 다짐만이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생을 위한 나눔의 섭리를 지켜가자는 약속이다. 이 겨울은 인정의 따뜻함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같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이 필요한 때이다.
기부를 통한 새로운 문화의 발견,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공존을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활력소가 됨을 가슴깊이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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