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마을에서 본 물건리 암수등대.

 

독일마을

반드시 독일에 가야 독일마을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남해에 가면 독일의 전원마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있다. 물건방조어부림으로 유명한 마을 바로 물건리가 그곳이다. 한국인으로써 한 때 독일로 건너가 일자리를 얻고 가정을 꾸려 거주하던 사람들이 뒤늦게 조국으로 돌아와 제 2의 인생을 펼치는 물건리에 독일마을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알기로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가을에 둘러보니 그간 제법 여러 채의 집들이 생겼는데 독일마을답게 그곳에 지은 집들은 붉은 기와를 이용한 건축양식으로 대부분 전통독일식을 그대로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무엇보다 마을 뒤에 올라가 탁 트인 물건항을 내려다보면 양쪽으로 암수의 등대가 애틋하게 서로 마주보고 있어 그럴 듯한 그림이 연상되는 독일마을.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특히 건축물은 실용성과 합리성을 우선하는 독일인들의 사고를 그대로 반영하여 1층은 차고 겸 창고나 작업실로 쓰고 2,3층은 주거용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주방 기기나 욕실 기기 모두 독일에서 가지고 온 것들이라고 했다.

  
 
  

독일마을

 
  

내가 그곳에 들렀을 때 한국인을 아내로 둔 독일인 할아버지는 1층 작업실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계셨는데 유감스럽게도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하셨다. 그렇다고 영어를 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몇 마디 질문을 던졌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독일어로만 하고 내가 뭘 물어보면 2층에 있는 아내에게 가보라며 손짓만 하신다. 작업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다가 2층에 올라가 그의 아내를 보니 독일할아버지는 매우 아름다운 한국인을 아내로 둔 행운아 같았다. 마침 친지들이 모여있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니 문고리장식, 주방용품 하나에도 견고하고 실용적인 독일인의 사고가 반영되어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집안으로 드는 외부 나무 계단 사이에 곱게 채워놓은 것은 여름 내내 가까운 송정해수욕장에서 주워왔다는 조개껍질들이었는데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으나 단 하나도 흐트러짐 없는 것을 보니 분명하고 섬세한 그리고 낭만적인 독일인의 사고가 그대로 느껴졌다.

 

방조어부림

  
 
  

물건방조어부림과 몽돌해변

 
  


인터넷 어느 싸이트였는지, 바다 한가운데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암수등대를 보고 참 그럴듯한 풍경이구나 했는데 그 곳이 바로 물건리 등대였다는 건 남해에 가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물건리는 방조어부림을 경계로 등대가 있는 포구와 논밭이 있는 마을로 나뉘어 진다. 포구와 방조어부림을 한눈에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동천마을 가는 언덕에 차를 세우고 저만큼 시선을 아래로 던져보면 제격이다. 남해에서 제법 큰 어항을 가진 물건리 포구를 독일마을을 둘러보고 내려섰을 때 사람들은 늦은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역시 젊은 사람은 다르다. 물건리는 아침 일찍 와서 일출을 보는 게 제일 좋다고 일러주는 젊은 어부는 내가 들고 있는 작은 카메라에 관심이 많다.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바다에 기대고 사는 것이 천직이니 어쩌겠냐는 한탄조의 푸념을 했다. 이곳 역시 태풍의 상흔이 아물기까지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상흔을 안고 그래도 바다에 나가기 위해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어깨는 왠지 무거워 보였다.  

예부터 느티나무는 귀목, 신목, 영목이라하여 어느 지방이나 마을로 드는 입구 혹은 중심부에 느티나무를 심어 모셔왔다. 느티나무 뿐 아니라 오래된 나무를 모시는 풍습이라면 그들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은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남해의 천연기념물로는 미조상록수림, 산닥나무자생지, 고현느티나무, 단항왕후박나무 등이 있으나 그중 물건방조어부림은 그 규모 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그런 물건방조어부림도 지난 번 태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몇 백년 수령을 가진 나무들의 상처는 참혹했다. 그러나 저 참혹한 상처가 자신의 몸을 앞세워 마을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평소 마을을 해풍으로부터 지키는 것은 물론 바다로부터 고기를 불러들인다는 방조어부림은 자연을 이용한 매우 흥미 있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물건방조어부림은 잘 가꾼 인공 숲의 한 전형이다. 고기를 불러들여 어족을 풍부하게 하는 것 외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주는 미적, 정서적 안정감은 물론 한여름 바다를 찾아온 피서객들에게 양질의 산소와 시원한 그늘을 아낌없이 제공해 준다. 그 외에도 산에서 바다로 이동하는 바람과, 바다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바람을 조절하는 등, 어부림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 조상들은 나무 한 그루라도 함부로 헤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출시간에 돌아보는 물미(물건리와 미조항)해안도로의 절경은 과히 압권이라 할만하다. 특히 몽돌 구르는 소리가 일품인 물건리 해안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방조어부림 그늘에서 즐기는 휴식은 고단한 삶의 여정을 잊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숲은 곧 에너지다. 그것은 바다에 있는 숲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예까지 왔으니 한 구비만 돌면 얼굴을 내밀 해오름예술촌을 들르지 않을 수는 없다.

 /김 인 자(시인·여행가)
http://www.isibada.pe.kr/ kim8646@netian.com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