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필규 씨(39, 읍 중촌)를 찾아 남면 항촌마을 ‘아부나이’ 갯바위를 찾던 날은 바람이 몹시도 심하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바람에 파도가 일어 퍼런 바다 곳곳 하얀 포말이 일고 너울은 연신 갯바위에 부딪혔다 사라졌습니다.

바람에 맞서 부지런히 날갯짓을 해대던 갈매기도 잠시만 숨을 돌리면 강한 바람에 족히 수 십미터는 다시 왔던 길로 떠밀려 가던 그 날도 정필규 씨는 항촌 갯바위로 내려가는 좁다란 길 한 켠에서 담배꽁초며 과자 봉지를 누런 마대에 담느라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닌 그 갯바위 청소를 그는 이날처럼 바람이 불던 날도, 비가 오는 날도, 손마디가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도…. 전국에서 몰려들 정도로 인기 있는 항촌 갯바위 위 낚시꾼들이 있는 날이면 정 씨도 항상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건설 일용직 일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한참을 쉬었다는 그입니다. 그러다 어릴적부터 좋아하던 낚시나 하자는 생각으로 자주 찾던 항촌 갯바위에 왔던 그입니다. 곳곳에 버려진 깨진 소주병, 부탄가스통, 조금 으슥한 곳에는 어김없이 널려있는 변까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세디센 바람과 갯내음에 묻혀 나지 않을 것 같던 지린내가 코 끝에 닿네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손에 든 것이 쓰레기 담는 마대였습니다. 매일 올 때마다 낚시가방은 챙겨오지만 이날도 정 씨의 낚시대는 바다구경에 실패했습니다.

진입로 큰 길부터 훑어 내려가 고불고불 좁다랗게 난 길 옆으로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중간쯤 쌓아놓은 쓰레기포대가 족히 예닐곱 개는 돼 뵙니다. 쓰레기를 다시 병은 병대로 캔은 캔대로 분리수거해 집으로 가져가고 갯바위 틈에 쌓아둔 것들은 뱃일 하는 아는 동생 쉬는 날에 불러 싣고가 처리한다네요. 돈 나오는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이 곳에 오는 낚시인들에게 정 씨는 ‘어촌계장’, ‘이장’으로 불린답니다. 이 곳의 매력에 빠져 자주 오는 분들과는 남해 오기 전에 전화로 조황정보도 나누고, 호형호제하도 하고, “시간나면 놀러오라”는 초대도 받고, 그 분들이 다시 항촌 갯바위를 찾으면 커피도 나눠 마시는…. 그렇게 정 씨는 ‘어촌계장’, ‘이장’을 넘어 남해군 홍보대사 역할도 합니다.

때론 “사장님 쓰레기 버리시면 안 됩니다”하는 정 씨의 말을 기분 나쁜 투로 받아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처음 몇 번은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정 씨를 아는 분들이 ‘서포터즈’가 돼 싸울 일도 없다며 웃는 그입니다.

“여기 오는 분들 별의별 분들이 다 있어요. 기자도, 대기업 임원도, 군 장성도 다들 이 곳에서 만나 인연이 이어지는 분들이에요. 못 배운 제가 여기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배우고…. 좋아하는 낚시해서 좋고 좋은 사람들 만나 좋은 얘기 나누니 좋고…. 여기 자주 오는 분들과는 가족처럼 지내요. 가족 같은 분들 맞는데 항상 이 바다가 깨끗해야죠. 다른 이유 없어요. 그것뿐이에요”.

인터뷰 하는데도 연방 곳곳에 앉은 낚시인들이 “계장님!”, “이장님”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걸어옵니다. 낚시인 한 분이 “이 양반, 참 대단한 사람이오”라며 한 마디 보탭니다.

몇 년을 그렇게 항촌 갯바위를 지켜온 정필규 씨. 여기 오는 분들 쓰레기 버리지 말아달라는 현수막 한 장과 진입로변 논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끔 차로 막아놓는 초행 낚시인들 보시라고 ‘주차금지’ 안내판 하나 세워야 겠답니다. 방법을 몰라 아직 못하고 있지만 분리수거용 틀도 하나 짜서 가져다 놨음 한다는 그입니다. 청소자재 챙겨놓을 작은 캐비닛 하나가 있으면 더 좋겠구요.

그렇게 항상 그가 있던 갯바위 위에 두고 다시 찻길로 오르는 길. 중간쯤 그가 쌓아 놓은 쓰레기 포대 곁에 들국화가 바람에 흔들리며 가는 발걸음을 잡습니다. 소박하게 아무도 봐 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향을 내고 가는 걸음을 붙잡는 그 들국화가 정필규 씨를 닮았습니다. 당신이 보물섬 남해를 지키는 진정한 보물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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