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지성과 양심은 소용없다. 장롱속의 금송아지가 그렇듯이 공동체속의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여 실사구시의 지혜로운 해법에 지식인들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다.
무릇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인간사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는 도덕적 신뢰의 회복과 배려이다. 법은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규범이며 질서다. 다수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그것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존립에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해결책을 논의 한다는 것은 가장 하위단계의 균형유지이지 원만한 가치의 실현 방법이 아니다.
지난 3년 간 우리는 참으로 우매하리만큼 장밋빛 환상을 꿈꾸며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서 강자가 정해놓은 협상카드에 순응하며 복종하다시피 모든 걸 다 주었다. 그 어려운 공유수면매립허가를 받기위하여 발이 부르트도록 쫒아 다니며 형성했던 20여 군데의 적극적 투자가들과의 컨소시엄을 배신자의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포기각서를 받아냈고, 90%에 달하는 관련부지의 토지수용동의를 이끌어 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 아비 어미를 설득시켜 조상의 묘소마저도 옮겨주었고, 형제, 자매 그리고 친구나 사돈팔촌의 재산마저도 법적제한을 감수해 줄 것을 부탁하며 그것이 우리 모두의 미래고 이 길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기업으로서의 가치실현을 위한 삼성의 명성과 윤리관을 믿고 우리는 적어도 송두리째 모든 걸 바쳤다. 
그런 삼성중공업이 오늘 우리에게 저지른 일은 무엇인가? 개처럼 부려먹고 법적 하자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모두를 죽이려 하는가? 어떻게 이끌어 온 지난 삼년간의 헌신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대안 없이 마음대로 남해군민의 목을 죄는 파렴치한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관계된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은 아무데도 없었다. 우리는 인간사회에서 생존한 게 아니라 법 앞에 우월적 지위를 가진 야수 앞에 가장 가련한 먹이거리였단 말인가? 이제 희망은 사라졌다. 아니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래도 우리는 침묵해야 하는가?
삼성중공업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서 출발했던 대우조선해양(주)도 성실한 약속이행을 통하여 바로 옆 동네인 하동 갈사 만에 원래는 남해와 컨소시엄을 형성하였던 오리엔탈정공, 선보산업 등 관련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냈고, 하동군은 백오십오만오천평방미터의 조선산업단지 토지분양계약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관련기업들의 희망투자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신뢰와 희망을 철석같이 믿고 쏟아 부었던 오십만 남해군민의 애정 어린 삼성중공업에 대한 충정의 대가가 바로 코앞에서 대우조선해양(주)가 하동군민에게 안겨준 꿈의 실현과 비교되어지는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단 말인가? 삼성중공업만 믿고 우리가 배신한 그들이 하동군에 투자확정을 짓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좌절하고 비참해짐을 느낀다.
우리는 남해군민이다. 고춧가루 서 말 먹고 물길 십리를 간다는 바로 그 남해사람이다. 우리의 생존 앞에 스스로 분노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지켜줄 자 아무데도 없다. 부당함에 대한 철저한 분노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삼성중공업은 이번 사태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단순히 법의 논리론 우리를 설득시킬 수 없음도 명심해야 한다. 원래 그랬듯이 서로가 상생하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산단이든 아니면 대응투자이건 충분한 꿈의 보상과 납득할만한 대안이 없는 한 우리는 결사항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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