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속의 섬을 찾아서3 - 미조면 호도
섬속의 섬을 찾아서3 - 미조면 호도
  • 한중봉
  • 승인 2004.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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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짝에서 옹기종기 사는 외도사람들
  
 
 
  
 
  
  
 
  
도선 갈매기호에 탄 승객들. 
  

호도행 갈매기를 타고

호도로 가는 배에 몸은 실은 것은 1일 오전 11시 10분. 미조항 선착장에 기다리고 있는 도선에 오르자, 승객대기실에는 16명 가량 되는 승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다.

“손님들이 많네예?”“오늘 미조 장날아닙니까. 평소에는 빈배로 당기는 날도 많습니다”

조도와 호도를 미조를 오가는 도선 갈매기호 운행을 책임지고 있는 손기수 선장(56) 선장은 말보다 손서래가 앞선다.
선장실과 승객대기실에 가로놓은 창문을 열고 주민들과 인사를 하자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배가 10여분을 달려 조도 큰섬에 이르자 승객중 4명이 내렸다. 다시 키를 돌려 작은섬에 다다르자 6∼7명이 내린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호도로 가는 사람뿐이다. 미조 병원에 갔다온다는 사람, 장보려 나온 아주머니들 5명이었다.

  
 
  
호동에서 제일 젊은 손정진씨. 
  

‘낚시꾼 상륙 금지’

호도에 내리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전에 승객대기실로 쓰였을 법한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건물 내벽에는 ‘낚시꾼 사용금지’라는 글씨가 씌여져 있다.

그 옆 방파제 벽의 ‘낚시꾼 상륙금지’란 글씨도 눈에 들어온다.

섬 사람들은 낚시꾼하고 무슨 웬수(?)가 졌을까?

선착장 근처 배에서 통발을 손보고 있는 사람에게 “낚시꾼들이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 갑지예?”하고 물으니 “말도 마이소. 별 도움도 안 되는 사람들이 쓰레기는 아무데나 버리지 않나 또 바다오염은 얼마나 시킵니까. 떡밥을 하도 많이줘 바다 밑이 허옇게 변했다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은 풀어놓은 염소까지 잡아먹으니..... 우리는 그 사람들 별로 안 반갑습니다”역시 손서래를 친다.

이 사람이 호도에서 가장 젊다는 손정진(38)씨다. 손씨의 배에 올라 통발을 보니 물메기 한 마리에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물고기 몇 마리가 보일 뿐이다. 반면 불가사리와 알이 차지 않은 성게가 제법 많아 보였다.

“기름값도 안 나옵니다. 계속 이리하모 이 짓도 하기 힘들지예”고향에 산다는 것이 섬이나 뭍이나 마찬가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로 가는 길이 예사 경사가 아니다.  
  

호도주민들은 가스배달부

호도는 인가가 바다 주변에 없는 것이 보통 섬하고 다르다. 범이 무릎을 굵고 있는 지형을 갖다대자면, 등판 오목한 곳에 집들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앞다리를 밟고 등판쯤에 올라야 집을 구경할 수 있다. 오르는 길이 예사 경사가 아니다.

좁게 난 골목길 양옆으로 집들이 도열해 있다. 그러나 두집 중 한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호도는 생각보다 넓고 아름다운 섬이다. 섬 넓이가 9만평 가량 된다고 한다. 조도보다 사람은 적지만 넓은 섬이다. 또한 조그마한 섬에 드물게 밭농사도 적지 않고 한때는 논농사도 있었다. 지금은 노동력이 고령화되어 놀리는 땅이 늘었지만 뭍처럼 마늘농사도 많았다고 한다.

또, 섬치고 물 걱정이 덜 한 것도 복이다. 이 마을의 책임자인 이범용(71) 반장은 “마을에 소류지가 있고 우물을 만들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을 정도라 큰 어려움은 없다.

해수담수화 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것 뿐 집집마다 2∼3개의 큰 물통이 눈에 띈다.

물 걱정이 없으니 다행이라 싶어도 다른 큰 어려움이 있다. 섬인데다가 인가가 위쪽에 있다보니 가스나 기름 운반하는 것이 예사일이 아니다. 미조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면, 도선에 실어주지만 선착장에서 집까지 운반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가파른 길에 가스나 기름을 배달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나보니 집집마다 가스통이 두 개는 기본이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점이 가장 불편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도 안되면 객지에 나간 자식들이 들렸을 때를 맞춰 주문할 정도라 한다.

  
 
 
  
 
  
 
 
  
바다에서 본 호도의 모습 
  

호도의 포효를 기다리며

한때 호도도 살기 좋은 때가 있었다.
1900년대 초반 이곳에도 돈은 넘쳤다. 섬 주변에 널리고 널린 홍합이 돈을 가져다줬다.

홍합을 삶아 말려 중국에도 수출을 하고 삼천포에도 내다 팔아 흔히 말하는 ‘부자’가 되었다. 한때는 미조 본촌에 땅을 가지지 않은 호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마을 최고령자인 곽은규(78)옹이 “사항마을에 3가구가 살 때 호도에 17가구가 살았다”고 전하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호도의 산 증인 곽은규옹 부부의 모습 
  

호도에 가장 사람이 많았을 때는 70년쯤이다. 25가구에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삶을 엮어갔다.

그러나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서 사람이 떠나고 돈을 벌어 살기좋은 도처로 나갔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10가구에 17명, 30대 1명, 40대 1명을 제외하며 예순이고 일흔이다. 

그나마 있는 젊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떠나고 남아 있는 예순, 일흡 노인들도 세상을 뜬다면 호도는 얼마가지 않아 무인도로 남을 지도 모른다.

500년전쯤 양씨라는 사람이 첫발을 내딪고 그 후 백씨, 배씨가 들어와 유인도가 되었다는 호도. 일제시대 해군기지가 있었을 정도로 요충지인 호도, 너른 밭이 잠시 섬인줄 잊게 하는 섬 호도가 다시 사람이 살지 않았던 섬으로 돌아가는 걸까?

미조로 돌아가는 마지막 도선에 내일 등교를 위해 함께 오른 고등학생의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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