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속담에 ‘무엇인가 하고 싶은 간절함에 고민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그럭저럭 목표의식이 불분명한 사람은 구실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이 무한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개인이건 사회이건 생존하기위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정체할 수밖에 없다. 정체란 현 수준의 유지를 의미하지만 급속한 변화를 거듭하는 세태에 비추어보면 빠른 속도로 낙후하고 있다는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다.
흔히 남해는 최근 몇 십 년 동안 상대적 궁핍을 이야기하여 왔다. 그 원인으로 회자되는 것은 항상 내가 아닌 누구를 지칭하여 그래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쉽게들 이야기한다.
필자가 다시 글을 시작하면서 던지고 싶은 화두는 우리라는 틀 속에서 방법과 구실 그리고 제안과 실행에 대하여 우리의 시각에 어떤 모순이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고자 함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 보았을 고대 그리스의 우화작가인 이솝의 이야기 중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란 동화가 있다.
“옛날 옛적에, 모든 쥐들이, 고양이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수단을 논의하기 위하여 함께 회의석상에서 만났다. 대여섯 가지 제안들이 토의된 후에, 다소 명망 있고 경륜 높은 쥐 한 마리가 일어서서, "나는 여러분들이 승인하고 실행해준다면 장래 우리의 안전을 보증해줄 묘안 하나를 생각해냈어요. 그것은 우리의 적인 고양이 목에 방울을 묶어야 한다는 것이요. 그러면 그것은 딸랑딸랑 소리를 내서, 고양이가 다가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경고해)줄 것이요." 라고 말했다. 이 제안은 열렬히 박수로 환영을 받았고 채택하기로 결의되었다. 그런데 그때 나이든 쥐 한 마리가 우뚝 일어나서, "나는 우리 앞에 놓인 계획을 여러분들과 함께 모두 찬성하오. 하지만, 누가 그 고양이에게 방울을 묶을 것인지 물어도 될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결국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간절함에 방법은 찾았다. 그러나 제안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행동보다는 말이 쉬운 까닭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최상의 방법이었지만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기위해서 감수해야하는 목숨을 건 실행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다시 이야기를 각색해보자 “아무도 답을 하지 않자 쥐들 중 종족을 위한 사명감이 투철한 젊은 쥐 한 마리가 나서서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예 고양이를 제가 나서서 죽여 버리겠습니다.’ 모두들 젊은 고양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이내 혈기만 앞세운 일고의 가치 없는 일이라 나무라며 황당해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고양이집 앞에 모여든 쥐들은 내장이 파헤쳐진 젊은 쥐의 옆에 그토록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고양이가 같이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전날 저녁 젊은 쥐는 강력한 독을 마시고 고양이에게로 갔다. 독기가 퍼져 올라왔지만 사력을 다해 고양이한테 대 들었다. 독을 마신 줄 모르는 고양이는 냅다 쥐를 낚아채서 내장을 먹어치웠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필자는 늘 남해라는 틀 안에서의 우리를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스스로도 내 탓이오 보다는 남 탓으로 매사를 재단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산다. 어떤 구실을 내세워서던 합리화 한다. 그게 보편적 우리의 습성이고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라 치부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감한 쥐 한 마리가 아쉬웠던 것처럼 변화의 귀로에 선 지금 남해는 구체적 실행이 가능한 방법의 제안,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이라면 실행에 주저함이 없는 사명감을 가지고 공동의 발전에 과감히 참여하는 총체적 역량을 집결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선거로 갈라진 골 깊은 갈등, 지역적 이기주의나 이해관계인들의 이권에 대한 개입, 안일무사주의에 빠져 구실을 찾기에 바쁜 관행적 태도, 우리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 등등 공동의 발전을 모색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척결하고 지금은 발전을 위하여 하나 된 힘을 모우는 슬기로움을 발휘하자. 그래야 남해를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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