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 위는 남해현고지도. 오른쪽은 상주해수욕장에서 본 수영복을 입은 연인, 왼쪽 중간은 토촌마을 정덕점(71) 이점심(74) 할머니, 아래는 이동면 화계마을 할머니들이다. 오른쪽 아래는 노도다.

 

이동면 화계에 섰을 때 ‘도대체 내가 선 곳이 지도에서 어딘지’ 종잡을 수 없었다. 옛 <남해현지도南海縣地圖>를 들고 7월20일 날 잡아 남해를 둘러봤다.

옛 지도에 없는 7월의 풍경, 파격적 생략이 이뤄진 옛지도는 참 인간적이었다. 없는 게 많지만 찾을 게 너무 많은, ‘느림, 부족함, 낯섦, 역사여행…….뭐 이런 어휘가 떠오를 만한 지도’라며 팍팍 의미를 부여해 봤다.
위치 표시조차 어려울 것 같은 옛지도를 놓고 방향감각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재미, ‘여기가 이동, 여기가 삼동…….’ 남해읍 선소쯤에서 삼각형 모양의 창선도가 제법 가깝게 표시됐지만 실제 창선은 좀 멀게 느껴졌다. 현실과 옛지도 사이의 색다른 맛을 본 것이다. 이 이색성은 분명 5~600년 전 조선인이 된 느낌을 줬다. 굉장히 강렬했다.

토촌에서 일당 3만5000원에 토마토 대를 세우고 풀을 뽑는 할머니 정덕점(71) 이점심(74) 할머니가 “몇 년째 이 집에서 오라고하면 일하러 옵니더…….”라는 이들의 모습과 같이, 조선시대의 품앗이나 삯일도 비약해보자면 이 지도에 숨어 있을 법도 하다.

한 40대가 자전거를 타고 광두마을 해안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서울말, 땀 냄새......“남해가 좋다”는 그는 남해 일주를 위해 “달리노라. 가노라…….송정으로…….” 말 하는데, 지도엔 큰 내(川)를 세 개나 건너고 산을 넘고 또 넘어야할 판이었다. 지도를 보여주자 “자전거 일주만큼이나 재미있는 지도네요”라며, 흥미 있어 했다.

삼동면 지족에서 멈췄다. 옛 지도엔 지족으로 가는 길이 없다. 넘지 않고 산을 따라가거나 해안을 따라가면 삼동면 지족이 나온다. 죽방렴을 바라보는 그늘…… 이곳 어딘가에 ‘백토(도자기 원료)’가 나왔음을 나는 안다. 일제 때 일본으로 이 흙을 실어 날랐다는 증언 기록이 군지에 있다.

옛 지도를 보면서, 남해백토가 이도다완과의 연관성을 주절주절 생각하다 그만뒀다. 서울에서, 순천에서 남해를 도는 관광버스를 졸졸 따라갔다.

세계 웹 지도에 남해를 ‘금송’으로 표시한 그 금송을 두리번거렸고 ‘패류독소’로 고통 받았던 홍합어민들 일부의 양식장이 있는 양화금마을 도로가에서 동쪽 바다를 바라봤다. 옛지도에 양화금을 찾아 표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지도 주위로 남면은 ‘관에서 15리’ 등의 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이 지도가 나온 시기와 비슷한 시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정이오라는 사람이 쓴 ‘나는 남해를 여행할 거다’란 내용이 있는 이 축복의 글은 남해사람이라면 들을 만하다.

‘나는 장차 돛대를 두드리며 남해 터를 죄다 찾아다니고 성루의 난간 위에서 술을 들며 국가에서 인재를 얻음을 경하하리라.’

올 한해에 국회의장이 나고 도지사가 탄생한 것은 이 축복의 글 때문일런가.

이건 뭔!? 상주에서 눈길이 ‘확’ 끌려, 멈췄다. 벌써 비키니였다. 벌써 사람이 몰렸다. 상주해수욕장은 물론, 각 해수욕장은 이미 넘쳐나는 피서객들로 유독, 저 남해바다, 차마 ‘뻥’ 뚫려 시원시원했다. 고지도의 남해와 초현대판 남해가 겹쳐지는 순간, ‘신구(新舊)의 조화일러니…….’ 그냥 얼렁뚱땅 그리 생각하는 게 이로울 것 같았다.

고지도를 보고 길을 찾으면 동서남북 방향만 알고 찾아가는 여행자가 된다. 옛 지도 속의 남해는 여백이 많다. 뭘 그려 넣을까, 옛지도를 보고 하는 여행이 마치 게임같다. 여백에 뭔가를 채울 ‘남해인의 삶’이 이 지도에 줄줄 그려지면…….

노도에서 아름다운 구름떼를 봤다. 화계마을 앞 정자에 앉은 노인들 수다 주제는 “손자....”였다. 논두렁 풀 베는 농부 열 댓명은 30도 무더위도 아랑곳 하지도 않았다. 지도에 나온 여수시를 보자 공장 때매 영 더워 보였다. 이락사 노을은 아팠다. 이런 지도를 들고 마지막 전투를 했을 충무공은 명랑의 바다와 지도를 번갈아봤을 거다. 이기고 영웅이 쓰러진 자리를 지도에 표시해 봤다.

하루 지나온 길이 꽤 길었던 것 같다. 지나온 길을 지도에 표시했다. 다음엔 옛지도를 복사해 들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봐야 겠다’는 상상, 남해 길에서 만드는 나만의 옛지도를 가지고 하는 스토리텔링.......괜찮겠지 싶었다. /허동정 기자 hdj@namhae.tv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