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시장의 골목길……. 왔다갔다 두어 번 하다보면 갑갑한 골목이 주는 특별한 평화를 맛본다. 벽이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면, 평온했다면 이 길은 가치가 있다.
읍 큰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난 150m쯤 될까, 숨어있는 길, 이 길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꼭꼭 숨겨졌던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터져나왔다.

실비골목으로 불리지만
  애환과 기쁨 사랑의 길

실비 골목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누구에겐 ‘시장 안 뒷길’ ‘시장 화장실 길’ 그냥 좁은 골목 등으로 불리는 잊혀져가는, 하지만 아주 독특한 길이다. 주목받지 않은 길이고 어쩐지 외졌다는 느낌이 난다. 하지만 큰길의 분주함에 비해 결코 녹녹치가 않는 이력의 길이다.
이 길에도 애환과 기쁨이 있고 감동과 사랑과 헤어짐이 있었다. 누구에게 이 길은 “장사가 안 된다”고 푸념하고 지났던 길이고, 한숨 쉬며 갑갑한 마음에 숨어 담배를 피거나 눈물을 흘렸던 장소다. 누구에게 이 길은 “장사라도 함에 다행”이라며 위로를 받았던 길이고 노숙자에게는 2개의 벽만으로도 아늑한 집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치매 어머니 업고 간 눈물의 길
이 좁은 골목, “가끔 그 골목이 생각난다”는 사람이 있다. 늙은 어머니를 업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는 이 골목, 이 남자의 이야기에는 가슴을 치는 뭔가가 있었다.
연세가 많아 기력이 없어진 어머니가 계신다. 돌보기가 어려워, 요양원에 모시는 것으로 어렵게 결정하고 난 뒤의 일이라고 했다.
“업어주고 싶은데 큰길에선 좀 부끄러웠는지 시장 뒷골목, 그 골목을 몇 번 인가 왔다 갔다 했지요.”
“어머니가 너무 가벼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이말을 한 사람은 최근 본지 <어머니를 ‘옴마’라고 부른 이 남자>라고 소개된 서면 출신 장용근 씨(40.부산거주. 공무원)다. 그로 인해 이 골목을 쓸 결심을 했다.
저리도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 이 골목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사랑이 있었고 어떤 삶이 있었나. 그리고 감동이 있느냐고.

■골목에서 헤어진 청춘남녀
  다시 만나도 여기서 만나리

이 길에서 헤어진 남해의 젊은 청춘을 안다. “사람들 눈에 띄기 싫다”며 이 골목 한 실비집에서 종종 술을 마셨던 그들의 사랑은 간지러웠고 격정적이었고 아팠다.
“넌 누구꺼!? 넌 내꺼!”
간 떨리고 닭살 돋던 이야길 주고받던 둘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 같다’는 이유 등으로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이 길에 있는 한 실비집을 “우리들의 아지트”라고 했던 이들은 다시 만나도 이 길에서 만나고 또 만나고 또 사랑이 이뤄지는 길도 이 길일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근처 농협에 근무하는 여직원을 사랑한 숙맥의 젊은 작가가 있었고 이 직원을 보기 위해 매일 365일코너를 들락날락하다 밤이면 훌쩍 이 골목으로 들어와 술을 마시곤 했다는 이야기는 이 골목에서 시시콜콜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그 직원은 그런 사실조차 모른다고 했다. 우연히 들은 아주 최근의 일이란다.

■좀 허술한 점포 하지만 낭만의 길
길에서 만난 실비집과 식당은 비슷비슷하니 허술하다. 툭 차며 탁 끊어질 듯 한 잠금장치가 그렇고, 오래된 알루미늄 새시로 만든 여닫이문이 그렇다.
좁은 골목에 벽이 2~3층으로 몹시 높아 마치 허름한 성벽 아래를 걷는 느낌이다. 이 벽의 큰길 쪽에 붙은 상가들은 남해의 가장 번화한 점포들이다. 건물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등기소 맞은편 큰 도로이고, 뒤는 좁디좁은 이 골목이다.
잘 쳐다보지 않고 잘 가질 않는 길이지만, 인간적인 소시민의 길이기도 하다.

■때론 오줌 누다 혼쭐난 골목
9년째 장사를 한 실비집 김부군 사장(여.54)은 손님의 양해를 구해 기자를 술상에 동석시켰다. 맥주 한잔을 가득 따랐다.
“장바닥 뒷골목이라고 불러요. 공무원들이 많이 찾고요” 의외였다. “시장 실비집 ‘푸근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말하는 그였다. “이름 석 자 돈으로 살 수 없다”며 진중하고 진지해지는 모습이나 “작년 재작년부터 어렵다”고 하지만 ‘뭔 대수냐’는 듯 통이 크고 살맛나는 말이 진지하게 해 와 닿았다.
술 먹은 사람이 지척에 화장실을 두고도 숨어 오줌을 누다 들켜 혼쭐이 나는 길이고,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살짝 숨어 뒤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도 상대가 알아채기 힘든 숨을 수 있는 길이다.
돈 궁한 술꾼이 찾아드는 길이고 도망가기 좋은 길이기도 하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운동권 모 씨가 경찰을 피해 냅다 도망쳤던 길이고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시를 읊조리며 걸었던 누구에겐 실연의 길이다.

■정식한 끼 7년을 1500원
 10년을 2천원 받은 식당 골목

이 자리서 17년, 옥이식당 신옥금 사장님(70)은 골목에서 만난 특별한 사람이다. 정식 한 끼를 고작 2000원에 판다는데, “고기를 주지 않는 대신, 시래깃국에 반찬은 한 아홉 열 가지는 돼”라고 한껏 웃고 만다. “남자들은 가지도 않고 잔소리하는 게 싫어 잘 안 팔고 아지매들한테만 팔아”라는데…….밥값이 아무리 그래도 2000원이라니. 경남 전역을 두고 가장 싼 집이 아닌가 싶었다. 2000원도 10년 전에 1500원에서 올렸단다…….나는 안다.
‘이 식당에는 없이 산 내 어머니가 먹었던 밥’이란 걸, 어머니의 삶이, 숨은 애정의 밥상이, 옥이식당에서 팔던 2000원 짜리 밥이었다는 것을…….
걷고 생각할 수 있는 좁은 골목, 이 골목이 특별했다. 특별한 서민의 삶이 스몄기에 이 골목엔 감동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장용근 씨의 아픔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 말 못할 사랑을 애태우며 혼자 술을 마셨던 골목, 이곳이 남해의 진짜 골목이다. /허동정 기자 hdj@namha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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