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의 추억
촌지의 추억
  • 남해신문
  • 승인 2010.07.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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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돈 봉투를 ‘촌지’(寸志)라고 한다.
‘돈 봉투’라고 하는 것 보다는 고상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실제로 촌지란 처음에는
‘어떤 이로부터 은혜를 입었을 때 고마움의 뜻으로 작은 정성을 표시하던’ 것이었다. 
이것이 학교에 치맛바람이 불면서 학부모가 교사에게 건네는 ‘돈 봉투’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가, 사회적으로 각계각층에서 ‘뇌물’ 대신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낱말이 되었다.

 필자도 이 ‘촌지’를 받았다. 통영 시 모 중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 일이니 1980년이다. 당시 학교에는 촌지가 성행했고 특히 그 지역이 유난스러웠다.
8월말에 공군에서 전역하고 9월에 발령을 받았는데 발령 첫 달에 봉투를 3개 받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봉투 3개에서 중단되었다고 하면 되겠다.

 학생 진로 상담 차 내교 한 학부모로부터 느닷없이 처음으로 돈 봉투를 받았을 때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막무가내로 내 호주머니에 밀어 넣고 달아나는 학생 어머니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까지는 실제로 아무 대책을 세울 수가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학교란 언제 어디서나 학생들의 눈길에 노출되어 있는데, 돈 봉투를 놓고 밀고 당기고 하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마다 동료, 선배 교사들에게 돈 봉투를 받았다고 말하고 그 돈으로 술을 샀다. 호주머니에 넣어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곤혹감을 토로하면서 자문을 구했는데 돌아온 답은 이랬다.
“ 이 선생,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래. 하, 하, 하.”

 세 번째에는 결국 내 스스로 나름대로의 묘수를 찾아냈다.
나전칠기 업을 크게 하는 학부모로부터 돈 봉투를 받게 되었을 때, 그날 학급 종례시간에 이렇게 발표했다.
“ 오늘 학부모 한 분이 학교로 오셨어요. 그 분께서 학급을 위해 써 달라면서 3만원을 맡겨 놓고 가셨어요. 또 학생 이름은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기에 누구 어머니란 것을 말할 수 없네요. 아무튼 여러분들 모두가 함께 사용을 할 학급 기금이라 생각하면 되겠어요. 조만간에 있을 체육대회 때 여러분들이 의논해서 사용하기로 하고 학급 통장에 보관해 둡시다.”
 그 다음부터는 거짓말같이 촌지가 사라졌다! 최소한 내 학급에서는.
그 때 분명히 깨달은 것은 학부모가 주는 돈 봉투는 ‘촌지’가 아니고 ‘뇌물’이라는 것이었다. 학급 담임 호주머니에 은밀하게 들어가지 않고 학급에서 공용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촌지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심사란 것은 참 이상한 것이다. 비록 혼자서 스스로 챙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돈 봉투를 주고 간 어머니의 아이를 한 번 더 보게 되더란 것이다. 아무리 촌지가 성행한다 하더라도 줄 수 있는 사람보다는 줄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다. 그러면  ‘촌지’를 주지 못하는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 받고 소외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이 아이들을 어쩌란 말이냐!

  촌지 거부 운동
 그래서 필자가 1987년 ‘경남 교사협의회’를 창설하면서 제일 먼저 주창 한 것이 ‘촌지 거부 운동’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선언하고 학부모들께 호소했다,
“‘우리 교사들이 과거에 촌지를 받아 왔음을 고백한다. 이제부터 깊이 반성하면서 촌지를 거부하겠다. 학부모 여러분들도 협조해 달라!”
 경남에서 발원한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들불같이 번졌고 곧이어 민주교육을 기치로 걸고 출범한 전교조 운동의 보편적인 행동 강령이 되었다. 이 운동이 학교 현장에서 ‘촌지’, 즉 학부모와 교사간의 음습한 돈 거래를 거의 사라지게 하는데 기여 했다는 것은 전교조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촌지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은 전국적으로 숱한 교장들이 ‘촌지(?)’때문에 학교에서 퇴출될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교장들은 각종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다. 비리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창호 공사하면서 업자에게서 뇌물 받기, 급식 업자에게서 돈 봉투를 챙기기, 잔디 공사, 인사 비리 관련하여 촌지 받기 등등, 학생들 수학여행 비리를 보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서울의 초등교장들은 업자로부터 학생 1인당 1만 원 꼴로 계산해서 받아 챙겼단다. 교장실에 업자와 앉아서 학생 머리수를 세면서 계산이 맞지 않아 다투는 경우도 있었다하니, 이런 교장 눈에는 아이들이 학생들로 보였을까? 아니면 ‘두 당 1만원’짜리로 보였을까? 
  신임 서울 교육감은 2학기 인사에 교장을 다 채우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한단다. 수학여행 비리에 관련한 초등 교장들만도 백 수십 명에 이른다니, 이런저런 비리를 따지면 도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교육감이 그런 걱정을 하게 생겼다. ‘교장 대란’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사상초유의 일이다.

 우리 경남도 예외가 아니라서 급식 관련, 부교재 채택 관련하여 교장, 교사들 수 백 명의 명단이 검. 경에 이첩 되었다고 한다. 신임 교육감이 어떻게 처리할지 두고 볼일이다. 이번 기회에 일벌백계로 부정부패의 고리를 싹둑 잘라내서, 그야말로 학교 현장에서 촌지란 것은 ‘촌지의 추억’으로만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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