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추억의 도시락을 먹고 왔어요.”
“추억의 도시락?”
아내가 딸아이와 백화점에 들렀다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는 것이다.
‘추억의 도시락’이란 말에 옛날 우리가 학창 시절에 들고 다녔던 도시락이 생각났다.
꾹꾹 눌러 담은 밥의 옆 작은 반창 통에 들어 있는 반찬들, 많은 밥을 먹기에는 반찬 량이 너무 적었기에 당연히 짠 찬가지가 들어 있어야 했다. 장아찌, 짠지, 멸치 볶음 등이 단골 메뉴가 아니던가? 그러다가 달걀을 풀어 부침으로 하여 밥 위에 얹혀 있으면, 그 날은 그 도시락 주인의 생일이라고 짐작하면 가히 틀리지 않았다.

“ 딸아이도 같이 그 추억의 도시락을 먹었소?”
“ 아니요, 얘는 덮밥을 먹었어요.”
하긴 투박한 양철 도시락을 접해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는 추억이 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 도시락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었소?”
“도시락만 옛날 도시락 모양인데 안에는 전혀 달라요. 밥은 적게 담고 여러 가지 튀김에 생선구이, 맛 갈 나는 명란젓도 있고요. 하여튼 맛이 있었어요.”
맛은 있었을 것이지만 어쩐지 그 화려한 도시락 내용이 아련히 떠올랐던 소싯적 추억을 뭉개는 것 같아서 입맛이 썼다.

 동시에 또 떠오르는 쓴 추억이 있다.
‘전교조 학살의 추억’이다. 89년 당시 군부 독재 정권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교사들을, 무려 1400명이 넘는 교사들을 교단에서 쫓아내고 감옥으로 끌고 가기도 했다.
이들 ‘해직 교사’들을 다른 말로 ‘거리의 교사’라고도 했다. 필자도 그 중의 한 명이다.

 필자는 89년 6월에 일찌감치 직위해제가 되어 있었다. 또한 전교조 경남지부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 죄명은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 당시 법으로 국가공무원은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없는 데도 결성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공무원이 거의 없는 요즈음 들어보면 웃기는 일일 것이다.
 경남 전교조 결성을 책임지고 감옥에 들어가야 할 운명이라면 굳이 도망쳐 다닐 생각이 없었다. 다만 교사가 감옥에 끌려가도 내 삶의 터전인 학교에서 끌려가야지, 어디 주막이나 길거리에서 체포되어서는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학교로 출근했다.

 교무실에서 동료 교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 오늘 저는 감옥으로 끌려 갈 것입니다. 비록 잠시 학교 현장을 떠나겠지만 언젠가는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곁으로 돌아 올 것입니다. 그동안 안녕히 계십시오.”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사환아이가 찾아 왔다.
“ 선생님, 교장실로 오시라는 데요. 손님이 와 계시던데요. 경찰 같던데.”“ 그래? 손님에게 좀 기다리라고 해라. 앞으로 볼 시간 많을 것인데.”
그러고 나서 각 교실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여러분, 그동안 갑작스럽게 학교를 비워서 미안합니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다 여러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여러분들도 나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후임으로 오시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 같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만납시다.” 
이렇게 모두와 작별을 고하고 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천 경찰서 수사과장과 함께 그 길로 나가서 다시 학교로 돌아 온 것은 거의 10년 후의 일이었다. 그 10년 세월 동안 교사들의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공무원들의 노조도 합법화 되었고 필자는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을 받음으로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다. 
교과부의 발표에 의하면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는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공립학교 교사 134명에 대해 파면, 해임 등의 징계를 할 것이란다. 경남에서 파면 해임 될 교사들은 모두 다 아는 후배 교사들이다. 필자가 알기로 그 들은 가난한(?) 정당에 인정상 한 달에 1만 원 남짓의 미미한 후원은 했을지언정 당원으로 가입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현재의 추세로 보면 해임이 될 것 같다.

걱정이다. 크게 걱정된다!

이 들 후배 교사들의 걱정이 아니고 나라가 걱정이다.
후배들이야 비록 잠시 학교를 떠나 있을 수 있으나 세월이 지나면 원상회복이 될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생각해도 ‘목이 날라 갈’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비슷한 사례를 짚어보자.
2004년 인근 고성의 공무원인 김 아무개씨는 민주노동당 ‘당우’로 가입했다. 그러다가 공무원 총파업 투표 과정에서 경찰과 대립하던 중에 지갑을 분실했는데 지갑에서 ‘당우증’이 나왔다. 당우가 정식 당원이냐 하는 논란이 있었지만 검경은 이를 불법 정치 활동으로 보고 입건해 수사했다. 그런데 막상 정당 가입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고 법원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이 공무원은 지금도 씩씩하게 공직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원금 얼마 내는 것 보다는 ‘당우’의 혐의가 훨씬 강하다. 그런데도 국가공무원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정당에 후원금 얼마 내었다고, 당장은 해직된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해직 교사로 있지는 않을 것이니 별로 걱정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의 경우에는 다르다. 89년 당시에도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들 중에 교사들의 노조 결성을 막는 나라가 없었다. 그런데 숱한 교사를 학교에서 몰아내는 만행을 하는 바람에, 당시 정부의 정통성은 여지없이 훼손되고 군부독재 국가로 국제 사회에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렇게 2류 국가로 전락하면 얼마나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지금같이 지구촌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국제화 시대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라가 걱정이란 것이다!
곧 해직이 될지도 모르는 후배 교사들을 만나면 백화점에 가서 ‘추억의 도시락’을 같이 먹어야겠다. 그리고 이 말을 해 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조만간 추억이 될 것이고, 추억이란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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