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주인이 밥 배달 갔다. 점포에 주인은 없다.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들어와 냉장고에 든 막걸리를 내고 컵을 찾아 따라 마시곤 한참을 이야기하다 ‘휘~’사라진다. 이들은 계산을 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장면2. 주인은 방안에서 기자와 이야기 중이다. 한 남자가 가게를 두리번거린다.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 가지고는 주인과 눈 한 번 마주치곤 ‘휘~’ 나가버린다. 계산이 되지 않았다. 서로 신경 쓰지도 않는 눈치다.

#장면3. 매점으로 들어간 남자는 봉지에 잔뜩 뭔가를 집어넣었다. 남자는 내용물을 주인에게 보여주지 않고 계산도 하지 않았다. 장난치듯 봉지만 ‘휘’ 들어 보이곤 사라져 버린다. 이 무슨 이상한 장면인가!?

장면 1은 5월말께고, 장면 2는 6월1일, 장면 3은 6월7일의 실제 있었고 눈앞에서 펼쳐졌던 장면이다. 이를 취재하는 순간이 장면3이다.



주인이 있든 없든 손님이 찾아와 계산도 없이 물건만 가져가 버리는, 두 눈 뜨곤 믿기 힘든, 이런 ‘희안빠꼼’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곳, 횟집과 식당, 구멍가게, 민박을 겸하는 창선면 장포마을 구판장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인은 있다. 부부인데 10년전 이 구판장에서 영업하기 전, 동업 실패와 보증 때문에 빈털터리가 돼 버린 부부였다. 지금 월세 40만원을 내고 동네에서 구판장을 빌려 영업 한다. 김원석(52) 김정애(50)부부가 장포발(發) 사람 사는 이야길 전한다.

‘우째 손님이 돈도 안내고 그냥 가져가나’고 물었더니, 단박에 “동네 사람들한테는 가게 신경도 안씁니더”란 말이 돌아왔다. “한 동네에서 구판장 장사하면서 서로 편안하게 하는 깁니다”란 말에 상황이 쫙, 정리되면서 얼얼한 감동이 왔다. 물건을 가져가지만 언젠가는 계산을 해주겠지 하는 상호간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인간적인 가게와 이 대책 없는 부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저리 물건 가져가면 돈은 가져오냐’ 물으니 “6개월에 1번, 1년에 한 번 계산해 줍니더”하는 말은 더 놀라웠다. “동네 사람들이라 허물없이 지내는 거고 공사장에 오신 분들도 잡수신 것이나 가져가신 것을 나중에 이야기 해 주면 장부에 적거나 손님이 직접 쓰게 되고 그렇게 장사를 하는 거지요” 했다.

“남편이 사업동업하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어요.”
김정애 씨의 말이다. 그 금액이 수억이었고 당시 보증을 잘못 서 소유했던 땅은 모조리 경매 처분됐다. 주인 바뀐 이 땅이 골프장 조성으로 무려 26억 원쯤 보상을 받았다고 했다. 26억....김 씨 부부는 “허허” 웃고 말더니 “그게 뭐라고요. 내께 아니잖아요.”

수금은 6개월이나 1년....‘외상값’을 물었다. “말 못하지 예”라고 씩 웃으며 부부가 마주보는데 표정이 와~, 장난이 아니고 아이 둘이 천진하게 웃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말이 “계산 못해주는 사람 심정도 생각해 봐야지 예. 나보다 더 어려워 못주겠지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아입니껴!?”

“재산 날리고 살길이 없어 막막한데 마을 주민들이 구판장 장사를 해보라고 해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이렇게 시작한 것이 이 구판장이다. 부모를 모셔야 했고 아이 넷까지 딸린 부부의 앞날은 차마 막막했던 것 같다.

남편은 낚싯배를 운영했고 바다 한 가운데 양식장 등에 점심밥을 배달하는 일과 지금처럼 횟집과 민박 운영, 거기다 매점 장사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월이었다. 너무 바빴던 것이다.

“낚시 시즌이 되면 새벽 2시나 3시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잠을 2~3시간 자요. 가게 돌볼 시간이 없으니 아내 혼자 힘들잖아요. 단골손님은 우리에게 아예 물어보지도 않아요. 떼먹으면 할 수 없고…….”

“6개월 정도 장사하니까. 자동적으로 손님 스스로 알아서 물건을 가져가고 돈을 가져오고 하더라구요. 워낙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니까 저절로…….”

저절로 된 것이라 했다. “아예 신경을 안씁니다. 손님들이 그냥 가도 나중에 이야기 해주니까 믿는 거예요”했다. 기사 도입부분 장면 1,2,3이 이런 것을 상황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요새는 못 먹고 사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주인이 없어도 물건 가져 가도, 속이려 한다고 보긴 어렵잖아요. 결제가 늦어져 조금 힘든 경우야 있지만 손해 보는 경우는 극히 없어요.”
험난한 세상에 이 부부가 말하는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믿기 힘든 말이었고 장면이었다.

김 씨는 항해사로 5~6년간 배를 탔다. 지금의 처형이 식당을 했고 아내를 힐끔 쳐다만 본 뒤 “처형이 좋은 사람같아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곧 아내의 부모를 찾았고 “4시간30분을 무릎 꿇고 앉아서 ‘딸 내놓으이소’하고 빌었다 아입니껴.” “딸 둘 낳고 그만하려니까. 아버지가 아내더러 ‘작은 마누라 하나 더 만들어서 아들 낳게 할란다’란 말에, 낳은 게 지금 4형젭니다”고 껄껄 웃어댔다. 장학금으로 대학졸업하고 취직한 현주, 연주란 이름의 딸, 대학생인 셋째 진주, 아들 준식을 두고 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생인 또다른 자식, 조카 은주 은지와 현재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부부에게 지금 가장 큰 어려움을 빚을 갚아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10년 전 사업 실패로 지금도 보증 채무 5000만원정도를 갚아나가는데 이제 3분의 1쯤 남았다”고 하는데, 체하는 느낌이랄까. 부부의 웃음 앞에 갑자기 안쓰러움을 느꼈다. 저리 사람을 믿는 부부는 사기를 당했고 이를 갚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 그리고 사람을 믿어 돈을 주든 말든 손님을 믿는 부부의 모양이 겹치고 또 겹쳤다.



“도시 같으면 야반도주라도 했겠지만 저는 다 갚을 겁니다”고 했다. 부부는 “내 자식이 ‘너그 아비가 내 돈 떼먹었다’는 소린 듣지 않게 하려고 이 일을 죽으라고 하는 거지 예.”

이 말과 손님들이 끝내 돈을 주지 않을 경우 “떼먹으면 그만이고요”란 말이 또한번 겹쳐왔다. 창선 장포가 ‘참 사람 좋은 마을’이라더만, 두 부부가 극구 증명해 댔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