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잘됐는데 먼저 간 남편이 이 모습을 봤으면…….” 하고 우는 모습, “딸 둘이 부산서 대학 다닐 때 100원으로 멸치 7마리를 사 3마리 반으로 국을 끓여먹었다”는 말을 하고 우는 모습…….

고현면 포상리 김설자(67)씨의 말은 넋두리처럼 들려오는 내 어머니의 노래이기도 했다.
70년대, 공무원들의 삶이 안정적인 것 같아 1남5녀의 자녀에게 “한 명이라도 공무원이 되어라”고 평소에 말했다고 했다. 2명이 박사가 됐고 교사와 간호사, 그의 말마따나 “무궁화를 단 경찰” 등의 자녀를 둔 김 씨는 “저그 아버지가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딸 다섯을 대학 보내려는 남편을 두고 “뭐라 대학 보낼라 사소”라고 푸념했고 남편은 “30년 뒤에는 논 10마지기보다 대학시키는 기 나은 기라”고 말한 뒤 “이 나이에 영감 생각이 납니다”고 말하곤 한참을 울고 말았다.

“막내딸 대학 2년 때 고혈압으로 병상에 누워 환갑상을 받고 2001년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이었다.

“이 나이에 영감 생각날 나이는 아니지만 둘째딸(박이심, 부산 전포유치원 원감)에 이어서 올해 큰딸(박귀자, 부산 양정초 교감)이 박사가 되고, 아들(박종훈, 부산 경찰청 경무과 인사계 경위)이 무궁화 달았다 샀지. 다른 자식들도 선생(박선옥, 부산 사동초 교사)에 한국전력에 다니고(박희숙) 간호사(박금영, 거제 대우병원)도 되고...이리 산께 퍼떡 영감이 생각나.....”

“딸이 퇴직한 사람을 소개해줄까고 말해요.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너그 아버지 같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주라지만 있어야지......영감 할멈이 같이 다니는 게 제일 부러워......일하다 집에 들어가면 소밥주고 멍하니 쳐다보고…….”

“18세 시집왔는데 금술이 좋았어. 살림보고 온기 아니라 인물보고 왔지. 지금은 큰딸이 49세라”는 말에는 세월의 무상함과 남편 생각, 6남매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지고도 남았다.

눈물의 보였던 김설자 씨였지만 그의 면허시험 취득 과정과 승용차를 사게 되는 배경은 그의 재치를 한껏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나이에 먼저 면허증을 땄어. 진동에 면허시험 치러 3번을 갔는데 필기시험을 치면 문제 읽고 반쯤 읽으면 내용을 다 까먹고…….” 이러다 결국 면허시험에 합격했단다. 이후.

“운전을 해야겠다 싶어 며느리에게 현금으로 한 다발을 주고는 ‘너가 사줬다’고 해라”며 며느리를 통해 차를 샀다. 며느리가 차를 사준 것으로 안 자식들이 “누군 400만원, 또 누군 300만원....씩 해서 찻값 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왔어.....며느리 얼굴 세워주고 돈은 더 벌고.....”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100km는 못 달리고 아직 80km 쯤은 달려요. 요즘 읍에 요가를 배우러 가기도 하고.....” 간만에 활짝 웃어젖혔다.

김설자 씨는 아주 특별하고 드물게도 아직도 삼베를 짠다. 시집와 시작한 일이 50년이나 됐다는데, “하던 버릇이 돼서 하는 거지”라고 말했지만 그 고단함 뒤에 묻은 자녀에 대한 고마움이, 듣는 이에게 전해져 전율하는 듯 했다. “여자일 중에서 제일 힘든 일이 베 짜는 일인데, 이 일이 힘든 일이라 자식들이 말려요. 삼베 짜고 농사지어 평생 아이들 공부시켰다”고 말하는 그는 아직도 들로 논으로 나가 예닐곱 마지기의 농사를 짓고 떨어져 살지만 90세인 친정어머니까지 돌보는 그다.

“한전 부산본부에 다니는 36세의 딸이 시집가는 걸 보고 베틀을 놓을라고…….”하는 김설자 씨. “제 딸은 키도 크고 인물도 좋아요......”라고 웃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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