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포구. 
  


남해대교를 건너 관음포와 염해등대가 있는 서쪽 1024번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장항을 지나면 이국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 길로 곧장 바닷가 방파제로 뛰어가고 싶겠지만 참고 내륙방향으로 조금 더 가서 마을 진입로에서 우회전으로 들어서면 구미포구로 연결된다. 구미포구에 들어서면 우선 오래된 방풍림이 그럴 듯하다. 방파제를 감싸고 있는 듯한 포구의 방풍림은 공교롭게도 365그루라고. 1년 동안 하루에 한 그루를 심어 365그루인지, 365일 마을의 무사를 기원으로 365그루 나무를 심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365명이 각각 한 그루씩 식수를 한 것인지, 마을에 들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나무가 365그루인가 하는 것이었다. 마침 마을 입구에 할머니 한 분이 나와 계셔 여쭈었더니 “내가 우째 아노?” 대답은 퉁명스럽다.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할머니를 보자 지난 번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팔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날 나는 푸른 지폐를 내밀며 소주를 1만원어치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말 한마디 없이 소주 담은 봉투를 가리키며 내게 1만1000원을 요구했다. 분명 돈만큼 달라는 것이었는데 왜냐고 물을 겨를도 없었다. 이유인즉 계산하기 귀찮으니 한 병에 1,100원인데 10병을 담았으니 1만1000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명령조의 말에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 왈 “그라믄 니가 알아서 계산할래?” 그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날 아무 대답도 못하고 1,000원을 더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곳 할머니들이 말투가 아무리 퉁명스러워도 나는 별로 기분이 나쁘거나 실망스럽지도 않다. 질그릇 같은 남해 사람들의 정서를 이미 오래 전에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포구에 앉아

  
 
  
남면상가 소재 임진성. 
  


방풍림을 오른편에 끼고 방파제가 있는 마을 끝으로 가니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영화의 명 풍경을 연상시킨다. 가만히 생각하니 중국 계림의 ‘이강’ 어느 강마을 같기도 하고,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본 어떤 풍경 같기도 하다. 구미포구는 작지만 방파제가 마을 끝에 일자형으로 형성되어 있어 포구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을 포근히 안고 있는 듯 보인다. 방파제 안의 얕은 물에서는 가끔 어린 고기들이 수면위로 날아오르며 춤을 추었다. 방파제에 앉으면 시선은 바다 쪽이거나 마을 쪽 선택은 두 가지다. 아름다운 구미 마을도 포구 끝에서 보는 마을 풍경은 착잡하고 답답하다. 제법 많은 나무와 조립식 건물이 태풍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지나간 지 꽤 되었지만 태풍의 잔해들은 부러진 나뭇가지와 지붕이 내려앉은 건물들 모두 그대로다.
두어 시간 후에 질 일몰을 생각하며 방파제 끝에서 바다를 안고 걷다보니 어느새 조급함은 사라지고 가빴던 숨이 한가해진다. 10월의 햇살과 바람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뜨거움이 싫지는 않았다. 방파제에 앉아있으니 콧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바위섬’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추수를 끝낸 논엔 마을 사람들이 줄을 맞춰 밭고랑을 타고 앉아 마늘을 심는 정경이 방파제에 앉아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밭에 있어서인지 포구는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다. 저 갯바위 끝에 낚시를 던지던 한 사람이 역광의 실루엣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날 뿐이다. 해는 방파제 거의 정면에서 하루의 생을 마감할 모양이다. 아직은 지는 해를 기다리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천천히 걸어 마을 한바퀴를 돌아보기로 한다.   

해지는 임진성


남면에서의 볼거리로는 당항리 삼층석탑과 백정승의 묘, 가천암수바위 등이 있다고 하나 나는 단연 임진성이 먼저다. 임진성은 말 그대로 임진왜란 때 축성한 남면 상가리 남쪽에 위치한 약 2km 크기의 돌로 쌓은 성을 일컫는다. 임진성의 다른 이름은 ‘민보성’과 ‘잔땡이성’인데 민보성은 백성들이 싸워 지킨 성이라는 뜻이고, 원래 이름은 잔땡이성인데 산 잔등이에 붙은 성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니 유래를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롭다. 이 성을 쌓을 때는 남해 군민 전체가 동원되어 1년 내에 급히 완공하였다는데 일부분을 제외하면 아직 대부분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상가마을을 지나 대나무 울타리가 있는 한 채의 폐가 앞에서 우회전하여 푸른 넝쿨 무성한 고구마 밭을 지나 임진성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성을 향해 걸어 올라가니 그날 따라 소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으스스하고 기괴하다. 잔돌로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강풍에 날아 와 머리라도 칠 기세다. 안내표지판을 더듬더듬 읽고 나서 성 안쪽으로 드니 성 위는 가파르고 좁은 입구에 비해 제법 넓고 편편하기까지 하다. 넝쿨식물과 야윈 동백이 드문드문 자라는 길을 따라 잔돌을 밟으며 성 한바퀴를 도는 동안에도 시선은 여전히 바다에 붙박힐 수밖에 없다. 걷다가 바다 쪽으로 몇 발짝 안 가면 곧 작은 낭떠러지가 이어진다. 그래서 임진성은 쳐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있었던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졌다는 것일까? 바다 쪽으로 서있는 늙은 소나무가지에 이는 바람소리, 마치 적군이 바다에서 쳐들어오지 않고 등 뒤 육지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지경이다. 한때 이 잔땡이성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을까? 바람을 안고 서성거리는 동안 그날의 함성은 귀에 맴돌고 바람은 여전히 해송가지에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곧 이어 나는 넋을 놓고 하루의 삶을 끝낸 붉은 해가 서둘러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언제 보아도 일몰의 장관은 눈물겹기 그지없다.     

 
 
구미마을 포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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