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남긴 유훈(遺訓)을 자식이 버린다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당연히 ‘배신(背信)’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특히 국토 및 국민을 다스리는 통치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과거 지도자가 남긴 훈계나 교훈을 후계자가 버린다면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서 과감하게 과거 통치자, 그것도 전 세계적인 지도자로 인정받던 아버지의 유훈(遺訓)을 버린 지도자가 있다. 다름 아닌 현재 싱가포르를 이끌고 있는 리센룽(李顯龍) 총리가 그 인물이다. 그는 왜 유훈을 버리게 되었을까. 그의 고뇌에서 우리 남해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아버지 리콴유(李光耀) 前 총리는 싱가포르의 기적을 일으킨 지도자로 국민적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는 서울시의 1.15배에 불과한 작은 영토와 490만 명에 불과한 인구의 싱가포르를 1인당 국민소득 3만 7천불의 부자 나라로 만드는 초석을 다졌다. 현재 우리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8천불 정도이니 2배 이상으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는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세계 수준의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으며 세계 최고의 깨끗한 정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싱가포르에 용납해서는 안 되는 3대 악(惡)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것은 ‘도박’, ‘매춘’, ‘마약’이다. 이 3대 악은 국민의 의식을 좀먹어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고 철저히 배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 리센룽은 ‘도박’을 허용했다. 아니 허용한 것이 아니라 ‘도박’을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의 하나로 삼은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형 ‘카지노’의 육성이다. 

그런데 그는 왜 ‘현대 도박’의 상징 ‘카지노’를 육성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외국인만 이용이 가능한 ‘카지노’가 아니라, 내국인(국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카지노를 허용한 것일까. 자칫하면 국민들이 도박에 빠져 정신적 황폐화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아버지인 리콴유 시대의 성장전략만으로는 국민소득을 증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존의 금융, 물류, 그리고 제조업만으로 새로운 부의 창출에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과 물류는 아직도 싱가포르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의 경우에는 중국의 저임금으로 인해 투자유치에 경쟁력을 조금씩 상실해 가고 있는 점을 인식했다. 그래서 돈 많은 주변국의 부자들이 싱가포르에서 돈을 쓰도록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생활 속에서 ‘마작’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듯이 도박을 좋아한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의 부자들도 돈 쓰기를 좋아한다. 그들을 싱가포르의 카지노로 끌어들여 돈을 펑펑 쓰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올 2월 춘절(우리의 구정) 때 문을 연 카지노에서의 3일간 매출액이 우리 돈으로 450억 원을 넘었다고 한다. 대부분 중국 및 주변국에서 온 사람들이 쓴 돈이다.      

물론 국민들이 도박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책도 단단히 준비한 듯하다. 외국인들의 카지노 출입은 무료지만, 내국인에는 출입세를 매긴다. 1회에 싱가포르 달러로 100 달러, 1년 출입세는 2,000달러이다. 철저히 통제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리고 내국인에 대해서는 ‘카지노 출입금지 신청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즉 본인 혹은 가족 중에서 도박 중독 우려가 있으면 카지노에 출입을 허가하지 않도록 자의 및 타의에 의해서 신청하는 제도이다. 카지노 개장 이후 100여건의 자가 신청을 포함해 총 264건의 신청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리센룽 총리는 아버지의 유훈을 버렸지만 국민들의 소득을 늘리고 국가를 더 성장시키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실용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의 실용주의에 적합한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우리 기업인 ‘삼성’이 독일의 ‘실트로닉(Siltronic)사’와 합작해 회사(Siltronic Samsung Wafer社)를 세웠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 전량이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로 납품된다. 물류비를 생각한다면 수원에 입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과 싱가포르 정부는 유치경쟁을 벌였으나 결국 싱가포르에 합작법인을 세우게 되었다. 싱가포르 정부의 승리였다. 그 이유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장려책) 때문이다. 3만평이 넘는 공장 부지를 단 1달러에 임대해 주었고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이 제시한 법인세 감면기간은 5년에 불과했다. 싱가포르는 자연스레 고용창출과 싱가포르항구를 이용한 물류비를 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실용주의’인 것이다.

보물섬이라는 남해. 싱가포르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많지 않을까. 작은 면적과 적은 인구를 가진 면에서는 비슷하다. 싱가포르는 그 단점을 실용주의와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부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 남해도 이제 기존의 성장 모델에서 탈피해 ‘실용주의’에 입각한 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시기에 직면해 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