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화근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라는 낱말 때문이었다.
졸업식장 학교장의 회고사에 인용된 ‘어머니’라는 낱말이 발단이 되어 이 파문이 생긴 것이었다. 교장 선생은 회고사의 말미를 이렇게 마무리했던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몇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시인이 별 하나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보았듯이 저도 오늘 이 자리를 마지막으로 그동안 정들었던 교정을 떠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씩 불러 보는 것으로 회고사를 갈음하겠습니다.”
여느 시골 중학교 마냥 졸업생 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어머니와 헤어져 살고 있는 아이가 있게 마련이고 먼저 이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란 낱말은 누선을 가장 자극하는 낱말이 아니던가! 눈물이란 전염성이 있는 것이라 잔잔히 퍼져갔고...

뒤이어 축사를 하러 나온 면장이 호주머니에서 인쇄물 한 장을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언젠가 좋은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가져 왔습니다. 제목은 ‘흙 묻은 아빠 바지자락’인데, 이제 초등학교 교사가 된 딸이 적은 것입니다.”
그렇게 읽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밤 야간학습을 하고 나오는 딸을 태우러 학교로 왔다. 아버지의 직업은 공사판 노가다였는데 일마치고 흙이 묻은 작업복 그대로의 모습으로 트럭을 몰고 왔다. 그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다른 아이들이 다 떠나고 나면 뒤에 슬그머니 나타나서 아빠 차에 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운전하는 아버지 바지 가락이 양말에 구겨져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항상 아버지의 바지 모습은 그러했지만 그날따라 짜증이 나서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해댔다. 
“아빠는 노가다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왜 그렇게 바지 자락을 양말에 넣고 다녀? 노가다라고 그렇게 표를 내고 싶어!”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묵묵히 차를 몰고 오다가 집에 거의 다 와서 이렇게 한마디 하셨다.
“내가 바지를 양말에 넣는 것은 작업하다가 바지 밑단에 흙이 많이 묻으면 세탁기도 없는데 엄마가 세탁하는 것이 너무 힘 들것 같아서...”
지금 생각하면 나는 너무 못나고 나쁜 딸이었다.
아빠, 그 땐 미안했어요. 아빠, 사랑해요!’

이글을 읽는 면장의 목소리에도 어느 듯 물기가 묻어 있었다. 이번에는 한 여교사가 소리 내지 않으려고 입을 악다물고 울기 시작했다. 이런 아픈 경험은 대부분의 서민의 집안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던가! 대부분의 어른들 눈가에도 습기가 비치고 있었다.

뒤이어 단상에 오른 군의원은 다소 감정이 흔들린 목소리로 축사를 했다.
“ 오늘 졸업식 참 감동스럽습니다. 어제에도 다른 학교 졸업식장에 다녀왔는데 느낌이 다르군요.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졸업식 모습을 보니 졸업생 여러분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을 것인지를 능히 짐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이런 시골에서 학교를 나오지만 그 어떤 도시 학교보다도 더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두고두고 여러분들은 이 중학교의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고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조금 후의 전교생이 ‘석별의 정’을 노래할 때는 그 때까지 용하게 잘 참고 있던 3학년 담임교사가(한 학년에 한 반짜리 학교이니 졸업생 담임교사이다) 엉엉 울면서 뛰어 나갔다.
‘어머니’에서 시작하여 ‘아버지’로 넘어갔다가 결국 ‘석별의 정’까지 가면서 여럿이 울었다.
이런 고전적(?)인 눈물 젖은 졸업식을 마친 후 마음 한 구석에 작은 촛불이 하나 켜진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필자만의 정서일까?
 
요즈음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 되었던, 도시 중학교 졸업식 뒤풀이의 광란을 강제로 조장한 선배들에 대해서 사법 처리를 고려하고 있단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황당해 하고 있을 학부모들에게 그렇지 않은 졸업식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서 위안을 삼케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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