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에서 본 목섬의 풍경. 가는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미조와 상주를 잇는 해안도로를 달려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무딘 감정을 가진 이라도 그림 같은 항도를 그냥 지나칠 사람은 없다는 것을.
항도는 동천과 물건, 은점, 노구를 지나 왼쪽으로 급한 언덕을 내려서며 오목하게 굽은 길목에 있다. 시간에 쫓겨 초전, 송정을 향해 곧장 지나치면 어김없이 되돌아오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곳이 바로 작은 포구 항도이다. 나도 처음엔 해안도로를 달릴 때 그림 같은 두 개의 섬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한 풍경에 마음 빼앗겨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수고를 피할 수 없었다. 항도는 삼동면에서 진입하면 노구를 지난 언덕에서 속도를 줄여 천천히 내려가면 되지만 상주면 방향에선 초전을 지나 나무에 살짝 가려진 마을이 보이는데 길가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곳을 내려서면 바로 마을로 드는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바다턱밑까지 내려가면 마을 오른쪽으로 국도에서 보던 두 개의 섬이 나란히 있다. 이 섬은 마치 어린아이와 어른이 손을 잡고 마주보는 듯한 남해군의 지도를 축소해놓은 그림을 연상시킨다.

 

몽돌밭이 들려주는 음악

  
 
  
항도수원지에서 내려다 본 항도마을과 팥섬 전경 
  


갈 때마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그들은 한결 같이 손맛이 쏠쏠하다고 했다. 갯바위에 서서 바다 속을 보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들여다보는 맛 또한 그럴 듯하다. 포구는 작고 예쁘다. 아니 귀엽고 앙증맞다. 마을 가운데는 누구나 뒹굴고 싶을 만큼 파도와 시간이 합세하여 깎은 하얗게 빛나는 몽돌밭이 있다. 한 며칠 시간을 낸다면 이른 아침이나 달밤에 몽돌밭으로 나가면 언제든 바다의 교향곡을 들을 수 있고 자연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한껏 취할 수도 있다. 바닷물은 밖에서 보면 수심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투명하여 두렵기조차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깊지 않아서 물놀이에 적격이다. 그러나 포구를 지나 마을 왼편으로 살짝 돌면 변화무쌍한 갯바위의 절경은 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기쁨은 배가된다. 다른 한가지는 수중동굴이 있어 호기심어린 아이들이나 탐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권할 만한 곳이다.
항도는 ‘목섬’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두고 일제 때 ‘항도’로 개명한 ‘목섬’의 한문표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원래의 이름을 찾아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항도보다는 아무래도 우리말 목섬이 더 정감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목섬은 앞에 자그마한 섬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섬에 물이 들면 마을과 떨어졌다가 물이 나면 잘록한 바닷길을 드러내 마을과 이어진다고 해서 ‘목섬’이라 한다고.
지난번엔 태풍 매미로 두 개의 섬을 연결해주는 방파제가 파손되어 붙어있던 섬이 갈라진 섬이 되어있었다. 섬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지형에 변화를 가져올 만큼 태풍피해의 심각성이 눈으로 와 닿았던 곳이 항도였다. 목섬 앞에는 또 다른 섬이 있는데 이것은 ‘딴목섬’이라 불린다고. 그리고 작은 포물선을 그리는 항도 앞 바다에 떠있는 하나의 섬, 그것은 지도에서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팥섬이다. 팥알갱이처럼 생겼다하여 팥섬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팥섬도 멀리서 보면 단지 한 개의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가까이 가면 두 개의 섬이 자연스럽게 붙어있다고 하는데 항도 포구에선 확인이 쉽지 않다.

행복을 아는 사람들


남해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작은 포구 항도 사람들도 대부분 바다에 모든 것을 걸고 산다. 포구엔 언제나 출항을 기다리는 어선들이 있고 어디서나 그물을 깁는 어부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어른들께 말을 걸어보면 무던한 친절이 정감 있고 사려 깊다. 한가지를 물어보면 서너 가지는 족히 얻을 수 있는 곳이 항도 마을의 인심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투박함은 사실 조금만 사귀어보면 모두 진심 어린 남해사람들의 공통된 정서라는 걸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나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알고 소박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자주 감동하는 사람이다. 항도는 내게 소박한 삶이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어촌마을의 전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에서 한나절 시간을 보내고 상주면으로 가려고 항도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이마 끝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뭘까? 호기심이 동한 나는 좁을 길을 따라 좌회전으로 들지 않고 산 쪽, 아니 하늘을 향해 직진하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 차의 기어는 어느 새 1단에 가 있었다. 대체 저 높은 저 곳은 어디이며 무엇일까?
 /김인자(시인·여행가)
http://www.isibada.pe.kr/kim8646@netian.com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